두 장짜리 여론 수렴, 이 방법이 최선인가요?똑똑똑, 연락도 없이 불쑥 사무처를 찾아 와서 종이 두 장을 내밉니다. 한 장은 '의견수렴서', 다른 한 장은 '사업지 및 주변지역 생태계 주요 조사결과'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싶지요?
A개발이라는 곳에서 대구 팔공산에 친환경 케이블카를 짓겠다고 환경단체를 찾아와 의견을 듣는 방식입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질문을 했습니다.
"도대체 친환경으로 어떻게 지을 수 있는 것이냐?"서류를 전달하러 오신 말끔한 양복 차림의 두 분께서는 선뜻 대답을 못합니다. 본인들은 그것까지는 잘 모른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참조하라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참조하라고 준 것 같은 '사업지 및 주변지역 생태계 주요 조사결과'라는 한 장짜리 종이에는 (이것마저 나중에 받았습니다만) 사업지구가 어디인지, 조사 주체는 어디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
이런 한 장짜리 사업 설명 자료를 딸랑 내밀고, 그 자리에서 의견을 구한다니, 참 신기방기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단체를 찾아가서 의견을 '수렴'했다고 대구시에 인허가 신청을 할 것을 생각하니 아득해집니다.
일단 검토하겠다고 돌려보낸 후 당최 궁금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서류에는 전화번호도 없어서 업체를 검색으로 찾아서 연락했습니다. 담당자는 지역의 시민단체, 환경단체 30여 곳에 이런 방법으로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업지 및 주변지역 생태계 주요 조사결과'의 조사 주체는 본인들이고 6개월간 조사했다고 합니다.
'친환경'만 붙인다고 '친환경'이 되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두 장의 서류에는 정확한 사업명이 없습니다. '팔공산에 친환경 케이블카를 설치하고자' 한다는 표현만 있을 뿐입니다. 이는 공산케이블카 사업으로 대구 동구 진인동 갓바위 집단시설지구와 갓바위 근처 노적봉(해발 891m) 아래를 잇는 1.3km 규모입니다.
작년에 '갓바위' 케이블카 사업으로 부각되어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갓바위'를 지우고 '친환경'을 붙여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립공원 팔공산 갓바위에 케이블카를 지으려 할 때마다 대구시와 문화재청이 불허했던 것은 환경 훼손, 문화재 훼손, 자연경관 훼손 등의 이유가 너무나도 명백하고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는 "케이블카 추진 구간의 능선은 취약 자연생태계로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들락날락하는 길목이자 이동통로이고, 민감한 서식처이기 때문에 케이블카 건설로 당연히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최신 공법을 이용하고 환경친화적 자재를 쓰더라도 한 번 훼손된 자연은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불투명한 경제성 부풀리기는 그만교통안전공단과 한국삭도협회 시설 현황을 보면 2014년 12월 기준 국내 가동 중인 케이블카는 모두 45곳이고, 이 중 관광용 케이블카는 21곳입니다. 여기서 수익을 내는 곳은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와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두 곳 정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적자에 시달리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케이블카 사업은 항상 경제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앞세웁니다. 갓바위 케이블카 사업도 이 막연한 기대심리를 부풀리기만 할 뿐, 구체적인 경제성 평가나 근거를 바탕으로 사업의 타당성을 논의하는 과정은 없었습니다.
또한 안전상의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갓바위 정상은 더 이상 가용할 수 있는 면적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공간입니다. 지금도 그 협소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발 디딜 틈이 없는 상황에서 근처에 케이블카가 생기고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유입된다면 어떻게 될지, 최대 수용 인원에 대한 예측과 안전에 대한 사항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부처님이 노(怒)하고, No 하십니다케이블카 사업은 문화재청 심의에서 수차례 부결되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보물 제431호인 관봉석조여래좌상, 일명 갓바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 주변 500m 이내에 시설물을 설치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A개발은 기존의 계획안에서 갓바위 서북쪽 520m 지점으로 부지를 옮겨 재추진 한다고 합니다. 500m 벗어나면 501m부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문화재보호법 제13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에는 ③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는 해당 지정문화재의 역사적·예술적·학문적·경관적 가치와 그 주변 환경 및 그 밖에 문화재 보호에 필요한 사항 등을 고려하여 그 외곽 경계로부터 500미터 안으로 한다. 다만, 문화재의 특성 및 입지여건 등으로 인하여 지정문화재의 외곽 경계로부터 500미터 밖에서 건설공사를 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 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500미터를 초과하여 범위를 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수치적으로 500m만 따질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갓바위는 연간 500만 명 이상이 찾는 기도와 수행의 불교성지입니다. 150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켜온 문화유산이 있는 곳입니다. 이런 성스러운 불교성지를 관광지화하고 무분별하게 상품화 한다는 발상 자체가 불온하고 자칫 불교계에 모욕적인 처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08년 대한불교조계종과 선본사, 동화사, 은해사 등에서는 갓바위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8만여 명의 반대서명과 함께 불교계의 결사반대 입장을 강력하게 전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팔공산은 대구뿐만 아니라 경산시, 군위군, 영천시, 칠곡군에 걸쳐 있습니다. 대구의 갓바위 케이블카 추진이 자칫 다른 지자체와의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해 난개발을 초래하고, 대구·경북 상생협력 저해하는 지역 갈등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진정 지역경제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케이블카 하나에 기대어 관광 효과를 누리려는 얄팍한 수 말고, 지금 대구가 가진 관광 인프라와 자산들을 어떻게 스토리텔링해서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있게 해보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케이블카인가? 누가 원하는 케이블카인가? 일부 건설 업체와 조금의 이익을 취하는 동안 무참히 짓밟힐 갓바위의 자연과 불교 혼.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니 돈으로 환산한다면 무한할 가치일 것입니다. 성스럽고 존엄한 가치 앞에 케케묵은 케이블카 논란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