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향 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달려가 고향 품에 안기고 싶다. 팔순의 어머니의 외로움이 그곳에 있다. 버선발로 맞으리라.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동안 가지 못했더니 고향은 그림속에 추억 속에 머물러 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집, 군데군데 폐허가 돼 가는 빈집, 실내천에 버들강아지 나풀거리고 물고기들의 작은 몸짓이 물결을 이룬다. 파란 하늘을 지붕삼아 녹색으로 물든 자연을 벗삼아 발걸음을 내딛는 촌노들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머문다. 그렇다 고향은 늘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추억이 머물러 있는…. 귀농·귀촌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 날이길 기대해 본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더라도, 설사 또 다른 실패를 하더라도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이 더 멋진 삶이 아닐까. 우울하지만 마음 속에는 희망을 담는다.
아내가 봐 버렸다, 내 기사를...얼마 전, 늘 마음 속에만 간직했던 간절한 열망을 실천하기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을 알리자는 의미로 <오마이뉴스>에 내 생각을 가감 없이 썼다.
'귀농과 귀촌을 생각하며'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물론,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28일 출근길에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느닷없이 "이따 저녁에 이야기 좀 해요"라는 것이다. "알았어"라고 건성으로 답하고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귀가해 간단히 씻고 나서서 거실 바닥에 앉았다. 그러자 아내가 대뜸 물었다.
"당신, 정말 귀촌할 거야?" 아, 그 기사를 봤구나.
"응…. 도시 직장생활에 지친 것 같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번쯤은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싶어."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말 할 거야? 언제 할 건데? 준비는 돼 있어?""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야. 근데 솔직히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현재는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고…."아내가 제시한 조건 두 가지대답을 하고 나니 아차 싶었다. 귀촌을 늘 입에 달고 다녔지만 여태까지 구체적으로 뭘 알아보거나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당장은 아니네?""응, 당신이 동의해주지 않을 게 뻔하니까 생각만 했지. 많은 준비와 그에 따른 시간이 필요하겠지. 당장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 내게도 그 정도 권리는 있으니 이야기해도 되지?" 뭔가 좋은 느낌이었다. 완전 반대는 아니구나.
"그래, 얼마든지.""조건은 크게 두 가지야. 하민(아들)이 아직 대학 2학년이니 일단 졸업할 때까지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것. 또 하나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언제, 어디 가서, 뭘 하며 어떻게 살 건지 좀 더 구체적인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나를 설득해주면 좋겠어."아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요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간 가장 힘든 장벽은 아내의 동의를 받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고 수용이 가능한 조건이었다. 웃음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알었어. 어차피 당신 동의 없이는 진행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 이해해줘서 정말 고마워."기분이 최고였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시간을 벌려는 아내의 작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두 번째 조건은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는 원론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라도 이렇게 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역시 아내는 현명하다. 비록 조건이 있는 동의지만 조그마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어 힘이 난다.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면 실망감에 우울해졌을 텐데….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도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으니 그 기대감으로 적어도 2년은 즐거운 일상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기분 좋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