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이 밝았다. 만덕주민공동체 최수영 대표가 주민사랑방 옥상 철탑망루에 오른 지 22일째였다. 맑은 날이지만 바람은 여전하다. 부산시 북구 금정산 비탈길에 자리한 만덕마을은 대부분 부서졌다. 파헤쳐진 자리에는 살던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팔 집'들만이 들어설 것이다.
노동절(1일)을 맞아 부산역 광장에서는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외침이 울려 퍼지는 역 광장 한쪽에는 <피란수도 부산, 역사투어> 홍보관이 자리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 다리를 끊고 남하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며 부산은 1023일간 임시수도로 지정되었다. 당시 30만이던 인구가 120만으로 급속히 불었다.
피난길에 헤어졌던 가족들이 영도다리에서 만나 눈물을 흘리고 가난한 피난민들이 영도, 초량, 수정 등지에 짐을 풀고 판잣집을 지었다.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그 오래전 사람들과 그 자손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곳, 부산이다. 언덕배기 곳곳에 얼기설기 지어놓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고 여전히 그곳에 사람이 산다.
살 집이 아닌 팔 집을 만드는 주거환경개선사업
만덕마을은 1970년대에 조성되었다. 정부가 부산시 동구, 영도구의 산동네 판자촌 주민들을 모아 강제이주시키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천막을 치고 살던 주민들이 20년 상환 조건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벽돌집을 지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주민들은 노점상, 날품팔이 등으로 팍팍한 생계를 이어나가며 그나마 쫓겨날 걱정 없는 내 집이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세월을 보내왔다.
이제 칠순이 된 만덕주민공동체 박종태 할아버지는 39년 전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부산에 정착한 할아버지는 고무 공장 일을 비롯해 안 해본 일 없는 노동자로 살았다. 만덕마을에 와 문짝이며 창문이며 직접 구해다가 땀 흘려 스스로 집을 지었다고 했다.
1553가구가 살던 만덕마을은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고 한다. 부침개를 해서 평상에 들고 나가면 이집 저집에서 먹거리를 들고나와 앉아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던 동네였단다. 이렇다 할 노후 대책은 없어도 살던 집에서 이웃들과 함께 늙어간다는 것 자체가 든든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만덕마을 건너편에 아파트가 한 채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아파트였다. 산자락에 옹기종기 들어섰던 집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2001년 만덕1동의 이름이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바뀌었다. 노인과 몸이 불편한 사람이 많아 주민들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살기 좋아질 것이라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민간이 아닌 공공이 하는 개발 사업이니 당연히 원주민의 주거권이 보장될 것이라 믿었다.
10년이 지나고 보상과 이주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주민들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LH는 2011년 9월 주민들에게 보상을 시작했는데 그 기준은 2007년 공시지가 기준이었다. 2007년 한국토지공사와 한국주택공사가 합병하는 등 여러 사정으로 보상 시기가 늦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개발 입소문에 주변 땅값은 훌쩍 올랐다. 갈 곳이 없었다.
주민들이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부산 시내 곳곳에서 집회와 항의 행동을 벌였다. 그러나 LH는 보상가를 조정하는 등의 원주민 재입주를 위한 대책 마련은 없이 입주가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부산 시내의 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 등을 알선하겠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주민비상대책위는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 지정 해제 소송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주민이 대부분 떠나고 이제 17가구만 남았다. 남은 이들은 갈 곳이 없으니 끝까지 싸우겠다며 농성 중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주거환경 개선' 명분으로 집 장사에 나선 LH
만덕5지구 개발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도시 저소득 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서 정비기반시설이 극히 열악하고 노후·불량 건축물이 과도하게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이 법에서 말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설명이다. 민간업자도 안 나서는 사업성이 떨어지는 낙후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이 목표인 사업이니 원주민 재정착은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싹쓸이 철거와 대단지 아파트 건설방식으로 원주민이 쫓겨난다. 민간이 조합을 구성해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민간개발방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개발방식은 집값 폭등의 주범이다.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애초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공공이 나서 가난한 사람의 집을 부수고 비싼 아파트 장사를 하는 형국이다.
원주민 재정착에 대해 현행법 제도가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은 현실에 맞는 보상과 임대아파트 제공이다. 그러나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현실적인 보상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주변의 전세조차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가진 것이라곤 내 몸 뉘일 집 하나였던 나이 든 주민들이 세입자가 된다는 것은 크나큰 불안요소다.
30~40년간 마을을 일궈온 주민들이 재정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런 방식의 전면개발이 아니라 노후 주택을 수리하고 시설물을 추가 구성하는 등의 현지 개량 방식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다.
LH는 공사의 부채 때문에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LH의 부채는 공공주택 확대 등 주거복지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민간건설사의 미분양아파트 매입임대사업, 건설사 소유 토지 매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끌어다 쓰는 것도 모자라 가난한 동네의 주거환경 개선을 명분 삼아 주민을 내쫓고 땅 장사, 집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LH가 주도하는 개발은 지구 내 국공유지를 무상 제공받는 등 특혜를 받으며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원주민 재정착을 위한 추가적 대책 마련에는 고민이 없다. 그들의 행태가 만덕 주민을 저 위태로운 철탑 망루로 내몬 것이다.
답은 그들에게 있습니다
철탑에 오른 지 18일, 만덕주민공동체 최수영 대표는 영상편지를 보내왔다. "조금 높은 곳에서, 조금 멀리,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답은 그들에게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구역지정 해제 소송이 대법원에서도 패하고 철거가 다가오자 만덕주민공동체는 지난겨울, 130일간 LH공사 앞 노숙농성을 했다. 농성 중에 용산참사 진압책임자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경주에서 총선에 출마한다고 하자 한달음에 달려와 '출마 반대 시위'에 함께 했다. 다시는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마음에서였다. 김석기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던 날 만덕의 주민은 9m 철탑에 올랐다.
우리는 다시는 그런 망루가 세워져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 장사하던 곳에서 계속 장사하고 싶다는 바람이 결국 망루 위 목숨 건 절규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철탑에 매달린 지 오늘로 21일째, 여전히 부산시와 LH는 답이 없다. 도시를 일구고 땀 흘려 일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쫓아낸 도시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또다시 도시 변두리로 몰려난 가난한 사람들은 추억거리가 된 오래전 얘기처럼 또 산비탈, 물 위에 판잣집을 짓고 살란 말인가. 부산시와 LH는 응답하라. 답은 당신들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