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과 세월호 참사 2주기 탓에 감정적으로 숨가쁜 4월을 보내고 있을 때, '어버이연합 게이트' 의혹 보도는 그야말로 '파문' 그 자체였다. 그렇게 맞은 '가정의 달'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20대 총선이 예상치 못했던 정국의 지각변동을 만들어 내면서 한국 정치계를 휩쓴 고무감과 반성 그리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잠시…. 한 보수단체를 두고 줄곧 제기돼왔던 숱한 의혹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한 듯하다. 후레자식연대가 5월 7일,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이번 사건이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는지에 대해 설문한 결과 '이 정도로 비겁하고 저열할 줄은 몰랐다, 충격적'이라는 반응보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으므로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덧붙여 '한국 정치 혹은 사회를 의인화하면 어떤 성격의 인물일 것 같냐'라는 질문에는 응답자들은 소설 <아큐정전>의 아큐,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 같은 기회주의자, 다중인격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물, 박쥐나 카멜레온 같은 인물 등 부정적인 답변이 줄을 이었다. 한정된 표본이라 할지라도 이런 반응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정치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혐오가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이분, 의혹을 밝히는 데 앞장서야 할 분인데...
이런 가운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일련의 의혹과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받았다"라고 말했다. '관제데모'라는 심각하고 중대한 의혹. 그 중심에서 철저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 해야 마땅한 자리임에도 이렇게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에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있다. 만약 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허위보고'라는 꼬리표를 달아 실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가능성 탓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그 사실을 몰랐다면 그것은 더욱 커다란 문제다. 청와대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은 국정 운영 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때문에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앞장서서 사태를 파악하고 오롯이 책임을 지는 모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대통령으로서 한국 정치에 대한 시민의 반감과 불신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박근혜'라는 한 인격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야당의 책임도 크다. '어버이'라는 이름이 잘못 쓰이던 지난 10여 년간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서 쉽게 빠져 나갈 수 없다. 그보다 앞서 시민들이 부정적으로 의인화 시킨 한국 정치에 야당이 빠져 있을 리 만무하다.
어버이연합의 어버이날
그런 가운데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지난 4월 22일 기자회견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일각에서는 그의 안위에 대한 걱정까지 쏟아내는 상황이다. 그가 가족과 함께 어버이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마저 생긴다. 또한, 일당을 받고 시위에 동원됐던 많은 이들이 힘 없고 돈 없는 사회적 약자였다는 것을 보면 '어버이연합'이 맞는 2016년의 어버이날은 여러모로 쓰라린 날일 것이다.
한국 정치가 '어버이'를 이용하는 동안 그 단어가 가진 진정한 의미가 얼마나 훼손됐는지는 수치로 표현할 길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에서 '어버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어버이연합'과 관련된 단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퇴색된 어버이의 의미가 어버이날을 선회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와 전경련은 묵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조금이나마 상쇄하기 위해 '후레자식연대'가 지난 한 주 동안 '어버이날, 어버이께'라는 제목으로 시민들이 보내온 영상 편지들을 모아 봤다.
2016년 5월 8일이 '어버이'라는 이름이 제자리를 찾는, 의미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띄운 이 메시지에 누군가가 응답해야 한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어버이'를 사용한 이들, 부정적으로 의인화된 한국의 정치다.
(* 이 편지 영상 2분 20초부터는 눈에 힘을 주고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버이연합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아들이 절절한 부탁을 아버지께 건넨다. 놓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