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풍요롭다. 무엇보다 햇살과 바람이 차고 넘친다. 자연스레 고개가 문을 빼꼼 열고 두 발이 질세라 따라 나선다. 딱히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늘 걷던 동네도 햇살이 비치면 반짝거리고, 늘 보던 가로수도 바람이 불면 시원하게 소리를 내니까.
그런데 5월은 잠깐이다. 금세 여름이 찾아와 따사로운 햇살은 뜨거운 태양으로, 살랑살랑 바람은 후텁지근한 열풍으로 바뀔 테니. 여름이 오기 전 봄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5월, 이달에 어울리는 일들로 5월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보자.
5월을 기억할 감각을 찾는 산책
한때는 유럽 오래된 도시의 공원을 부러워했지만, 이제 한국에서도 도시 곳곳에 자리한 공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갓진 동네 공원 한두 군데를 알아두면 나만의 비밀 공간처럼 언제든 찾아가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종종 찾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풀과 꽃, 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주 보아서라기보다는 그들이 계절에 따라 눈에 띄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서 함께하는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산책에 재미가 붙고 공원이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호수공원 나무 산책>은 나무를 알아가며 공원과 친해지는 과정을 담은 책인데, 나무 문외한이던 저자가 사시사철 변하는 나무에 관심을 갖고 이름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공부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나무를 보려고 공원에 가다 나무가 있는 풍경을 느끼게 되었고, 이제는 자연스레 나무와 인사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다른 작가의 말을 빌려 "걷는 사람은 흐르는 날씨와 시간을 묶어 생각" 하기에 산책을 하며 그때그때 시간에 따라 "특정한 냄새, 특이한 숨, 고유한 빛 그리고 독특한 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5월에 담을, 5월을 기억할 각자의 감각을 찾아 동네 공원에 나가보자.
동네서점으로 마실 오세요
산책이 자연과 나누는 대화라면 마실은 동네 사람을 만나 두런두런 나누는 수다와 함께한다. 예전에는 동네 슈퍼나 복덕방이 사랑방 역할을 맡았지만 이제는 그런 풍경을 찾기 어렵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기다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고마운 마음으로 물건 하나 담으며 다음에 나눌 이야기도 함께 마련할 수 있는 그런 공간. 아마 이 모든 조건을 훌륭히 해낼 곳은 동네서점 아닐까 싶다.
도서 시장이 좋지 않아 매년 서점이 줄어든다지만, 최근 들어 곳곳에 생긴 작은 동네서점은 적막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막상 어디에 어떤 서점이 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은 요즘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은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자리한 동네서점 수백 곳의 위치와 정보를 알려주고, 특색 있는 동네서점이 어떤 생각으로 무슨 일을 벌이는지 깊게 소개하고, 서점 주인장이 권하는 추천도서 목록을 담아 그곳에 가보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책으로 서로 만날 기회를 전한다. 이들이 보낸 초대장을 보면 어느새 동네서점에 들러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네서점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이 휘몰아쳐도 비바람이 불어도 그곳에, 그 자리에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당신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가까운 동네서점으로 오세요.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요. 저희는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느리게 걸을수록 세상은 커진다
"내가 신발 밑장만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고통을 즐기는 취향 때문이 아니라, 느림의 속도에 가려진 사물들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차나 자동차의 유리창 뒤로 풍경을 흘려보내면서 풍경의 베일을 벗길 수는 없다."
두 발로 세상을 만끽하는 가장 느린 여행자 실뱅 테송은 <여행의 기쁨>에서 걷기와 유랑을 예찬한다. 구글맵으로 세계 곳곳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요즘이지만, 이것은 이해하지 못하고 스치는 것이며, 뒤적여 조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며, 본질 위를 스쳐 미끄러지는 것이라 평하며, 세상에 남은 경탄할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이유와 방법과 의지를 읊조린다. 유랑이라고 해서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뒤죽박죽 걷는 건 아니다.
"(유랑자는) 매우 엄정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유랑의 리듬, 즉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하고 걷는 사람이 자신의 느린 속도를 잊을 수 있게 도와주는 규칙적인 움직임을 획득하려면 요령이 필요하다. 여행을 하는 것은 질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내재화하는 것이다." 걷는 게 끝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고독하게 낮에는 모험의 땅에서 길을 가고, 저녁이면 글쓰기의 땅에서 길을 간다." 산책, 마실, 걷기만 해도 바쁠 텐데, 5월에 어울리는 일이 하나 늘었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두 5월에 어울리는 일이고, 몸과 마음을 열면 5월의 리듬이 우리를 이끌 테니까. 그저 밖으로 나가 걷기만 하면, 걸으며 마주하는 것들을 감각하려 노력하면, 그 느낌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나누면 충분한 일 아니겠는가. 만끽할 일이 하나둘 쌓이니 5월이 부쩍 길어진 기분이다. 신나는 쪽으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 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