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비치되어 있던 데톨 향균 스프레이와 페브리즈 에어를 치웠다. 30가지 세균을 99.9% 제거한다는 화학물질을 쓰레기통 바닥, 사물함 뒤, 창틀에 뿌리고 닦았다. 책걸상에 사용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미세먼지가 심해 창문을 못 여는 날이면 '진짜 냄새를 없애준다'는 공기탈취제를 분사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청결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제자들에게 '몹쓸짓'을 했다. 생활용품이 살인도구가 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사과할 일이 있었다.
"여러분, 미안해요."
"선생님, 왜요?"
"예전 도덕 시간에 말한 데톨이 정직하지 않은 기업이었어요."
지난 3월 마지막 주 월요일 4교시 도덕 수업시간이었다.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초등 4학년 도덕교과서 26쪽에 등장했다.
학생들은 여러 가치 덕목들이 섞여있는 가운데 올바른 항목에 동그라미를 쳐야 했다. 게으름과 성실, 포기와 근면처럼 대응관계에 있는 가치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활동 수행을 위해 2분의 시간을 주었다. 6개 모둠 사이를 돌아다니며 순시 지도를 하였다. 문제가 어렵지 않았는지 연필이 빠르게 움직였다.
정답 확인을 위하여 교실 TV 화면에 문제를 띄웠다. 여기저기서 답을 말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어지간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현호까지 나섰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손끝이 교실 천장까지 닿을 듯 팔을 뻗은 현호에게 기회를 주었다.
"성실, 정성 그리고 근면 음~ 정직이요."
"네 잘 했어요."
"거짓. 거짓. 키키킥."
바른 답을 선택한 현호를 칭찬하는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고개를 들어 교실을 쭉 훑어보자 키득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와중에 석율이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입꼬리가 올라가 있길래 물었다.
"너 왜 웃냐?"
"선생님, 거짓말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나도 모르게 그래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당황스러웠다. 칠판에 적어둔 대로 이번 시간 수업 주제는 '근면 성실하고 정직한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익히고 꾸준히 실천하기'였다. 복잡하게 접근하지 말고 그냥 당연히 정직해야지라고 일러주면 그만인 것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교과서대로 교사용 지도서에 나와있는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석율이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곳곳에서 터진 웃음소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석율아, 너 마트에서 물건 살 때 포장지에 적힌 내용 다 의심하니?"
"아니요. 그걸 누가 속여요?"
교사 책상 옆에 놓여있던 데톨 향균 스프레이를 집어 들었다. 데톨은 신뢰의 상징이었다. 군복무 시절 의무실 책상엔 데톨 핸드워시가 놓여 있었고, 아내가 딸을 낳고 산후 조리원에 있을 때 데톨 알코올 소독제를 썼다. 더군다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위생 관련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부정을 저지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사회는 서로의 믿는 관계야. 기업은 최대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직해야 돼."
데톨 향균 스프레이를 석율이에게 줬다. 코 앞까지 가져가야 보이는 작은 글씨를 읽어보라 하였다. 석율이는 '사용시 주의사항'을 유심히 보았다.
'내용물이 눈이나 피부에 닿으면 깨끗한 물로 씻고 이상이 있을 경우 의사와 상의하십시오, 사용시 충분히 환기를 하십시오, 밀폐된 장소에 보관하지 마십시오. 어린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십시오...'
학생들은 데톨 향균 스프레이의 꼼꼼한 설명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직한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익힌다는 학습목표를 잘 달성한 수업처럼 느껴졌다. 물론 두 달만에 정직하지 않은 기업을 소개한 대가로 사과를 해야 했지만 소득도 있었다. 옥시 사태를 소재로 소비자 교육을 했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그토록 강하게 주장하는 자유는 현명한 소비자를 가정하고 있다. 아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강조하며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경제활동이 자연스럽게 조정된다고 하였다. 기업이 소비자를 속이고 의도적으로 불리한 사실을 은폐했다면 소비자는 해당 기업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정직하지 않고 비윤리적인 기업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경영 악화로 망한다고 해도 이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철학자 하버마스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합리적인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정직과 신뢰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신뢰보다 이익이 앞서는 사례가 숱하다. 폭스바겐 디젤 차량 리콜, 홈플러스 개인정보 불법매매, 옥시 가습기까지 최근의 일만 열거해 보아도 많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소한 피해 수준을 넘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 정직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다.
10시 45분, 2교시 종료 후 티타임 시간이다. 데톨 향균 스프레이를 들고 선생님들이 모인 장소로 간다. 커피를 마시며 얘기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46명이나 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5년이 지난 지금에야 밝혀지고 있다고. 혹시 교실이나 집에 해당 제품이 있으면 없애는 편이 좋겠다고, 애들한테도 한번쯤 일러주기를 부탁한다고. 이렇게 해서 단 몇 개의 제품이 사라지기만 해도 좋겠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자녀에게 가습기를 틀어줄 때 불안하지 않도록 정직을 가르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