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자신만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니 이 능력을 이용해서 밥벌이에 나서 잘하면 한 밑천 잡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방송에도 출연하고 책도 출판하는 등 나름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면 조금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영화 <식스 센스>의 주인공도, 딘 쿤츠의 '살인예언자 시리즈'의 주인공도 모두 죽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없는 능력이지만, 이렇게 타인의 죽음을 볼 수 있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죽음을 맞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죽음을 피하거나 최대한 늦추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그것을 자신에게 알려주려 한다면 어떨까?
'빽넘버'를 볼 수 있는 능력의 남자임선경은 2016년에 발표한 <빽넘버>에서 이런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대학에 갓 입학한 주인공은 부모님과 함께 지방에 내려갔다 오던 도중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부모님은 현장에서 돌아가시고 주인공은 엄청난 부상을 입은 채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주인공. 그에게는 이때부터 이상한 능력이 생기게 된다. 다른 사람의 등에 나타나는 '빽넘버'가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 넘버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짜다. 그러니까 '365'라고 나타나면 1년 뒤에 죽는다는 얘기다.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모른다. 주인공은 도처에서 이런 넘버를 보면서 지내게 된다. 그 숫자도 사람마다 다양하다. '1'이라고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20000' 가까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1'이라고 보여진 사람이 있으면, 주인공은 가서 경고해 주고 싶다. 오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하다못해 집에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받을 가능성이 많다. 자기가 오늘 아니면 내일 죽는다는데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궁금해진다. 나의 '빽넘버'는 과연 얼마일지.
죽음을 경고 하려는 주인공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 세상에서 구현된 유일한 '평등'이란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죽음이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죽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죽는다.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큰 병에 걸렸을 때 의사가 '3개월 남았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게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셈. 그렇더라도 당사자가 그 사실을 알고 싶은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 나름대로 궁금하긴 하겠지만 실제로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갈지 걱정이다. 마치 통장 잔고를 들여다 보듯이 '앞으로 100일 남았네'라고 생각하면서, 글자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는 꼴이다.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정말 이런 숫자가 등에 붙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숫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지금 등 뒤에서 그 숫자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덧붙이는 글 | <빽넘버> 임선경 지음. 들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