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앞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이 섰다.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아내 뱃속의 아이를 잃은 안성우씨는 "법의 정의를 외치는 변호사들도 거대 기업의 자본 앞에서 인간의 양심마저 팔아버리는 악마가 되는 모습을 봤다, 그게 바로 김앤장이고 옥시"라고 말하면서 울먹였다.
그는 "옥시를 변론했던 김앤장의 변호사들은 변호사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퇴출돼야 한다, 법은 국민을 보호하기 만들었다, (김앤장은) 수많은 아이들과 가족을 죽인 기업에 대해 거짓보고서를 내면서 변론했다"라면서 "김앤장은 당장 짐 싸서 (옥시의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김앤장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1차적인 책임은 기업과 정부에 있지만, 김앤장이 옥시를 변호하면서 이 사건의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탓이다. 여기에 옥시로부터 뒷돈을 받고 옥시에 유리한 실험을 한 서울대 조아무개 교수 역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정부·변호사·과학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이번 사건을 둘러싼 각종 재판 기록 등과 검찰이 밝힌 내용을 살폈다.
비극의 시작비극의 시작은 2000년 중반이다. 당시 옥시 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최아무개씨는 바이오 벤처기업의 노아무개 대표를 만났다. 노 대표는 1994년 유공에 있으면서 CMIT·MIT를 주요 성분으로 하는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최씨는 노 대표를 만나 PHMG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 개발에 대한 조언을 얻었다.
노 대표는 "CMIT·MIT와 달리, PHMG의 흡입 독성은 국내외에서 검증된 바 없다, 독성 실험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노 대표로부터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한 면담보고서를 만들어 윗선에 보고했다.
하지만 당시 신현우 대표가 이끌던 옥시는 흡입독성실험을 하지 않은 채, 2000년 10월 가습기 살균제를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이 제품에 대한 어떠한 검사도 하지 않았다.
옥시와 서울대 교수의 부적절한 거래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앞서 매년 봄 원인불명의 폐 손상으로 임산부나 영유아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역학조사에 나섰고, 그해 8월 폐 손상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했다. 당시 폐 손상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와의 상관성도 조사해달라는 요구가 나왔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이를 외면했다.
제품 제조사들은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 하지만 옥시는 정부 조사 결과에 의구심을 품었다. 옥시는 따로 가습기 살균제 흡입 독성실험에 나섰다. 향후 있을 민형사상 소송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해 9월 옥시는 호서대학교, 서울대학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과 계약을 맺었고, 이들 3곳은 각자 실험에 나섰다. KCL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독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 초안을 옥시에 제출했다. 하지만 옥시는 KCL의 실험이 잘못됐다며, 보고서를 수령하지 않았다.
옥시는 실험에 나서는 서울대 조아무개 교수에게 특별한 이메일을 보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옥시 대표였던 거라브 제인은 조 교수에게 "옥시 제품이 무해하고 피해자들의 폐질환이 다른 원인에 의한 것임을 밝혀달라"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을 비판해 달라"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냈다.
또한 연구용역비 2억5200만 원과는 별도로, 1200만 원의 자문료를 보내겠다는 내용도 이메일에 담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를 두고 "'뒷돈을 줄 테니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여기에 응했다.
곧 임신한 쥐를 상대로 한 실험 결과가 나왔다. 뱃속의 새끼 15마리 가운데 13마리가 죽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여기에 "투여물질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는 의견을 달았다.
2012년 4월 '가습기 살균제를 반복 흡입한 쥐의 폐에서는 어떠한 증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다만 제품이 폐를 제외한 신장·간장·심장 등 다른 장기에 영향이 미칠 수 있음이 의심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연결고리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서울대 보고서는 옥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김앤장은 2014년 12월 검찰에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에서 서울대 보고서를 인용해, '제품을 표준사용량의 최대 4배까지 사용하더라도 실험동물의 폐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앤장은 각주에서 제품이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도, '이 사건 폐질환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 4월 "피해자에 대한 건강 모니터링 등을 통해 폐 이외의 건강피해 가능성을 조사·연구하고 있다"라면서 "해당 분야에 대한 진단·판정기준이 마련될 경우 지원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때늦은 결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김앤장은 실험에 개입했나
조 교수는 구속됐다. 조 교수 쪽은 "김앤장이 직접 실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 교수와 김앤장 쪽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살펴보면, 김앤장은 2011~2012년 조 교수의 실험 끝난 뒤에도 조 교수에게 연락했다. 2013년 김앤장 소속 김아무개 변리사와 조 교수는 새로운 실험 제안서를 주고받았다.
김 변리사는 2013년 7월 조 교수에 보낸 메일에서 "구체적인 실험 디자인, 타임라인, 예상비용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작성해 달라"면서 "실제 소비자들이 노출된 환경과 좀 더 유사한 환경에서 정확한 농도 측정 방법을 사용하여 실험한다면 독성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조 교수가 실험계획서를 보내자, 김 변리사는 "저희 팀 내부에서 상의했다"면서 8가지의 실험 방법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클라이언트가 실험계획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이후 이 실험은 연구팀 내부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김앤장은 수사 대상에 오를까. 검찰 관계자는 취재진에 김앤장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겠다고 언급했지만,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번 사건에 큰 책임이 있는 정부 또한 수사 대상에서 빠져있다.
18일 검찰 관계자는 "정부에 형사책임을 물을 단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수사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