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논객 지만원씨가 지난 19일 5·18 단체 소속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호된 질책과 항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지만원씨 일행과 5.18 단체 회원 간의 거센 실랑이와 몸싸움이 벌어지며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525호 법정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군 소행이라고 주장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당한 지만원씨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이날 재판에는 5·18 단체 회원 등 시민 30여 명이 함께 했다.
소동은 재판장 밖에서 일어났다. 지만원씨 일행과 5·18 단체 회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양측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회원이 지만원씨의 멱살을 잡기도 했고, 지만원씨 측의 한 인사는 5·18 단체 회원의 손을 물어뜯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씨의 5·18 관련 재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8년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필자는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한다', '북한군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는 등의 글을 게시해 5·18 유족들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당해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
지만원의 '무죄' 선고가 갖는 중요한 의미
당시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서 1심과 2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도 원심확정 판결을 내리며 지만원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무죄로 확정되자 그는 "10년 동안 싸워온 5·18과의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부터 누구든 5·18에 대한 역사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며 "싸움은 이제부터다. 더 이상 겁내지 말고 5·18의 진실을 온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기어코 거꾸로 서 있는 5·18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라는 아전인수식의 소감을 밝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대법원의 판결을 완전히 자의적으로 해석한 무지의 소산이었다. 당시 대법원이 지만원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그의 글이 '집단표시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평가가 명확하게 내려진 사안이기 때문에 개인적 의견에 불과한 그의 글로 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법원의 판결은 지만원씨의 표현이 개개인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5·18 유공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는 '여자 아나운서는 모든 것을 다 줘야 한다'고 말했다가 아나운서를 모욕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과 2심에서 유죄, 대법원에서 무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던 강용석 전 의원과 같은 경우다. 단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법적 요건이 성립되지 않았을 뿐이지 명예를 훼손한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당시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중요한 사실이 하나가 더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대법원의 확증이 바로 그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이미 그 발생 배경과 경과, 계엄군과 광주시민 사이의 교전 사태의 발생원인, 경과, 그 밖의 인명피해의 발생 원인, 5·18 민주유공자들의 지위와 그에 대한 보상, 예우 등에 관하여 법적 및 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당시의 판결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가 법적·역사적으로 불변하다는 사실을 대법원이 명확하게 선언했다는 중차대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조차 지만원씨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아나운서의 '아'자도 꺼내지 않는 강용석 전 의원과 달리 지만원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계속해서 폄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확증편향'이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이는 자신이 믿고 있는 확신을 진리라고 여기는 상태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면 자기의 판단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취합하고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끼워 맞추려 고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것이다.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오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오류를 입증할 객관적인 사실이나 명백한 증거조차 거짓이라 믿으며, 자신이 믿고 있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한들 이것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확신이 깨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믿고 있는 지만원씨 같은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된다. 이미 객관적인 자료들과 역사적 고증을 거쳐 '북한군 개입설'이 허무맹랑한 가공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명명백백해진 상태다. 그러나 지만원씨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 허황된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독한 확증편향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다. 망상과 현실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의 '입증'이나 증거의 '제시'가 아니라 '치료'다. 지만원씨가 받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재판'이 아니라 '치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