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만나기 전 많이 긴장한 게 사실이다. 학교 밖 아이들만 모아놓은 학교라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반항기 가득한 눈빛과 공격적인 말투뿐이었다. 어쩌면 그것도 귀찮아 입을 꾹 다물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다면 낭패다.
환한 미소로 긴장감을 감추고 교실 문을 열었다. '이렇게 환한 얼굴로 다가서는데 설마 침이야 뱉겠어!' 하는 심정이었다. '스마일 작전'이 먹힌 것인가? 몇몇 아이들 표정에선 '저 사람 누구야!'하는 속내가 읽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 표정은 무척 밝았다.
"얘들아 안녕!"하고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의정부 '꿈이룸 학교' 유자청(유유자적하는 청소년)' 아이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유자청은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해 주 중에 운영하는 꿈의 학교다. 직업 찾기와 연관된 교육인 '작업장 학교'도 하고 인문학 학습도 한다. 이밖에 '여행 프로젝트'도 빼놓을 수 없는 학습 프로그램이다.
이 아이들을 만난 곳은 의정부 교육 지원청 작은 회의실이다. 유자청은 교육 지원청 회의실을 빌려 쓰고 있다. 꿈이룸 학교는 유자청 외에도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프로그램 대부분은 경기도 교육청 구 북부청사에서 이루어진다.
유자청 아이들과는 지난 18일 오후에 만났다. 김경관 경기도 교육청 꿈의 학교 담당 장학관과 이은민 경기도 교육청 부대변인이 기자와 동행했다.
꿈의 학교 교과서 같은 꿈이룸 학교
'꿈이룸 학교(교장 서우철)'는 장학사, 교사, 학부모 등 많은 사람이 뜻을 모아 만든 학교다. 134명이 이 학교 설립에 힘을 보탰다. 이렇듯 많은 이가 참여한 만큼 학교 규모도 크고,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60개의 교육프로그램에 초·중·고 재학생과 학교 밖 아이들 30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니, 꿈의 학교치고는 역대급인 셈이다. 올해에는 학교 밖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자청과 함께 방학 기간에 운영하는 '여름 징검다리 학교', 방과 후나 주말에 운영하는 평화통일 프로젝트 등을 운영한다. 마을 주민을 위한 '길잡이 교사, 마을 서포터즈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이 학교는 경기도 교육청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꿈의 학교'의 교과서 같은 학교다. 노력, 경험, 실수를 통해 깨달음과 능력을 얻는 게 목적이란 점이 그렇고,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스스로 꿈을 찾게 한다는 점이 그렇다. 지역사회와 함께 아이들을 키워, 아이들을 다음 세대 마을의 주체로 세우겠다는 이 학교 목표는, 꿈의 학교가 추구하는 마을교육공동체 정신의 진수(가장 중요한 본질)다.
교장이 현직 장학사라는 점이 특이하다. 서 교장은 23일 기자와 통화에서 "제 업무가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공동체, 문화예술교육인데, 꿈이룸 학교는 이 업무의 연장선에 있는 학교다. 처음에는 지원만 하려다가 좀 더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교장을 맡게 됐다"라고 교장직을 맡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서 교장은 "올해에는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꿈이름 학교'가 등록돼서 의정부시로부터 지원을 받게 됐다. 지방자치단체가 꿈의 학교와 결합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밖에서 배우는 게 수학, 영어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어요"
"일반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밖으로 나와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배우는 게 더 크다고 생각했어요." 열여덟 살 소녀 예진이가 일반 학교를 그만두고 '꿈이룸 학교'에 온 이유다. 이 말들 들으면서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진이는 "학교(일반 학교)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어른들을 만난 게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예진이는 또한 "이 곳에 오기 전에는 약간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렸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데 두려움도 있었는데, 작년에 꿈이룸 학교에서 회의를 이끄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많이 나아졌다.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예진이는 작년에 '공간팀'이라는 프로그램 팀장으로 활동했다. '공간팀'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을 위한 카페, 노래방, 공부방, 조리실 등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곳을 탐방했어요. 웬만한 것은 우리가 직접 만들었어요. 벽화를 그리기도 했고, 가구를 직접 만들기도 했어요. 말로 표현하기는 좀 어렵지만, 우리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 나가다 보니 배우는 게 참 많았어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대화·소통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했고요." 열여섯 살 동현이는 "축제를 기획하면서 몸을 쓰는 게 좋았다"라고 말했다. 듣다 보니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만든 '온 마을 잔치' 등 많은 축제에 진행요원으로 참여해 열심히 일한 게 좋았다는 말이었다. 온 마을 잔치는 꿈이룸 학교가 작년 10월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진행한 마을잔치다. 올해도 10월께 진행할 계획이다.
동현이는 또한 "예전에는 사람들 만나는 게 싫어서 단체 같은 데 잘 안 나갔다. 지금도 좀 그런 편인데, 이곳에 있는 친구들과는 참 친하게 지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이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주어서, 힘을 합해 무엇인가를 하니까"라고 짧게 답했다.
"스스로 하다 보니, 쉬라고 하는데 공부하는 경우도"
이렇듯 프로그램 대부분을 아이들이 직접 기획·운영하다 보니 교사들이 하는 일은 '길잡이' 역할 뿐이다. 유찬영·윤이희나 유자청 길잡이 교사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방법을 찾아줄 뿐, 샘(교사)들이 나서서 하는 일은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혹여 실수해도 그 해결까지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라는 방침이 있어,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도록 지켜봐 준다"라고 덧붙였다.
유 선생은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다가 작년에 이 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윤이희나 선생은 대안학교 교사와 교육 잡지를 만들다가 올해 인연을 맺었다. 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다.
윤이희나 : "교육현장에 있다 보면 '학교 밖 청소년들'의 스펙트럼이 나날이 다양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일반 학교가 몸에 맞지 않아 온 이른바 부적응 아이도 있지만,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온 아이와 학교를 넘어 배움을 확장하기 위해 온 아이도 적지 않아요."
유찬영 : "꿈이룸학교에는 포용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실수했을 때 넌 못하니까 하지 마! 보다는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다독여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다른 곳에서 거칠게 행동하던 아이도 이곳에 오면 신기하게 온순해져요.
스스로 정신도 참 중요한데, 작년에 '쉼표 학교 캠프'를 아이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꿈이룸학교의 스스로 교육이 얼마나 유익한지 확인할 수 있었어요. 쉼을 주면 잠을 자거나, 그냥 침대 같은 데서 뒹굴뒹굴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그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쉼을 즐겼어요. 정말 놀랍게도 공부를 한 아이도 있고요.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아이들이 친절한 이유 중에는 이것 말고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먼저 말을 걸고 화합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유자청만의 독특한 규칙이 있었다. 이 규칙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었다. 스스로 만들었으니 기꺼이 지키는 것이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된다면 '유자청을 방문해 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