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자주 많이 났다. 아마, 남자 혼자 사는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탈취제를 자주 뿌리곤 했다. 또한, 빨래에서도 좋은 냄새가 나는게 좋아 섬유유연제도 항상 가득 넣었고, 화장실을 청소할때면 락스를 다량 사용하였다.
그런데, 최근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2011년 이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뒤, 접수된 피해 규모는 1848명이며 사망자 수만 266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듣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과연 가습기 살균제만 위험한 것인지, 내 주변에 있는 방향제, 섬유유연제, 락스 등의 많은 제품들은 괜찮은 건지.
29일 방영된 KBS1 <취재파일>에서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가습기살균제 문제로 화학물질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을까.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화학물질들
<취재파일>에서는 일상속에 어떤 화학물질들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가정에서도 자주 사용하고 고깃집에서도 사용하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뿌리는 탈취제이다. 탈취제에는 제 4급 암모늄클로라이드(DDAC)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독성이 있다고 정식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독성이 없다는 확인도 되지 않은 미확인 화학물질이다.
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 김판기씨는 "4급 암모늄클로라이드 독성에 대한 사례가 상당히 많이 있다"며 실험실에서 세척용으로 사용한 경우에 "생쥐들이 계속 번식이 안되거나 모체가 사망하는 일이나 태아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름에 자주 사용하는 살충제에는 퍼메트린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퍼메트린은 내분비계장애물질로서 발암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이를 사용금지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종한씨는 폐쇄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살충제를 사용하게 되면 구역질, 두통, 무기력증 등의 증세가 올 수 있다고 말한다.
놀라웠다.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서 듣고 볼때만 하더라도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습기를 사용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와닿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전하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주변에는 독성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없는 화학물질들이 차고 넘쳤다. 매일 그것들을 마시고 몸에 바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안전하게 살고 있는걸까.
심지어, <취재파일>에서는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린 서울대와 고려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세정제와 소독제에 사용되는 163개 화학물질 중에서 38개가 EU기준 위험 물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한국에서 판매되는 세정제와 소독제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은 5개 중에서 1개는 유렵에서 위험물질로 분류된 상태라는 것이다.
충분히 위협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에도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어린이나 노약자의 경우에 피해가 컸다. 세정제와 소독제는 일상에서보다는 병원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제품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 상황에서 사용될 확률이 높다. <취재파일>이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당장의 가시적인 피해는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라도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으로 느껴졌다. 알았을만도 한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화학물질의 위험성, 제대로 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실한 화학물질 관리... 사용법을 제대로 아는것도 필요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사무국장 현제순씨는 "A물질의 검사를 하지 않았을 때, 모르는 물질이고 독성정보가 아직 확인 되지 않았다면 외국은 '위험하다'라고 생각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성정보가 없으면 써도 되는 것으로 환경부가 입장을 발표하고 그런단 말이에요"며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관점 자체가 다름을 지적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에 작년 4월까지도 위해우려제품 15종에 대해서 '자율안전확인대상'으로 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판매자가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고 신고만 하면 판매가 가능한 상태였다.
서강대 화학과 교수 이덕환씨는 "기능에 따른 관리가 필요하지만 품목에 따른 관리를 하는 상태이다. 정부의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업이 자꾸 유혹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화학물질을 관리가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렸다.
독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화학물질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자율안전확인대상'의 방법은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다. 또, 우선 판매와 사용을 시작하도록 둔 뒤에 독성이 있음이 밝혀지면 통제하는 방식은 더욱 위험한 방법이다.
외국의 경우처럼 독성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화학물질의 경우에는 사용을 제한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독성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독버섯일지도 모르는 버섯을 무작정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사용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화학물질들의 경우에 제대로 된 사용용도와 용량을 지켰을 경우에는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화학물질이 제대로된 사용방법을 숙지하지 못한채 사용되곤 한다.
신체와는 최대한 접촉을 하지 않아야 하는 탈취제를 몸에 직접 사용한다거나, 속옷에 이를 사용하고 입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많은 화학물질이 제대로 된 사용방법이 알려지지 못한채 사용되고 있다.
안전하다고 믿게 만드는 광고들도 문제이다. 흔히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티슈에는 '아이에게도 100% 안전'와 같은 문구가 적혀있고 최근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의 경우에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가 있었다.
탈취제의 경우에도 신체에 직접 뿌리는 모습은 광고에서 자주 보여진다. 결국, 인식 속에서 화학물질의 위험성은 조금씩 잊혀지고 자연스럽게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늘어나게 된다.
<취재파일>이 보여준 우리 주변 화학물질은 정말 많았다. 그리고 우리는 무심히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위험한 것은 가습기살균제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참사를 만들어낼 위험요소들은 우리 주변에 이미 산재해 있었다. 다만 우리가 몰랐을 뿐.
아직 갈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환경부에서는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고, 시민들 역시 불매운동이나 화학물질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구멍 뚫린 화학물질 관리의 구멍이 얼마나 메워질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안전의 몫을 시민들에게 돌리는 것은 옳은 걸까. 분명한 것은 정부에겐 첫 번째도 생명, 두 번째도 생명이라는 교훈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