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우여곡절 끝에 베를린을 시작으로 독일 주요 도시에선
임대료 제동책(Mietpreisbremse)이라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 '임대료 상한제'라고 소개된 (
<'세입자의 도시' 베를린, 주택 임대료 상한제 전면 도입' 참조> 김세훈, 경향신문, 2015. 6. 2.) 이 정책은 해당 지역의 임대료 기준표(Mietspiegel)에 따른 임대료에서 10% 이상 임대료를 높이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다. 올해 2월까지 약 300개 도시에 시행되었고, 독일 전체 주택의 30% 가량이 해당된다.
* 임대료 기준표: 주택 정보(위치, 크기, 내외부 설비, 건설 연도, 친환경 설비 등), 주택 일대의 건설환경(소음, 밀도 등) 지역 주변 시설(공공시설, 교통시설) 등의 다양한 기준을 비교하여 2년마다 지역과 건물 수준에 따른 표준 임대료를 발표한다.임대료 제동책의 본래 명칭은 '긴장된 임대 시장의 임대료 상승의 제동을 위한 법률(Gesetz zur Dämpfung des Mietanstiegs auf angespannten Wohnungsmärkten)'로 그동안 독일 주요 도시의 불안정한 임대시장과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문제시 삼고, 그에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 법적으로 제동을 건다는 상징적인 법이었다.
강력한 명칭만큼이나 전 세계 관련 전문가들과 주택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독일, 특히 베를린 내에서는 임대료 제동책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임대료 제동책이 지니는 수많은 예외 사항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베를린에서는 임대료 제동책 시행 1년을 맞이하며 임대료 제동책의 성과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부정적인 예상은 정확히 맞아 들었고, 심지어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 그 논의의 주된 내용이다.
먼저, 임대료 제동책은 임대료 제동책이 시행되기 전 기존 임대 주택에만 적용된다. 즉, 새롭게 지은 주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신규 주택에 대한 적절한 임대료 통제가 어려워졌고, 이제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 자체가 사치를 넘어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임대료 제동책이라는 이름의 법이 존재함에도, 신규 임대 주택에 한해서 임대료를 높일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둘째로,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기 비교적 어려운 독일에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쫓아내는 편법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현대화 사업이다.
이는 유럽 연합과 독일 정부 등에서 추진하는 에너지 전환 사업 등과 긴밀히 연결돼 권장되는 사업이었고, 보통 보조금 등을 통한 지원도 있는 장려 사업이다. 현대화 사업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은 역시 임대료 제동책의 예외 중 하나였고, 그에 제동을 걸 수 없다.
결국 현대화 사업을 빌미로 과도한 공사 소음을 일으키거나, 공사 중 의도적으로 화장실을 고장 내는 등 정상적으로 집에서 생활할 수 없게끔 생활환경을 지속적으로 저하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 외의 여러 유사한 의도를 지닌 방법으로 세입자가 자진해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공공연한 편법이었다. 임대료 제동책은 이 방식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었다.
마지막으로, 이전 계약서의 임대료가 해당 지역 표준 임대료보다 10% 이상 높더라도 임대료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세입자로선 계약을 하는 당시 이전 세입자의 임대료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임대료 제동책 법은 집주인이 이전 세입자의 임대료가 얼마였는지 명시할 의무를 부과한다. 그리고 차후에 적발될 시 그동안 추가로 부담한 임대료를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편법 없이 정직하게 법을 따르고 그 법이 의도하는 바를 착실히 지켰다면, 애초에 베를린의 임대료 상승이 일어났을 리가 없다. 그 누구도 감시하지 않는데, 집주인이 이전 세입자의 계약서를 제시할 이유도, 그리고 제시된 계약서가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길도 없다.
각종 세입자 단체와 지자체의 도움이 있다지만, 임차인과 임대인이라는 껄끄러운 관계를 놓고 봤을 때, 주변 시세에 비해 임대료가 확연히 높더라도 소송을 제기하는 세입자는 지난 1년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임대료가 비싸더라도 당장 계약을 해야 하는 것이 주요 대도시가 직면한 주택난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놓고 봤을 때, 이전 임대료가 얼마였는지 확인하면서까지 선택적으로 임대주택을 고를 개인적 여유가 있는 세입자는 많지 않다.
임대료가 주변에 비해 비싸더라도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맺고 살기를 원하지, 자신이 계속 살게 될 집을 놓고 자신의 집주인과 소송을 벌이고 싶은 세입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정부가 사실상 세입자 개인에게 임대료 상승을 억제할 책임을 떠넘긴 것이고, 사실상 대부분 주택이 임대료 제동책의 취지와 무관하게 임대료를 계속해서 높일 수 있게 예외사항을 두었다. 물론, 각 주 정부가 해당 정책을 시행하던 초기에는 임대료가 실제로 상승하지 않는 가시적인 효과를 보였다. 그렇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베를린의 임대 시장의 상황을 봤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오히려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더 악화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베를린에서 임대료는 허용 수준인 표준 임대료의 10% 이내의 상승을 지키기는커녕, 표준 허용치보다 30% 이상 초과해 상승한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각종 언론에서는 이 연구 결과와 자체 조사 등을 바탕으로 "잘못된 정책이 독일을 주택난에 몰아넣고 있다", "임대료 제동책은 연막탄이었음이 밝혀졌다" "베를린에서 임대료 제동책은 작동하지 않는다"와 같은 제목으로 임대료 제동책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그나마 효과를 본 내용도 있다. 물론 임대료 제동책은 아니다. 이 법 제정 당시 변경된 주택 중개법의 내용이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임대 주택을 찾는 소비자인 임차인이 중계 수수료를 지불하던 것을 중개인에게 주택 임대를 요청한 임대인이 중계 수수료를 지불하게 법으로 명시하는 주문자 원칙(Bestellerprinzip) 규정이다.
이 규정 역시 주택난으로 임대 주택이 절실한 임차인들이 임대인에게 중계 수수료를 대신 지불한다는 명목으로 임대 계약을 우선하는 불공정한 편법이 나타나게 만들었지만, 임대료 제동책에 비해서는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린에서는 임대료 제동책을 주도적으로 시행했던 베를린 여당 사회민주당(SPD)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에 베를린 건설부 장관인 사회민주당 안드레아스 가이젤(Andreas Geisel)은 현재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게, 임대료 제동책을 좀 더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300만 명이었던 베를린 인구는, 현재 35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5년간 매년 3, 4만 명씩 인구가 증가해왔고, 2030년에는 4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불과 2010년까지만 해도 2030년이면 300만 명 전후로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택난과 정책의 실패는 다양한 이유가 얽혀 있다. 자연스러운 인구 증, 감소뿐만 아니라, 쉽게 예측이 어려운 유럽연합 내의 노동자의 이주권(Freizügigkeit der Arbeitnehmer)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이주 그리고 EU 외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베를린에 대한 높은 선호도 역시 주택난 심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최근 급속히 유입되었던 난민 수용 문제도 얽혀 있다. 부동산(특히, 토지) 가치도 인구증가와 함께 급속히 상승하며, 현실적으로 과거와 같이 저렴한 임대료의 민간 임대주택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저렴한 공공 주택은 꾸준히 민간 회사에 매각되었고, 이 또한 임대료 상승을 부추겼다.
수많은 임대 주택을 소유한 대형 임대주택 회사들은 임대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게다가 관광산업이 호황기를 맞이하며, 도심 내 임대 주택이 휴가용 주택으로 변환되는 문제도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문제가 베를린의 주택난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는 임대료 제동책과 같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대안이라도 꼭 좋은 결과를 내놓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부작용만 남긴 1년의 임대료 제동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러 전문가들은 임대료 상승을 막기 위한 대안과 임대료 제동책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복잡한 상황만큼 한 가지 확실한 대안만을 외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지난해 베를린 세입자 주민투표를 위해 세입자 단체와도 함께 작업을 했던 도시 사회학자 안드레 홈(Andrej Holm)은 임대료 제동책이 처음 시행되던 때, 베를린에 필요한 것은 임대료 제동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주택을 단순 임대료에 대한 제동이 아니라, 주택을 수익 중심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제동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는 집이 투기의 수단이 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주거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의미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뿐만 아니라 독일 내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대안들 중에 공통적인 내용은 도시 내 공공주택 등을 늘려 민간 임대 주택 시장의 대항마를 키우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수많은 보조금이 투입되고, 새로운 법을 만들고, 기존의 법을 강화했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급격한 임대료 상승에 대한 그나마 현실적인 대응책이다.
덧붙이는 글 | 녹색전환연구소 뉴스레터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