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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이와 아빠 자전거로 어린이집 가는 산들이
산들이와 아빠자전거로 어린이집 가는 산들이 ⓒ 정가람

6살 산들이와의 출근길.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녀석이 대뜸 묻는다.

"아빠, 아기는 어떻게 생겨?"

녀석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듣게 될 질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듣고 보니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득해졌다. 아이라면 당연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인데, 내가 그만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뜻이겠지.

"응? 아기? 왜?"
"그냥. 궁금해서.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빠 몸속의 아기씨가 엄마한테로 건너가야 아기가 생긴데. 그런데 어떻게 아기씨가 건너가는 거야?"
"아. 그게 아빠와 엄마가 꼭 껴안으면 아기씨가 건너가게 돼. 왜? 동생 하나 더 낳아 줄까? 오늘 아빠가 엄마 꼭 껴안을까?"
"아니 싫어. 동생 싫어. 복댕이도 있잖아."

드디어 아이가 물었다... 아기는 어떻게 생기느냐고

고민의 시작 자연스레 떠올리는 장면
고민의 시작자연스레 떠올리는 장면 ⓒ EBS

나는 동생 하나를 더 낳아준다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그 당황스러운 상황을 모면했지만 찝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는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해올 텐데 그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까닭이었다. 6살을 상대로 정자와 난자가 어쩌고저쩌고 가르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아니면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회사로 가는 동안 스마트폰을 꺼내 나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부모의 경우를 검색해 보았지만 답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대부분 그 당황스러움에 대한 글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 어디 정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결국 아이와 부모가 가지고 있던 관계의 문제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지식 양의 문제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아이의 질문에 또다시 넋놓고 당할 수는 없는 법, 인터넷을 통해 답변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 시절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터라 참고할 기억이 없었고, 아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거지?

부쩍 자란 산들이 노래자랑대회 참가 중인 녀석
부쩍 자란 산들이노래자랑대회 참가 중인 녀석 ⓒ 길동복조리시장

그렇게 별 소득 없이 퇴근을 했는데 산들이가 대뜸 나를 보자 아침과 같은 주제로 말을 걸어왔다.

"아빠, 나 이제 어떻게 아빠 아기씨가 엄마한테로 넘어가는지 알았어."
"응? 어떻게?"
"응. 어린이집에서 배웠는데 아빠가 관을 통해서 아기씨를 엄마한테 전해준대."
"그 관이 뭔지는 알아?"
"몰라. 그런데 그 관이 아빠 고추에 있고, 그게 엄마 잠지를 통해서 들어간대."

거기까지였다. 아이는 그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았다. 아니 궁금할 필요가 없는 듯했다. 있는 그대로의 설명인데 그 이상 무엇을 상상하겠는가. 괜히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내가 고민을 했던 건 혼자 '음란마귀'에 홀려서 그런 듯 했다.

허무했다. 아침부터 아이의 기습적인 질문에 허둥지둥하며 이것저것을 궁리하던 내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가 딱 알 수 있는 것만큼만 설명하면 될 것을, 내가 아는 지식 모두를 고작 6살 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려, 아니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꼴이라니.

그것은 결국 내가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아직도 아이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아이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어느덧 아빠 노릇을 한 지도 8년째이건만, 난 아직도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포비와 루비가 뽀뽀하면 돼"  

무조건 따라하는 막둥이 어른의 시선을 따라잡으려는 아이
무조건 따라하는 막둥이어른의 시선을 따라잡으려는 아이 ⓒ 정가람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부모의 스승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다음도 그와 같은 사례 중 하나다.

막내 복댕이는 누나와 형과 달리 신발을 자주 거꾸로 신는다. 현관에서 왼발, 오른발을 거꾸로 신으면 엄마나 아빠에게 지적을 자주 듣는 편이다. 신발 모양을 보면 추측도 할 수 있고, 이제는 알만도 한데 4살 아이에게 왼발, 오른발을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가보다.   


"복댕아, 잘 봐. 여기 네 엄지발가락이 가장 크잖아. 그래서 신발을 신을 때도 큰 쪽이 엄지발가락에 가게 해야 해."
"응? 응."

녀석은 알겠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심쩍었다. 과연 알아서 안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아빠가 이야기하니 무조건 안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나 다를까. 복댕이는 다시 신발을 신으면서 또다시 거꾸로 신으려 했다. 바로 그때. 첫째 까꿍이가 나섰다.

"아냐, 복댕아. 잘 봐. 여기 포비와 루피가 있지? 이 둘이 뽀뽀하게 신어야 해."
"아. 포비와 루비가 뽀뽀해?"
"응. 그래. 잘 신네. 이제 다음부터는 포비와 루피를 봐. 알았지?"

신발 신는 막둥이 오늘은 왠일로 맞았네?
신발 신는 막둥이오늘은 왠일로 맞았네? ⓒ 이희동

신발 바르게 신는 법 루피와 포비가 뽀뽀를 한다
신발 바르게 신는 법루피와 포비가 뽀뽀를 한다 ⓒ 이희동

그런 두 남매를 보고 있으려니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쉽게 녀석들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동안 난 4살 아이를 붙잡고 무슨 말을 해왔던가. 물론 까꿍이의 설명방식은 특정한 신발에 국한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라도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녀석들에게 주입시키는 일이 아니다. 부모의 할 일이란 아이들의 시선과 언어로 녀석들이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데 있어서 조금의 도움을 주는 일이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도 그러지 않았던가. 왼손은 거들 뿐이라고. 부모의 할 일이란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 팔할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린이날 축사 중인 박대통령 앞으로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시길
어린이날 축사 중인 박대통령앞으로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시길 ⓒ 청와대

아이들의 시선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나의 언어로 아이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 나의 모습. 사실 이런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은 순전히 지난 어린이날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해프닝 때문이었다.

지난 5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로 어린이들을 초청한 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중 백미는 단연 완도에서 온 어린이의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었다. 발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냐는 극히 어린이다운 질문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모든 이를 뜨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게 각 시·도마다 있어요. 17군데…. 거기를 어린이 여러분들이 커서 찾아가면, 학생 때 가도 돼요."

발명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창조경제혁신센터로 가라는 대통령의 창조적인 대답. 이 안타까운 사례는 지금 왜 우리나라가 위기인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였다. 대통령은 소통의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교감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상대에 대한 인식 하나 없이 자신의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린이를 상대로도. 

대통령은 1년 전 어린이날에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뤄진다"고 말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누리꾼들은 그 말 자체가 무슨 소리냐고 비아냥거렸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을 어린이들을 상대로 했다는 데에 있다. 대통령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던 내가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니. 아이를 8년째 키워오면서 아직도 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의 언어를 고집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꼰대스러움'일 수 있음을 이제야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은 소통에서부터 시작하거늘.

나름의 세계가 구축되고 있는 아이들 3남매
나름의 세계가 구축되고 있는 아이들3남매 ⓒ 이희동

까꿍아, 산들아, 복댕아. 아빠가 미안해. 이제부터라도 세상 모든 걸 너희들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물론 100%까지는 힘들겠지만 점차 노력하다보면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아빠 바람은 우리 대통령도 조금 더 상대방의 생각을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네.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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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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