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엄마부대봉사단(대표 주옥순)은 구의역에서 희생된 노동자 김아무개씨의 빈소가 차려진 건국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난입해 소동을 벌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과 고인의 부모를 무단 촬영하면서 사진을 SNS에 올려 널리 알리면 좋지 않겠냐고 주장했단다. 물론 이 단체는 유가족들의 저지로 사진을 자진 삭제하고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보면 이들 단체에 묻고 싶은 게 많아진다.
첫째. 이 단체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고인의 영정 사진을 촬영하려고 했는지 묻고 싶다. 자신의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시민단체가 찾아와 고인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시민단체가 무슨 언론사인가. 사진을 찍어 그것을 보도하는 것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언론이 할 일이다.
게다가 이번 사안만큼은 언론도 고인의 사진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행여라도 고인의 죽음이 가십거리로 전락할까봐 언론도 최대한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개 시민단체가 대체 무슨 권리로 고인과 유가족의 초상권을 침해하겠다고 나선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이들 단체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들은 가족의 저지로 밖으로 나가면서 "세월호처럼 키우려고 하는 거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적어도 이 단체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빈소로 달려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들이 '세월호처럼 사태가 커지는 것'을 도대체 왜 운운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셋째. 이 단체는 과연 지금 누구를 대변하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자신의 가족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게다가 죽음의 근본적인 책임은 관리를 잘못한 국가나 행정 당국에게 있는 게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도 꾹 참고 조용히 앉아 눈물만 닦고 있어야 할까. 그것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씨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기 전까지 이 땅의 평범한 어머니 중 한 분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했던 어머니를 시민운동가로 만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전태일의 죽음을 폄훼하고 이를 왜곡하려 들었던 세력의 탓이 크다.
최근에 우리 정부는 평범했던 세월호의 유가족들까지도 시민운동가로 변신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가 지금처럼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만 있다면 그들은 결국 국가가 아닌 시민과 언론을 상대로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보수주의자들이 국가 권력에 책임을 묻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 극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보수주의자는 태생적으로 애국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애국심이란 미명 아래 국가나 정부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기만 한다면 국가는 결국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안하무인이 돼버릴 수 있다. 이런데도 엄마부대 봉사단은 지금처럼 계속 정부를 감싸기만 할 텐가.
게다가 유가족들은 지금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위로는 못할망정 '세월호'를 운운하는 것은 이 단체의 존립 목적까지도 의심하게 만든다. 아무리봐도 이번에는 엄마부대봉사단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 같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개돼야 할 것은 고인의 얼굴과 유가족의 신상이 아니다. 오히려 공개가 필요한 것은 사고가 날 때 마다 꼬리를 자르고 뒤로 숨어버리는 사고 책임자들의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