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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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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합니다. 평소 산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북한산에 오르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해 발목을 다쳐 지금까지 시원치 않아 아직 높은 산을 오르거나 오랜 시간 걷기는 겁이 납니다. 북한산성 들머리에 도착하자 일행이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긴 그렇게 힘들지 않아. 대남문까지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면 돼!"
"꽤나 먼 거리인데 그래?"

5.8km를 왕복하는 일정입니다. 거리가 만만찮습니다. 쉬엄쉬엄 가면 네댓 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 일행은 숲속 계곡길을 따라 천천히 걷습니다. 경사가 완만합니다. 시원한 바람과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는 몸도 마음도 씻어줍니다. 녹음 짙은 유월의 숲에 몸을 맡기니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수도 서울에 이렇게 좋은 산행코스가 있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산은 찌든 도시에 맑은 공기를 뿜어내고, 또 계곡의 맑은 물은 젖줄이 되어 소리내어 흐릅니다. 참 보배로운 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적지 대남문에 도착합니다. 대남문에 걸터앉으니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합니다.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가 그림처럼 보입니다. 산 건너 서울 시가지가 펼쳐집니다.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평화로우니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대남문 아래 문수사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문수사까지 150m, 거기도 가보세."
"문수사에는 특별한 뭐가 있을까?"
"절집이 다 그렇지만, 천연동굴 법당이 있지!"


금세 문수사에 도착합니다. 법당 옆 그늘진 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합니다.

"지금 뭣들 하세요?"
"우리요? 부처님께 공양하는 각종 제기를 닦지요."
"놋그릇이구나! 번쩍번쩍하네요!"

"매달 닦는데, 닦을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개운한지 몰라요!"
"예전엔 기왓장가루로 닦았는데…."
"지금은 신문지에 왁스 발라 박박 문지르면 이렇게 깨끗해요. 신기하죠?"


여럿이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정성을 다해 놋그릇을 닦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유기그릇을 기왓장가루로 닦던 모습이 생각나서 한참을 쳐다봅니다. 문수사는 작고 아담합니다. 대웅전, 응진전, 문수굴, 요사체, 산신각 등의 전각이 정갈해 보입니다. 일행이 문수굴 앞에서 말을 합니다.

"여기 현판을 보라고?"
"삼각산천연문수동굴."
"또 경진초하(庚辰初夏) 일해 전두환이라고 쓰여 있잖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네!"

경진년이니까 2000년입니다. 퇴임 이후에 쓴 휘호로 보입니다. 불교 신자인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휘호로 현액을 남긴 것 같습니다. 전두환의 휘호를 여기서 볼 수 있다니! 이색적입니다.

문수사 천연동굴 문수굴은 법당으로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굴법당 안은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이도 시원할 것 같습니다.

문수굴은 오백나한을 모신 기도처로 유명합니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후사가 없던 그의 부친이, 이승만 대통령은 자당께서 이곳에서 기도를 통해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아직도 치성을 드리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가 봅니다. 법당 안에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사의 연등이 눈에 띄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갑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종무소 문 앞에 털신 한 켤레가 눈에 띕니다. '아니 이 더위에 웬 털신이 있을까?' 털신이 많이 해졌습니다. 뒤꿈치가 너덜너덜합니다. 우리 일행은 많은 상상을 해봅니다.

"주지 스님의 신발일까?"
"수행도량을 스님의 털신일거야!"
"몇 년을 신으면 저렇게 닳게 될까?"

신발의 주인은 누구인지 몰라도 검소하고 어떤 경건함까지 느껴집니다.

문수사를 뒤로하고 다 해진 털신을 떠올리며 나는 생각해봅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오늘 세태에서 소박하고 검소함의 실천도 종교의 가치 중의 하나가 아닌가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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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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