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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보기]최승호 "김기춘과 원세훈, 양심의 가책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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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장윤선, 박정호의 팟짱> (오마이뉴스 팟캐스트)'라고 프로그램명을 정확히 밝혀주십시오.

■ 방송 : 장윤선, 박정호의 팟짱
■ 채널 : 팟캐스트(+아이튠즈 http://omn.kr/adno +팟빵 http://omn.kr/fe10)
■ 진행 :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
■ 출연 : 최승호 뉴스타파 PD

아래는 10일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가 최승호 뉴스타파 PD와 함께한 좌담회 내용이다.

최승호 뉴스타파 PD
 최승호 뉴스타파 PD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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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국정원장 재직 시절에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이 사건은 끝내 끔찍한 조작으로 드러났죠. 어쨌든 우리는 <뉴스타파>의 최승호 PD라는 저널리스트가 없었더라면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몇십 년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그랬듯이 여전히 한국에서는 국정원을 통해서 간첩 사건이 조작되고 있고,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지나온 게 사실입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확인할 계기가 생겼는데요. 영화 <자백>을 통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PD수첩> PD로, <뉴스타파> PD로 잘 알려진 최승호 PD가 처음 발표한 영화, <자백>으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스타파> 최승호 PD 나오셨습니다.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고 봐야 할까요?
"제가 사실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건 저널리스트로서 취재하다 보니까... 간첩 사건 취재를 했고, 그것이 조작된 걸 다 밝혀서 (간첩들이) 무죄 판결이 났거든요. 근데, 국정원이 바뀌는 게 없는 거예요. 검찰도 바뀌는 게 없고. 조작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던 검사들이 고작 받은 게 정직 1개월이고, 국정원 직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선고유예를 받았습니다. 선고유예라는 건 변호사들이 그러더군요. 무죄보다도 어려운 거라고. 국정원이 사실 바뀌어야겠다는 의지를 갖기 힘든 상황이더군요. 국정원이 바뀔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끝에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국정원 개혁은 국회나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국회 역할이기도 한데 그 역할이 제대로 안 되는 가운데 저널리스트인 최승호 PD가 '영화를 만들어서 국정원 개혁 이슈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거잖아요. 그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영화에서 김승효 선생님이 굉장히 가슴에 많이 남았습니다. 끔찍한 고문 피해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어쨌든 그분 사건에 관해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74년에 재일동포 유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서울대에서 공부하다가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합니다. 고문을 당한 뒤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서울대 학생의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한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다'라고 나왔는데 그분이 고문 이후에 충격을 받아서 정신 이상 증세가 그때부터 나타났다고 해요. 그분이 7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는데 교도소 안에서 남겨둔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 교도소 당국이 기록해 둔 걸 보면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는 게 있어요. '종일 서서 멍하게 있고, 중얼거렸다'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분이 7년 (수감) 이후에 일본으로 돌아갔죠. 가족과 만났는데 정신이상이 있으니까 정신병원에 수용해서 수십 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생활했습니다. 저희가 작년에 가서 만나 뵈는데 그때는 정신병원에서 나와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던 상황이었고요. 어떻게 보면 수십 년 전, 74년 전 기억 속에서 화석처럼 있는 분이랄까요?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 희생자로서 하나의 기록된 화석이라 해야 하나? 그런 분을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 봤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영화에 흐르는 맥락이 있는데요. 박정희 군사 시절부터 시작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요. 전체적으로 총 몇 년 동안의 취재 과정이 있었나요?
"2013년 4월에 유우성씨 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에서 풀려난 뒤 기자회견을 한 게 있습니다. '국정원에서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했다'. 그 기자회견을 보고 알았습니다. '간첩조작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구나'. 그 이후부터 저희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서 취재했죠. 취재 기간이 3년 정도 되죠."

-기록영화라 볼 수 있겠네요. 취재 내용을 <뉴스타파>에 보도하고, 전체를 엮어서 영화로 만든 건데요. 상당히 많은 품이 든 영화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은 분을 만나고 많이 다니셨는데요. 전반적으로 취재하고, 영화 만들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영화를 보시면 아는데, 영화 내용에 보면 저희가 <뉴스타파> 통해 방송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는데요. 방송하지 않은 것 중에서 북한을 취재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들이 저희로서는 상당히 리스크도 있었고, 부담을 많이 느꼈죠. 국정원을 상대하는 취재라... 문제는 국정원은 확인을 안 해줘요. 우리가 무슨 질문을 해도 답변을 안 해요. 영화 맨 마지막에 나온 자막이 '국정원이 확인해주지 않는다'는 내용인데요. 그게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의 주제입니다. 국정원은 자기네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 잘못에 대해서 언론이 물을 때 답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답변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받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이면 국회가 불러도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 조항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검찰이 국정원 직원의 불법 행위를 조사해야 하면 국정원장에게 미리 통보해야 합니다. (국정원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검찰에 나가서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검사 질문에 답변하려면 국정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부분에서 국정원은 '이것은 국가 기밀이다'라는 이유로 자기들이 한 행위에 대해 밝히지 않아도 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국정원도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게 국민에게 굉장한 불신을 갖게 합니다. 제가 영화 <곡성>을 봤는데, 그 영화 속에는 마을에 악마가 있어서 악마가 사람을 죽이는 거거든요.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유에 대해서 모르고, 공포에 사로잡히잖아요.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국정원의 존재가 이런 게 아닌가. 이렇게 돼버리지 않았나. 설명을 안 하니까. '왜 간첩이 됐는지', '내 개인 정보를 왜 국정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는지' 설명을 안 하니 알 수가 없죠. 그러니 공포가 되는 거고. 사회 전반적으로 억압 상태에 빠지지 않습니까?"

-'너희들은 알 거 없어'. 국정원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좌익 효수 사건만 봐도 일반인 시각에서는 '어떻게 저렇게 끔찍한 말을 할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 '국정원 직원 아니다'라고 피하더니 최근 '(국정원 직원이) 해임됐다'고 얘기가 나오던데요... 늘 그런 식으로 되어 와서 '지난 역사를 통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국정원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서 탐사보도 형태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그런 측면에서 (영화를) 본 분이 굉장히 재밌다고 해요. 스릴이 넘치고... 우리가 영화적인 장치를 많이 둬서 드라마틱하게 한 게 아니거든요. 순전히 국정원 덕이라 생각하거든요. 이 영화의 긴장과 재미는... (웃음) 현실에서 도저히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국정원에 의해) 벌어지니까. 좌익 효수라는 친구도 유가려씨를 수사하던 수사관이었어요. 그 친구도 유가려씨에게서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받아낸 수사관 중 한 명입니다."

-'옛날에나 그랬지. 이제는 안 그럴 것이다'라고 하는데 여전히 그런 수사 기법이 통용되고 있는...
"통용이 아니라... 국가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국정원에 중앙합동신문센터라고 있었는데, 지금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라고. 유우성 사건이 조작으로 밝혀진 뒤에 국정원이 유일하게 한 것이 그 이름을 바꾼 겁니다. 하도 '합신 센터'란 이름이 많이 나오니까 그런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요. 북한이탈주민을 6개월 동안 그곳에 가둬 둘 수 있거든요. 그 안에서 그 사람이 간첩인지, 아닌지 밝혀 내는 거예요. 6개월 동안 사람을 독방에 가둬놓고, 달력도 안 주고. 아침부터 밤까지 '오빠가 간첩이지?'라는 말을 계속 듣고, 쓰라고 하고, 쓴 걸 또 쓰라고 하고. 거의 수천 장을 썼다고 합니다. 그 정도 상황에 빠졌을 때..."

-그건 고문 아닙니까?
"고문이죠. 독방에 둔다는 것 자체가 고문 행위가 되는 거거든요. 24시간 감시를 받거든요. 화장실에서 변기 앉아 있을 때도 가슴 위로는 CCTV에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화장실 문이 투명한 문이고, CCTV에 잡혀요. 영화 속에서 유가려씨한테 '샤워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데 '변기 옆에 쭈그려 앉아서 샤워한다'고 답해요. 그런 상태에 빠지면 사람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죠. 그런 상황 속에서 그 사람들은 간첩이란 자백을 받아 내는데, 그게 진실하다고 믿었다면 국정원 직원 정신을 체크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1974년 김승효 선생님이나 2014년 유가려씨나 형태만 달라졌을 뿐이지. 국정원이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한 고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네. 현재 진행형이고요. 우리 국민이 생각해봐야 하는 거는요. 국정원이 불법을 저질러서 그런 게 아니라 합법적으로 해온 거예요. 합법의 틀 안에서... 그런데, 우리 국민이 '이런 거를 과연 계속 허용해야 하는가'. '국정원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거죠."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나 비슷한 거 아니냐'는 인식이 일면에는 있는 게 사실인데요. 이렇게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정보기관은 대한민국이 유일한 거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죠. 관타나모도 변호인이 방문하면 그 안에 있는 수용자를 만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유가려씨가 수용된 상황에서 변호인이 여러 번 찾아갔는데도 만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유가려씨) 본인이 '원치 않는다'고 말했고, 유가려씨가 변호인이 어떤 뜻인지 모르는 상태잖아요. 그 변호인들은 오빠가 선임한 사람이고, 오빠가 (변호인에게) '동생을 만나 달라'고 이야기했던 거고. (국정원 직원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이상한 사람들 왔는데 만날 거냐'고 물어보면 '안 만나겠다'고 하겠죠. 그래서 '만나지 않겠다'고 답한 거고요. 유가려씨가 '변호인을 만나겠다'고 했을 때도 국정원에서 못 만나게 했습니다. 그때는 '유가려씨가 피의자가 아니라서 변호인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못 만나게 했어요. 관타나모에서도 변호인을 만날 수 있는데, 우리 국정원이 관리하는 합동심문센터에는 변호인을 만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합동심문센터가) 대성공사라는 이름의 회사였잖아요. 이게 간판만 계속 바꾸지, 하는 일은 같은 상황이고.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으면 한 세대가 지난 뒤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생기는 데요. 인상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한준식 사건인데요. 북한에 있는 따님과 통화하는 장면도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이건 아직 취재 중이신가요?
"제가 국정원에 취재해서 질문했죠. 그랬을 때 국정원이 '확인해주지 않겠다'고 한 거거든요. 저로서는 영화 만드는 것 자체가 국정원에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뉴스타파>라는 작은 언론에서 취재한 내용을 질문했는데 국정원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국민이 그 영화를 보고 함께 국정원에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저는 국정원이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뉴스타파>를 통해 할 수 있는 질문은 다 던졌고, 영화로서 질문을 던져 보려고 하는 거죠."

-아마 이 방송 함께하시는 시청자분들께서는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인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영화에는 재밌는 장면도 많이 나와요. 최승호 PD가 귀여운 부분이 있으신 지 그 영화를 통해서 확인했는데요. '검사님~' 하면서 열심히 취재하시는데 이 영화는 개봉을 아직 안 해서 검찰에서 보진 못했겠죠? 개봉은 언제 하실 계획이신가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도 2개나 받고, 나름대로 호평을 받아서 '개봉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당장은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이 영화가 국정원을 겨냥하고 있으니 '문을 제대로 열까'라는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나름대로 전략을 세운 것이 스토리펀딩 형태를 통해서 미리 관객을 모으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2~3달 정도 관객을 모을 생각입니다. '1만 원 정도 내시면 티켓 한 장' 이런 식으로 많은 관객이 티켓을 예매하시는 거죠. 많은 분이 예매하시면 영화관과 이야기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관해서 시사회를 연속적으로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멀티플렉스를 완전히 여는 쪽으로 하려고 합니다. 다음에서 하는 스토리펀딩으로 시작해보려 하는 거죠."

-영화의 배급, 상영도 기존 상업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거네요. 다음에서 하는 스토리펀딩에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고요. 저는 영화 속 두 인물에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끊임없이 질문하는 질문남. 국정원과 검찰에 질문을 던지는데요. 어찌 보자면 국정원 핵심이라 일컬어질 수 있는 사람이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원세훈 국정원장이 나오는데요. 김기춘 비서실장이 공항에서 커피 마시는 장면, 재밌었는데요. 미리 알고 가신 겁니까? 우연히 만난 겁니까?
"우연히 만난 겁니다. 일본 출장 가는 길에... 어떻게 보면 '운명적'이라는 느낌도 받았어요. (김기춘 실장) 그분이 75년부터 79년까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하셨던 분이고, 당시 간첩 사건을 많이 하셨던 분이에요. 제일 큰 간첩단 사건이었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는 것이 무죄로 나오고 있거든요.

40년 만에 피해자들이 모이는 모임이 일본에 열려서 취재하러 가는데, 김포공항에서 그분을 만난 거예요. 참, 이게 운명이라는 말 말고는 그 우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분을 공항에서 만나서 질문을 드리고, 그걸 가지고 일본으로 가서 피해자분들한테 제가 질문하고, (김기춘 실장) 그분이 말씀하시는 걸 보여 드렸어요. 그랬더니 많은 피해자분들이 뭐라고 해야 할까. (김 실장이) 책임지는 답변을 한 게 전혀 아닌데도, 자기네들 대신에 질문을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를 받는달까? 그런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나, 사실 김기춘 비서실장도 국정원의 태도와 다를 게 없어요. '아는 바 없어요', '기억이 안 난다'고 회피하는... 청문회 때 재벌 총수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오던데요. 현장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책임 의식이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김기춘 실장도, 원세훈 전 원장도 그렇고. '한국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자기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 의식이 전혀 없구나'. 입으로는 당시 법률적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말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이 있다거나, 그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어서 위로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면 시종일관 그런 표정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근본적으로 '(그들이)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건 원세훈 전 원장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부분을 국민이 봐야 하지 않나 싶었죠. 고위공직자들이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 나라잖아요. 40년 전에 많은 간첩을 만들어낸 분인데, 40년 뒤에 자기가 만든 게 조작이라는 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단 말이에요. 대한민국 이인자로서,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면서... 그 과정에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났고, 그 상황에서 청와대는 계속 모른 척하고, 국정원은 '조작이 아니다'라고 하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얼마나 아직도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취재할 때 저널리스트로서 '객관성과 균형 감각을 잃으면 안 된다'고 배우잖아요. 취재 현장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지만, 인간 최승호로 돌아가면 울컥하거나 화나진 않으셨나요?
"아유, 화도 나죠. 너무 뻔한 걸 계속 아니라고 하면 속으로 화가 나고... 원세훈 전 원장님 만나 뵙고, 질문을 계속 드릴 때는 사실 울컥해서 짜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도 나왔는데 그렇게 했을 때는 보는 분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여지를 줄이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가급적 줄이겠노라' 다짐은 하는데 잘 안 될 때가 많죠."

-사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기춘 실장을 만날 때는 최대한 참다가 원세훈 원장을 만나면서 터졌구나'. (웃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분이 법원 출두하는 상황인데 옆에 힘센 경호원이 있었어요. 처음에 들어갈 때부터 그분이 저를 힘으로 밀치니까. 저를 힘으로 막아서 못 따라 들어간 거거든요. 그 뒤에 엘리베이트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그랬고. 저를 계속 잡는 거죠. 원세훈 원장과 가면서 제가 접근을 못 하게 막고, 몸싸움이 벌어졌던 거죠. 몸싸움 장면은 안 넣었지만, 그 상황이다 보니까 제가 숨도 차고, 화도 난 상황이 돼버렸죠."

-저는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부인인가요? 그분이 하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들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자꾸 이러십니까?'라고 말하는데요. 공직자라 답변할 의무가 있는데 그 답변을 회피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부인의 태도에 개인적으로 불쾌했어요.
"'우리'라는 단어를 쓴다는 거에 대해서 저는 놀랐어요. 국정원을 공동으로 운영했단 이야기인지... 그거를 부인한테 또 모든 답변을 맡겨 놓고 원세훈 원장은 부인 보호 밑에서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계시더라고요."

-한 편의 코미디였어요. 우산으로 가리고 가는 장면은...
"사람들이 그래요. '코미디 같기도 하고, 공포물 같기도 하고, 스릴러물 같기도 하다'. 공포물은 유가려씨가 고문당하는 장면을 보고 섬뜩해서 그러는 것 같고. 그걸 참 코미디라 해야 맞는데, 대한민국 현실이니까. 대한민국이 문제가 많은 거죠. 외국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 일 겁니다. 공직자 부인이 어떻게 우리라는 표현을... 머릿속에 '우리'가 각인돼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겠죠. 부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국정원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어요?"

-이 작품을 만드시면서 한국 사회에 모순된 상황을 많이 발견하시잖아요.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이 끔찍한 세상을 그대로 두고 살 수 있겠냐'를 대중과 고민하려고 하신 것 같은데요. 추천하고 싶으실 것 같아요. 누가 봤으면 좋겠나요?
"일단은 김병기 국회의원. 제가 시사회 때 그분을 초청해서 보셨어요. 앞에서 그분이 보시고, 저는 뒷자리에서 봤는데 제가 계속 그분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끝나고 여쭤 봤어요. (김병기 의원이) '국정원 직원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다', '국정원 직원 개개인은 자신의 애국심에 기반을 둔 행동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국정원에서 잔뼈가 굵은 분으로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이고, 그런 면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또, 국회의원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이 국정원이라는 중요한 국가 기구를 이런 식으로 놔둬도 되는가' 깊이 성찰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국회의원들이 많이 (영화를) 보고, 법을 고치든지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국정원 개혁'은 국회가 새로 출범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19대 때도 잘 아시는 것처럼 2012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때문에 국정원 특위가 만들어졌지만, 무용지물이 됐거든요. 수사권 여부 문제가 남아 있고, 국내 정치 개입 요소도 살아있죠. '끊임없이 간첩 사건을 조작하는 토대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 영화 만들면서 '어떤 방향으로 국정원 개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어떤 방향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영화로서 던져두는 게 훨씬 중요한 문제라 봤고요.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담론이 나와 있습니다. '국내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부분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거고요. 저는 일단 국정원이 국민의 질문에 반드시 답변할 수밖에 없는 것부터 해나가는 게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수사권을 없애서 해외나 대북 정보에 집중하는 부분은 함께 논의해서 결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전후 남북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분단 사회의 비극이다', '정치, 군사적으로 (남북이) 대립하고 있어서 국정원은 끊임없이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준식 사건, 유가려-유우성 씨 사건도 가슴이 아팠는데요. 이게 정말 민족상잔의 비극이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어떤 측면에서, 어떤 것을 가슴에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우리 민족이 분단돼서 북쪽에는 인류가 상상하기 어려운 체제가 들어서 있고, 공포 통치가 이뤄져 있는데... 거기와 비교하면 남쪽은 민주주의가 한때는 꽃을 피우고, 미래가 보이고... 남쪽이 민주주의 꽃을 피우는 바람에 북한도 너무 나가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당기고, 열고... 이런 노력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남쪽이 북한을 더 닮아 가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북쪽이 공포로 통치하면, 남쪽도 국정원이라는 강력한 공포가 40년 전처럼 되살아 난 상황. 이런 것에 대해 국민이 자각해야 하고, 우리가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우리 힘으로서 북한도 더 끌어당겨서 어떻게든 한반도에 평화와 미래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짧게 몇 가지만 더 여쭈도록 하겠습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게 되는데요. 전직 MBC 기자 출신들이 이번에 국회의원이 많이 되셨어요. '공영방송 개혁을 위해 역할 하겠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기대가 됩니까?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세요?
"'이번에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본적 목표는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를 바꾸는 거거든요. 지금처럼 대통령이 방송사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쳐서, 적어도 여당과 추천한 이사들, 야당이 추천한 이사들이 합의해야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김재철 씨 같은 사람이 MBC 사장이 될 수 없도록, 고대영 씨 같은 사람이 KBS 사장이 될 수 없도록. 제가 볼 때는 굉장히 합리적인 거예요. 전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19대 국회 때도 추진했지만, 새누리당이 극구 반대해서 못했습니다. 자기들은 현재 체제에서 혜택을 받는 거죠. 대통령의 심중에 따라 움직이는 사장들이 방송사를 장악하고 있으니까.

이번에 결국 여소야대 상황이 돼서 야당들이 좀 더 힘을 모아서 진정성 있게, 강하게 국민에게 호소하면서 다가간다면 이 의제는 지극히 당연한 거라서 국민의 성원을 받아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대선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편향적으로 경영진이 장악하는 공영 방송을 놔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총선과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악의적인 보도가 나타날 수도 있고, 지난번에 MBC가 안철수의 논문 표절이니 물의를 많이 일으켰잖아요. 심의에서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보도를 많이 쏟아 냈거든요.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공영방송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한다면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기 어렵다'고 보시는 거네요. 지금 언론 환경이 매우 어렵고, 공영 방송은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요. 진영을 나누기 어렵지만, 진실 보도를 하는 언론사는 열악한 상황 같아요. 따지고 보니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이후로 근 30년이 된 상황인데 여전히 언론의 불균형적인 상황은 계속되는 것 같아요. '이 문제를 구조적, 제도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나' 하는 고민이 드는데요. 오랜 세월 언론인으로 생활하셔서 그런 고민도 있으실 것 같아요.
"자본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나 <뉴스타파>도 그렇고. '기존 언론이 하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으니까 이걸 견제해야겠다'는 건강한 시민들의 힘이 모여서 만들어진 매체죠. 과거보다는 매체 영향력이 많이 향상됐죠. 그런데도, 역시 제도 언론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자금력. 종편 하나 만들려고 하면 몇천 억이 드는 거거든요. 그래야 종합편성채널을... 종편이 종편이 아니잖아요. 드라마 하나, 예능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데 그 정도의 자금력이 들어와 줘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돈 있는 분들은 정부에서 얼마든지 좌지우지 할 수단을 가지고 있잖아요. 국세청도 있고, 국정원도 있고. 돈 있는 분들이 이런 쪽에 투자하는 걸 겁내고, 어려워하는 현실인 것 같아요.

미국의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정론지는 돈 있는 사주들이 오랫동안 전통을 지켜오는데 한국 사회는 그런 부분이 쉽지 않죠. 저도 '대안이 있느냐'고 물으면 대안은 없는 것 같아요. 국민이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공영 언론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소한 오른쪽으로 편중된 언론 지형을 중간으로 오도록 해야 해요. 언론 영향력 집중도를 문화부 산하에 있는 위원회가 발표한 걸 보니까 '공영 언론 다 합치면 영향력 점유율이 44% 정도 된다'고 봤어요. 그게 2013년에 나온 조사니까 지금은 '조금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보는데 어쨌든 공영 언론이라도 중립선에 오도록 한다면 언론 지형은 많이 바뀔 겁니다. 진보 쪽에도 새로운 보도 전문 채널처럼 진보적 의제를 사회에 던질 수 있으면 좋겠죠. 그러려면 엔젤 투자자들이 많이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일반 시민들이 <뉴스타파>나 <오마이뉴스>같은 매체 후원을 많이 해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죠."

-결국에는 시청자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방송 같아요. <뉴스타파>도 그렇고 저희 <오마이TV>도 그렇고요. '이런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제대로 된 언론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이야기하다 보니 시청자들께 많은 부탁을 드린 것 같아요. (웃음) 끝으로, 영화 <자백>과 관련해 시청자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가 굉장히 영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국정원 덕입니다. 국정원이 이 영화를 너무 재밌게 만들어줘서...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을까?'는 많은 분이 의문을 표했어요. 다음 주부터 스토리펀딩을 통해 관객을 미리 모으려 합니다. 1만 원을 내시면 티켓 한 장을 받으실 수 있고요. 저희 영화를 '멀티플렉스로 보냈다'는 의미에서 엔딩 크레딧에 후원하신 분들의 이름을 다 넣을 거예요. 영화가 끝나면 그분들의 이름부터 쫙 올라가는 거죠. 저는 그 장면이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국정원 개혁을 원하시는 분들의 의지를 시각화시켜서 보여주는 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화 <귀향>을 시민들이 만들었잖아요. 영화 <자백>도 시민들의 힘으로... '국정원 개혁을 우리가 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영화 <자백>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끝>



태그:#최승호, #장윤선, #자백, #팟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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