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는 마음이 있다. 그러한 마음을 찾을 때 어린이를 위한 동시는 더 잘 읽히고 사랑받을 수 있다.
천강문학상과 한국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조명숙 작가의 신작 동시집 <바보 토우>에는 눈길이 닿는 모든 것에서 '마음'을 찾아내는 순수한 동심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책의 중심 화자인 어린이는 사물과 자연을 바라보며 마음을 읽어내고,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의 관계 속에서도 가족의 마음을 찾는다. 그 어린이의 눈을 따라 60편의 동시를 읽다보면 독자들은 주변에 숨어 있던 다양한 마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힘겹게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는 넝쿨 콩 줄기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며(잘했어, 훌륭해!),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자신의 마음에 '내부수리 중'이라는 푯말을 세우기도 한다(내부수리 중).
또 친구와 다툰 일이 계속 불편함으로 남아 머리핀이 쿡쿡 마음을 찔러대기도 한다(머리핀이 쿡쿡). 엄마의 일기장에도, 할머니의 꽃밭에도 읽어낼 수 있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
조명숙 작가는 강화도에 살면서 주변의 자연 생태는 물론 가족과 사람, 관계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것들에 '마음'을 부여하는 동시를 써냈다.
그렇다보니 이 책은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상상을 심어주는 동시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책 속에 담긴 마음이 담긴 시들을 두 편 만나보자.
머리핀이 쿡쿡짝꿍과다투고 헤어졌습니다.잠은 안 오고마음은 벌써짝꿍에게 달려갑니다.학교 가는 길앞서 가는 짝꿍 뒷모습못 본 척 외면했습니다.짝꿍에게 주려던머리핀이주머니 속에서 쿡쿡 찌릅니다.동시 '머리핀이 쿡쿡'을 보면, 짝꿍과 다투고 헤어진 사건의 단편적이고 해설적인 부분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오직 '마음'만 남아 있다. 잠이 안 오고, 마음은 먼저 움직이고, 그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을 때 머리핀마저 자신을 꾸짖는 듯하다. 어린이의 마음은 이렇다. 만약에 이 시가 짝꿍과 다툰 이야기,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로 풀었다면, 여운이 없는 싱거운 시가 되지 않았을까?
상장 받는 날비 오는 날 아스팔트는 뜨거운 햇볕을 잘 견뎌 냈다고칭찬 받고 있다.잘 했어,정말 잘 했어!빗방울로 그려진크고 작은수 많은 동그라미 상장들앞에서 살펴본 '머리핀이 쿡쿡'이 어린이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냈다면, '상장 받는 날'은 늘 밟고 다니는 도로의 아스팔트에서도 '마음'을 찾아낸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힘겨웠을 아스팔트의 마음, 쏟아지는 빗방울이 얼마나 좋았을지, 그 마음을 상상하며 상장 받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생기 없는 아스팔트에까지 시선을 머무르게 하고서는 결국, 그 마음까지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동시집 <바보 토우>를 읽다보면 조금은 특별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 많은 동시들이 제목에 에너지를 할애하는 경향이 있다. 설명적인 제목, 본문의 첫 문장을 대신하는 제목, 뭔가 길고 특별한 제목들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는 제목에 힘을 빼고 있다. 사물이면 사물, 상황이면 상황, 추상적 개념이면 개념 그대로를 제목으로 설정한다. '파도', '구슬치기', '난타', '스트레스', '변비', '가지치기', '다이어트' 등 총 60편 중에서 40편이 넘는 시의 제목이 단순한 제목, 개념과 사물 제목들이다.
어찌 보면 제목이 건조하고 단순해보이기도 하지만, 한 번 더 접고 생각해보면, 이러한 제목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촉매제 같은 역할을 한다. 직접적이고 단순한 제목만 보고도 아이들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짧게 상상을 하게 되고, 시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신의 상상과 시의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대조하게 되며, 그러면서 조금 더 분명하게 시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보 토우>는 2002년 동시로 등단한 조명숙 작가의 첫 번째 동시집이다. 등단 후 동화책을 두 권 내는 동안에도 시인은 동시집을 출간하지 않았다. 단 15년 동안의 시에 대한 내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 낸 진액과도 같은 작품들로 이 책은 가득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