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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14일 오전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농성투쟁 결과 보고대회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4일 오전 서울도서관 앞에서 열린 농성투쟁 결과 보고대회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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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무려 42일간의 투쟁을 마치고 농성을 거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협상 타결 직후 박원순 시장과 훈훈한 편지를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이날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명의로 박 시장에게 보내진 편지에서 부모들은 우선 "저희가 시청 후문에 농성장을 꾸리고 주저앉은 지 사십여 일을 보내는 동안, 어쩌면 시장님의 하루하루가 더 고달프셨을지도 모르겠다, 죄송했다"고 입을 열었다.

부모들은 "돌봄이 없으면 금세 엉망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저희는 자꾸만 마음이 급해져서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며 아이들이 끔찍한 상황에 처해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며 "이런 어미의 마음으로 나선 거칠고 서툴고 긴 농성"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또 "그 과정에서, 제 새끼밖에 안 보이는 이기적인 어미처럼 보일까봐 걱정도 많이 했고, 마음도 새카맣게 졸였다"며 "이런 저희 마음을 시장님께선 알아주실 것이란 희망과 믿음을 갖고 있었고, 그 따뜻한 응답을 들으니 오늘은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지난 3일 밤 박 시장이 농성장을 방문해 부모들과 대화했던 것을 떠올리며 "깊은 연민과 애달픔이 깃든 시장님의 표정과 말씀이 저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며 격한 투쟁 속에서도 박 시장의 결단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음을 내비쳤다.

끝으로 이들은 "저희가 공들여 긴요한 정책안을 만들어 제안하고, 그 시행을 열심히 돕겠다"며 향후 구성될 TFT에서 발전적인 발달장애인 지원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지도록 적극 협조할 의지를 보였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편지를 받은 박 시장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박 시장은 "저 또한 '다인아빠 박원순, 노을석의 아들 박원순'를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다"며 "자식을 위한 철야농성과 점거, 삭발... '왜 내게 이러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 아냐?'라는 마음이 들만도 한데 이번엔 좀 달랐다"고 말했다. '다인'은 박 시장의 딸, '노을석'은 박 시장의 어머니 이름이다.

그리고 "세상의 벽과 맞서 싸우는 어머니들의 절규 앞에서 같이 우는 것밖에 없는 제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말해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박 시장은 이어 "세상과 싸울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며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생각보다 봄이 온다는 생각으로 함께 서로 울타리가 되는 서울을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 내자"고 제안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와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는 6개항의 발달장애인 지원 대책을 요구하며 지난달 4일부터 42일간 서울시청 후문을 점거하고 삭발투쟁을 벌이는 등 농성을 벌여왔으나, 다음달부터 서울시와 관련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서울시에 발달장애인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의 약속을 받고 14일 농성을 풀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4일 오전 '서울시청 농성투쟁 결과 보고대회'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악수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4일 오전 '서울시청 농성투쟁 결과 보고대회'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악수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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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박원순 시장에게 보낸 편지(전문)

시장님, 감사합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저희 발달장애 가족들 일로 많이 애태우셨지요?

저희가 시청 후문에 둥지처럼 농성장을 꾸리고 주저앉은 지 사십여 일을 보내는 동안, 어쩌면 시장님의 하루하루가 더 고달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저희가 먼지와 소음이 날리는 곳에서 한댓잠을 잘 때 시장님도 같이 마음 아파 하며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려 하셨던 것을 압니다. 그 마음이 아니라면 이런 감사한 답을 들을 수 없었겠지요.

시장님,
저희는 새끼를 위한 일이라서, 목놓아 외쳐도, 소리를 질러도, 삭발을 하고 노숙을 해도 부끄럽거나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농성장이 가족지원센터라도 된 것처럼, 친구와 동료를 만나고, 음식을 나누고, 같이 손잡고 울고 웃으며 고단함과 위로와 즐거움이 범벅이 된, 독특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쌓아나갔습니다.
그러나 이같이 사십여 일 동안 안전하게 농성할 수 있었던 것에도 시장님의 배려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이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장님,
저희가 마치 시장님과 거칠게 싸우려는 것 같아 속상하셨지요?
싸우지 말고 머리를 맞대고 좋은 생각을 모으고, 끈기있게 대화하고 그러자 하시는데, 저희가 믿지 않고 소리지르고 울부짖는다고 많이 야속하셨지요?
그러나 저희가 시장님과 맞서려던 게 아니라는 걸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시장님이 아니라 이 세상과 맞서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시장님께 의지하려는 마음이 깊어서 시장님께 달려갔던 것이지요. 다만 저희가 달려가는 방법이 거칠어서 곤혹스러우셨지요?

저희는 그저 저희 아이들이 존엄성을 갖고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하루빨리 만들고 싶은 열망에 마음이 조급해서 아우성을 칩니다. 저희에겐 차한잔의 여유뿐만 아니라 우울증이나 슬픔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지거든요. 돌봄이 없으면 금세 엉망이 되어버리는 저희 아이들을 보노라면 저희는 자꾸만 마음이 급해져서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라며 아이들이 끔찍한 상황에 처해지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어미의 마음으로 나선 거칠고 서툴고 긴 농성이었습니다. 누구를 협박하고 억지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저희의 치열한 의지, 간절한 열망을 보이려고 했던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 새끼밖에 안 보이는 이기적인 어미처럼 보일까봐 걱정도 많이 했고, 마음도 새카맣게 졸였습니다. 이런 저희 마음을 시장님께선 알아주실 것이란 희망과 믿음을 갖고 있었고, 그 따뜻한 응답을 들으니, 오늘은 정말 행복합니다.

시장님,
저희는 저희 아이의 마음으로 아무리 달려가도 닿을 수 없는 듯 보여서 절망하고 슬플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딘가는 연결되어 있다는 간절한 믿음을 놓지 않으려 애씁니다. 지난 금요일밤에 농성장에 오셔서 오랜 시간 저희의 얘기와 눈물을 들어주시고, 저희 아이들을 살펴주셨지요. 깊은 연민과 애달픔이 깃든 시장님의 표정과 말씀이 저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마음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어주셨다는 걸 알기에 깊이 송구하면서도, 염치없이 감사하고 기쁩니다.

시장님께서 보시기에 저희가 참으로 딱한 어미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세게 부딛쳐야 움직인다'는 것이 믿음이 된 이유를 헤아려 주세요. 서로를 힘들게 하는 이 불행한 믿음을 깨려면 노력을 많이 해나가야겠지요.
노력하겠습니다. 저희가 공들여 긴요한 정책안을 만들어 제안하고, 그 시행을 열심히 돕겠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길에 좋은 협조자가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젠 저희도 시장님께 힘이 되어드려야지요.

농성 중에 시장님께 편지글을 올리면서, 농성이 끝날 때 시청 앞에서 시장님과 애써주신 모든 분들 모시고 잔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었지요. 정말로 떡도 하고, 김치도 담고, 식혜랑 모주 담아 잔치하는 마음으로 어젯밤을 보냈습니다. 저희 모든 식구들이 밤새 지난 시간을 되새기고, 시장님의 선한 의지에 감사하며 시끌벅적한 수다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장님,
뭐라고 감사의 말씀 드려야 할지 아직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말할 수 없이 고달프셨을 시장님께 무어라고 말씀 드려야 고단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평온해지실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당장 저희 즐거운 생각만 떠오르니, 이 염치없는 주변머리를 용서해 주세요.

시장님의 깊은 위로, 큰 응원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이만 맺습니다.
오늘은 많이 웃고 행복해하려고 합니다.

2016. 6. 14.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마음담아 올립니다.

박원순 시장이 발달장애인 부모들에게 보낸 답장(전문)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박원순 _
다인이, 주신이 아빠,
아버지 박길보, 어머니 노을석의 아들
강난희의 남편
서울시장'

답장을 쓰려니 그 어떤 말보다 먼저 적게 된 말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또한
'다인아빠 박원순, 노을석의 아들 박원순'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자식을 위한 철야농성과 점거, 삭발 ...
'왜 내게 이러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 아냐?'라는 마음이 들만도 한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세상의 벽과 맞서 싸우는 어머니들의 절규앞에서
같이 우는 것 밖에 없는 제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꽃은 바람 불고, 비 맞으면 시들지만, 사람은 고통과 마주해 버텨내고, 시련과 마주해 더 단단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그 어떤 소수나 약자도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장의 책무입니다.

또 세상과 싸울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옵니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생각보다 봄이 온다는 생각으로 우리 함께 서로 울타리가 되는 서울을 꿈꿔 봅시다.
그리고 꼭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 냅시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어머님들이 제게 주신 감사와 고마움은 제가 아니라 시청 출입의 불편을 참아주시고, 이해해 주신 시민여러분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2016.6.14.
다인아빠 박원순 드림



#발달장애인#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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