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미 좋고 기억력 좋은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보리 싹과 밀 싹이 헷갈리는 사람 있습니다. 한 냥짜리 금반지와 닷 돈짜리 금반지, 쌍둥이 형과 쌍둥이 동생, 나팔꽃과 메꽃.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는 사람에게야 별것 아니지만 잘 모르거나 한두 번 밖에 본 기억이 없는 사람에겐 이게 그것 같고 그게 이것 같아 엄청 헷갈리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이 둘을 한꺼번에 나란히 놓고 함께 보거나, 위로 던졌다 받기를 몇 번 반복해 보면 아주 작은 무게 차이까지도 분명하게 구분 됩니다. 하나만 놓고 보면 단조로워 지루하기조차 했던 게 서로 대비되며 재미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대비에 의한 구분은 이런 경우에만 유효한 게 아닙니다. 역사에도 유효합니다. 동양과 서양, 언뜻 천양지차의 역사를 갖고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면 같은 의미 비슷한 사건을 다르게 표현한 역사 경우가 많습니다.
이정민 : 역사를 돌이켜보면, 신기하게도 우리 역사와 꼭 닮은 세계사가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것도 시기조차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요, 고려의 무신정권과 일본의 무사정권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죠? - 65쪽
눈으로 읽는 역사 토크쇼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사건vs사건>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사건vs사건>(지은이 이원복·민병주·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은 2014년 12월부터 KBS 라디오에서 덕성여대 이원복 총장과 건국대학교 신병주 교수가 1년 동안 방영하였던 역사토크쇼를 활자화 해 펴낸 책입니다.
<먼나라 이웃나라>로 널리 알려진 이원복 총장과 KBS TV <역사저널 그날>에서 패널로 활동하고 있는 신병주 교수가 나라밖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어갑니다.
신병주 교수가 무열왕릉과 무열왕릉 발굴사에 얽힌 내용을 이야기하면 이원복 교수는 트로이 유적과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에 설명합니다. 신병주 교수가 불국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면 이원복 교수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을 그려냅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어가는 토크, 역사적 배경, 사건의 의미, 건축방식, 구조 등을 읽다보면 닮은 듯 유사한 역사, 겹쳐져 보이는 기시감에 사건과 사건, 역사와 역사가 갖는 의미가 보색처럼 대비되거나 덧칠처럼 겹쳐지며 이해되며 구분됩니다.
'무열왕릉vs트로이 발굴'로 시작되는 토크는 '불국사vs성 소피아 성당', '후삼국의 분열vs프랑크 왕국의 분열', '고려 무신정권vs일본 무사정권', '성균관vs중세대학', '경국대전vs나폴레옹 법전', '계유정난vs콘스탄티노플 함락', '기묘사화vs종교개혁', '임진왜란vs백년전쟁', '정묘호란vs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병자호란vs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아관파천vs동북아 국제 정세', '3.1운동vs인도 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vs프랑스 임시정부', '현충일vs앤잭데이', '한국사의 돈vs세계사의 돈' 순서로 이어집니다.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깊고 자세한 설명에 세계사 속 한국사, 한국사 속 세계사가 씨줄이 되고 날줄이 돼 역사 지식을 엮어 가는 바탕이 되고 무늬로 새겨갑니다.
옛 대학, 학생이 '갑', 교수가 '을'한국 역사에 성균관이라고 하는 위풍당당한 교육기관이 있었다면 세계사 속에도 오늘날 대학 모태가 되는 교육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이원복 :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에 생긴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물주였습니다. 교사의 월급을 학생들이 줬거든요. 그래서 학생이 갑, 교수는 을이었지요.
이정민 : 정말 학생이 주인인 대학이었네요?
이원복 : 그렇죠. 학생이 진정한 주인이었죠. 예를 들어 학생들의 허가 없이는 절대 휴강을 못했어요. 휴강을 하면 월급을 안 준다고 했지요. 그리고 교수가 여행을 가려면 담보를 맡겨야 했어요. (후략) 92쪽
몇몇 교수의 도 넘는 '갑'질이 사회적 무리가 된 경우가 한 둘 아닙니다. 제자를 성폭행하고, 제자에게 인분 테러(?)를 가하고, 제자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를 유용하다 적발돼 처벌받는 파렴치한 '갑'질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예서저서 툭툭 불거집니다.
흔히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합니다. 교수들이 '갑'질 하는 세상이, 학생들이 '갑'질 하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법 없다는 걸 몇몇 몰지각한 교수들이 일찌감치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사와 한국사에 밝은 두 교수, 토크쇼를 진행해 나가는 이정민 아나운서가 추임새처럼 분위기를 돋우고 후렴구처럼 흥미를 더해 주니 '사건 vs 사건'으로 새기게 되는 세계 속 한국사, 한국사 속 세계사는 돌고 도는 물레방앗간 뒷얘기만큼이나 시시콜콜 흥미진진입니다.
재담꾼 같은 두 역사학자, 신병주 교수와 이원복 총장이 한국사 vs 세계사를 타이틀로 말발 경쟁을 하듯 펼치는 맞짱 토크는 무승부를 지향하는 역사 지식 향연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사건vs사건> (지은이 이원복·민병주·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2016년 5월 30일 / 값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