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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기사] 세상 모든 아이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다

아이들이 먹는 꾸러미의 의미

제철 꾸러미를 받아 본 사람들은 알 테지만 소비자가 그 안에 어떤 먹거리를 넣을 수 있는지 선택권은 없다. 제철 농산물과 두부 등을 생산자들이 정해서 넣기 때문이다. 현재 언니네 텃밭에서 제공하는 꾸러미에는 1인용과 4인용, 제주도 고향 꾸러미가 있다. 그 외 지역아동센터에 꾸러미를 제공하기 위해 언니네 텃밭에서는 따로 꾸러미를 구성한다. 손이 많이 가는 일임은 당연하다.

"언니네 텃밭의 일반 소비자들에게 꾸러미를 보내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것은 신경을 더 써요. 아이들이 먹을 것이니까 먹을 만한 것을 더 주고 아이들이 먹기 꺼릴 만한 것은 빼기도 하고요." -횡성공동체 회장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먹거리 안에 추억이 깃들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이들이 먹거리를 기억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삶아주던 옥수수를 먹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시골집'을 가진 아이들이 많지 않아 그런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환경정의는 아동들의 건강한 먹거리 전환 프로그램인 할머니네 텃밭을 진행하면서 단순히 '유기농'을 전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먹거리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먹거리는 단순히 포장지에 쓰여서 슈퍼 매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직접 생산지에 찾아가야 했기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할머니들이 함께 하는 캠프를 진행했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동들에게도 함께 밥을 먹으며 할머니들과 교류를 쌓음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감사의 편지 센터와 지역 공동체 캠프에서 아이들이 감사의 편지를 작성하였다
감사의 편지센터와 지역 공동체 캠프에서 아이들이 감사의 편지를 작성하였다 ⓒ 환경정의

물론 그것은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긴 시간을 두고 형성해 나가는 것이 맞다. 센터와 공동체가 교류한지 3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서로에 대해 친밀감을 두텁게 쌓을 수 있었다.

"아이가 저를 보더니 '쥐이빨 아줌마다!' 이러더라고요. 환경정의 할머니네 텃밭 프로그램을 통해 연을 잇게 된 푸른나래 센터 친구들이 저번 여름에 횡성을 방문해줬었거든요. 그때 쥐이빨 옥수수를 튀겨줬더니 저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횡성공동체 회장

캠프 외에도 할머니들이 보내주신 꾸러미 안 먹거리들을 이용해 요리교육도 같이 진행되었다. 캠프 진행 후에는 '아 그 할머니가 보내준 나물!' 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캠프를 통해 낯선 먹거리에 대한 친밀감을 쌓고 직접 조리함으로써 관계를 기반으로 한 먹거리에 대한 이해를 높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령 그것이 평소에 먹지 않았던 가지밥과 된장찌개라도 아이들은 남김없이 먹었다.

온 동네 큰 잔치

캠프가 시작되면 아이들과 공동체 할머니들 사이에서만 교류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도착하면 온 동네에 큰 잔치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함께 하기 때문이다. 전통체험 놀이를 위해 기획된 쥐불놀이 준비를 위해 캔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은 할아버지들 몫이다.

무뚝뚝하지만 행여 아이들이 다칠까 노심초사하기도 하시며 아이들이 준비한 장기자랑을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제 손자 보듯 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그리운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방문이 축제인 것이다.

쥐불놀이 전통체험 지역공동체 마을의 할아버지가 쥐불놀이를 위해 깡통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다
쥐불놀이 전통체험지역공동체 마을의 할아버지가 쥐불놀이를 위해 깡통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다 ⓒ 환경정의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무엇이 이루어지듯 사람과 요리도 만나야 한다

3년이란 시간은 길기도 하지만 짧기도 한 시간이다. 먹거리 교육 전과 후에 진행된 간이 식습관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습관에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만큼 먹거리에 대한 교육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함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음식을 커서도 먹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지점에서이다.

"단순히 '먹어야 해!' 이런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시골에서 뛰어노는 것을 보고, 안 먹던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생활 안에서 아이들에게 스미는 교육을 해야겠구나.'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 -푸른나래 센터장

'초딩 입맛'은 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이도 부정의한 측면의 먹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 안 된다. 그것이 할머니네 텃밭의 먹거리 정의이며 확산시켜야 할 먹거리 정의 모델이다.


#환경정의#할머니네텃밭#먹거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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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여성, 어린이, 저소득층 및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나타나는 환경불평등문제를 다룹니다. 더불어 국가간 인종간 환경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의(justice)의 시각에서 환경문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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