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벌써부터 눈물 난다. 우짜노, 난 못 쓰겠다."야전막사에서 쓰는 편지를 대신 쓰던 남편의 글을 읽다가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하여 내가 쓸 차례가 되었는데도 차마 쓸 수가 없었어요. 전자편지지만 바라보다가 울컥하여 그만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펜을 내려놓으니, 다시 남편이 펜을 잡고 편지를 써내려갑니다.
사랑합니다.전쟁이 끝나고 꼭 살아서당신을 보러가려하오.당신도 무사히 살아있기를 바라겠소.-당신을 그리워하는 전쟁터에서 남편이-경북 칠곡군 왜관읍과 다부동 일대는 6.25 한국동란 때, 낙동강방어선을 지키려고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또 싸웠던 최대격전지였답니다. 1950년 8월1일부터 그 해 9월 24일까지 55일 동안 많은 국군이 피 흘리며 쓰러지면서 막아냈던 곳이랍니다. 이들이 이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은 없었을지도 모른답니다.
이곳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전세를 역전시켜 대구와 부산까지 밀려오던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낸 곳이었지요. 그 뒤로 다시 맥아더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서울을 수복하고 북한 땅까지 밀고 올라갔던 그런 전투가 이곳 칠곡군에서 벌어졌답니다. 그만큼 6.25한국전쟁에서 가장 중요했던 지역이었고 아울러, 너무나 많은 국군들이 희생을 당한 곳이기도 하지요. 바로 이곳에 이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낸 이들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가자는 뜻에서 지난해인, 2015년10월에 '칠곡 호국평화기념관'이 문을 열었답니다.
6.25전쟁 66주년을 앞두고 이곳에 다녀왔답니다. 기념관 들머리엔 구멍이 여러 개 난 커다란 철모가 눈길을 끌었답니다. 철모에는 낙동강방어선, 다부동전투, 워커라인, 등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말해주는 갖가지 이름들이 적혀있었답니다. 들머리부터 그 옛날 한국전쟁 때의 일들이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싸움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전시관이 몇 군데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쟁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해놓았답니다. 군인들이 곳곳에 매복해있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모습들, 전투체험관에는 누구라도 그 시절 전투를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큰 스크린 화면을 앞에 두고 총으로 쏴서 적들의 무기를 터뜨릴 수 있는 것도 있었고, 당시에 군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노무자들이 갖가지 보급품들을 지게로 나르며 군인 못지않게 뒤에서 돕다가 총에 맞아 쓰러져간 정신을 엿 볼 수 있는 지게 체험도 있었답니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낙동강방어선전투'우리 국군과 북한군의 군 병력에서부터 약 2.5배나 차이가 나는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전투를 펼쳐야했던 우리 국군들, 이 당시만 해도 전국의 5%정도만 남아있을 때였다고 하네요. 이미 북한군에 점령당했던 것이지요.
"모두 마을을 떠나십시오. 오늘밤, 왜관철교를 폭파할 겁니다. 어서 마을을 떠나십시오!"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 1950년8월3일, 낙동강방어선을 지켜야만했던, 그래서 대구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만 했던 절박한 마음으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할 방법으로 왜관철교를 폭파해야했던 것이랍니다. 그야말로 '결단의 시각'이었답니다. 끝내 같은 날, 20시 30분 왜관철교를 폭파하여 총 496m 중에 63m를 끊은 것이랍니다. 이것을 계기로 북한군이 밀려드는 것을 1차로 막기는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지요.
이곳 칠곡군에는 왜관 뿐 아니라, 다부동전투와 가산전투, 수암산전투, 최대의 사상자를 냈던 유학산전투, 또 12일간 15차례나 이 고지의 주인이 뒤바뀌는 치열했던 328고지전투, 또 369전투, 왜관 자고산 학살만행 등, 그야말로 칠곡군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전투가 55일 동안 치열하게 치러졌던 곳이랍니다.
국군과 북한군, 3000여구의 시신이 뒤엉킨 328고지
지난날, 우리 부부가 자전거를 탈 때, 동호회 사람 몇 사람이 328고지에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시계를 잃어버리고 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갔는데, 희한하게도 갈 때마다 소지품을 하나씩 꼭 잃어버리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마치 6.25때 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하는 것 같다는... 그래서 그 뒤로는 겁이 나서 못가겠다고 하던 말도 들었지요. 물론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우리끼리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328고지를 한 바퀴 돌아내려오면, 그 말을 들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식은땀이 흐르고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머리가 쭈뼛해질 때도 있었답니다. 그 뒤로는 거기엔 다시 가지 않았지요.
지금 생각하니, 딱 12일 동안 15번이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싸웠던 곳이니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고, 또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죽어갔을까? 오죽하면 328고지에는 지금도 나무가 잘 자라지 않고 마치 황폐화된 곳처럼 보인답니다. 겨울철에 보면 더욱 그랬지요. 요즘은 그나마 좀 나아진 듯도 하지만, 둘레 산과 견주어보면 정말 헐벗은 산처럼 보인답니다.
북한군의 끔찍한 만행
왜관 자고산 학살만행은 같은 해, 8월 13일에 일어났는데, 북한군이 왜관철교가 끊기자, 강물로 들어와서 국군 제1사단이 지키고 있던 328고지와 미군 제1기병사단과 제5기병연대가 지키던 자고산까지 쳐들어왔답니다. 그런데 미군이 접근하는 북한군을 국군 증원 병력으로 잘못 알고 막지 못해 포로가 되었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들은 포로들을 전화선과 군홧줄로 묶어 밀어놓고 마구잡이로 학살한 비극적인 일도 있었답니다.
게다가 북한군은 자기네 기관총사수의 발에다가 쇠줄을 채우고 그 쇠줄을 땅 속 깊이 박아 고정용 쇠말뚝을 쓴 예가 많았다고 합니다. 최후까지 싸워야했고,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 없도록 할 만큼 잔인하고 야만적인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고 해요. 참 기가 막히지요.
50년 만에 백골로 만난 남편
'낙동강방어선전투'의 치열했던 전투 가운데에 칠곡 '369고지'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인데, 지난 2000년에 이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유해발굴을 했답니다. 그때, 한 국군의 유해가 발굴된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 저미고 안쓰러운 이야기랍니다. 초소에서 앉은 채로 총에 맞아 희생된 국군이었는데, 유해 발굴과 함께 그의 이름이 적힌 삼각자와 만년필, 호루라기가 나왔답니다.
특히 삼각자에는 그가 손수 새겨 넣은 '최승갑'이란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그걸 단서로 유족을 찾으니, 당시에 벌써 75세가 된 원정호 할머니였어요. 발굴단이 찾아갔을 때, 엊그제도 꿈속에서 남편을 봤다면서 '백골이라도 내가 봐야 한이 안 될 것 같다' 면서 현장에 왔다고 합니다.
50년 동안 기다린 긴 기다림, 이미 백발이 된 아내, 남편과 헤어질 때 이제 막 갓 난 딸아이가 있었는데, 어느새 중년이 되어 백골이 된 아버지를 찾아간 것입니다. 내내 담담했던 할머니도 남편의 호루라기를 알아보고 휴가 나왔을 때, 목에 차고 나왔다고 얘기를 하며, 백골이 된 남편의 유해를 보자마자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는데 가슴이 메어지더군요.
이 이야기는 '55일'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송까지 나갔지요. 그 방송을 보던 영화감독 강제규 감독은 대작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게 된답니다. 바로 50년 긴 기다림의 끝에 백골이 된 남편을 만난 원정호 할머니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수많은 '최승갑' 그들이 지켜낸 호국의 성지 '칠곡'안타까운 죽음과 수많은 '최승갑'과 같은 우리 군의 희생자들이 피 흘리며 싸워 지켜낸 곳이 바로 칠곡이었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또 싸워서 마침내 미군의 B29폭격기로 공중에서 융단폭격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융단폭격 싸움이었다고 하네요. 칠곡군 북삼면과 약목면에 960톤이나 되는 엄청난 포탄이 26분 동안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의 보급로가 끊기고 통신이 마비되면서 점차 북한군의 기세가 끊기게 되고, 드디어 1950년 9월 24일에 이 '낙동강방어선전투'가 끝이 납니다. 그 뒤로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서울수복'이라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답니다. 당시에 '대구'가 국군의 수도였던 만큼 절대로 내줄 수 없는 곳이었고, 북한군은 북한군대로 대구를 쳐야만 부산까지 밀고 내려갈 수 있는 것이라서 더욱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랍니다.
그만큼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을까요? 수없이 많은 '최승갑'과 같은 군인들이 피 흘리며 끝까지 싸우다가 죽어간 그 곳! '칠곡', 이곳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의 성지'라는 것이 참으로 감회가 깊답니다.
끝으로 '칠곡 호국평화기념관'의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서 참전 군인이 한 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아 소개합니다.
"요즘 학생들한테 '다부동전투'를 아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몰라. 기가 막혀. 그런데 '월남전'을 아느냐고 물으면 모두 안대. 월남전은 외국 사람들 전쟁이야. 이 '다부동전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있게 한 전투였다고... 월남전은 아는데 이걸 모른다면 말이 안 되잖아!"
꼭 6월 25일 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에서 피 흘리며 싸우다가 죽어간 수많은 목숨들을 잊어서는 안 되겠어요. '칠곡 호국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돌아서 나오는데, 저 언덕 위에 높이 솟은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입니다.
굉장히 큰 태극기였는데, 그 펄럭임이 정말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이 태극기는 55일 동안 이곳에서 치러졌던 '낙동강방어선전투'를 기념하여 55m 높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뜨거운 가슴이 되어 한참 동안 말없이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