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짙은 녹조가 눈앞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숨이 막힙니다. 눈알이 튀어나온 물고기가 곳곳에서 둥둥 떠다닙니다. 큰빗이끼벌레조차 살 수 없어서 떠난 강. 시커먼 펄 속에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만 우글거리며 악취가 코를 찌르는 그곳에서 살아보겠다고 꿈틀댑니다.
최근 금강의 모습입니다.
사계절 중에 여름 강은 더욱 힘듭니다. 머리가 벗겨질 듯 내리쬐는 뜨거운 뙤약볕. 강변엔 잠시 쉬어갈 그늘이 없습니다. 그 많던 버드나무는 죽어서 뼈대만 앙상해진 지 오래됐습니다. 몇 발짝 걷기도 힘들어 주저앉고 싶습니다. 하늘이 빙빙 돌면서 어질어질. 혼자 강변을 걸으면 턱까지 숨이 차오릅니다.
"이렇게 죽는 건 아닐까?"
발목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등을 타고 흐르는 땀 줄기 때문에 배낭이고 카메라고 다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좀, 무겁더라도 물이라도 넉넉히 챙겨올걸...' 후회하다가 간장 빛으로 변한 강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제야 하늘도 뚜렷이 보이고 살 것 같았습니다.
부글부글 배가 끓어오릅니다. 창자가 끊어질 듯 고통스럽습니다. 채 바지도 내리지 못하고 사고를 쳐버렸습니다. 뜨거운 물줄기가 뺨을 타고 흐릅니다. 4대강을 걸으며 오십 줄에 접어든 내가 부끄럽습니다.
"가랑잎만큼이나 물고기가 많다."팔순 어부의 말이 맞나 봅니다. 죽은 물고기가 계속 떠오릅니다. 4대강 삽질이 벌어지던 그 날부터 공주보 주변은 죽음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단 하루도 죽은 물고기를 보지 못한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썩어가는 물고기엔 토실토실한 구더기가 득시글합니다. 냄새도 고약합니다. 배낭 깊숙이 감춰놨던 두통약 두 알을 입안에 털었습니다.
큰빗이끼벌레도 사라진 금강... 진짜 무서운 놈들이 나타났다지난 2년간 저를 괴롭히며 따라다니던 이끼벌레도 본류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보 주변은 물론 그놈이 숨을 만한 장소는 모조리 훑어보았습니다. 가끔 눈에 띄던 놈들은 작은 주먹 크기인데, 손 위에 올리기만 해도 비실비실 힘없이 떨어져 흐릅니다. 이젠 큰빗이끼벌레도 살지 못할 정도로 물이 썩어가나 봅니다.
이끼벌레가 떠난 자리를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란 놈들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환경부에서도 4급수 최하 수질오염 지표종으로 삼을 정도로 무서운 놈들입니다. 깊고 시커먼 물속을 좋아하는 이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붉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하수구나 썩은 토양에 살아갈 정도로 독한 놈이라 함부로 만져서도 안 됩니다. 이들이 사는 물도 접촉하면 피부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를 취재하던 방송사 기자가 이들이 살던 퇴적토를 코에 대고 방송을 하다가 욕부터 터져 나와 10여 차례 NG를 내는 웃지 못할 장면도 연출했습니다.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는 보기에도 징그럽고 만지면 가렵고, 울긋불긋 몸에 붉은 반점까지 생기는 통에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만지는 날이면 손톱 밑에 낀 놈들 때문에 가려움과 두통으로 쉽게 잠들지도 못합니다. 지금껏 강에서 만난 놈 중 최고로 독한 놈들입니다.
자꾸만 죽어가는 생명, 썩어 나뒹구는 물고기, 창궐하다시피 마릿수를 늘려나가는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때문에 악취 민원에 빗발칩니다. 해 질 녘이면 공주시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강변에 방역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수자원공사의 행동은 엽기적입니다. 뱃머리를 높게 쳐올리고 빠른 물살을 일으키며 뱃놀이에 빠집니다. 유속을 일으켜서 강물을 뒤집고 흙탕물을 이용해 감추려는 속셈입니다.
"좀 떨어져요. 씻고 다니던지.""아침저녁으로 두 번은 씻고 다닙니다."최근 강변에서 걷고 자다 보니 산적 같은 머리에 덥수룩하게 수염이 나 있으니 거지처럼 보였나 봅니다. 김치찌개 냄새에 유혹되어 식당 문을 열었더니 위아래로 훑어보시던 아주머니가 1000원짜리 하나를 내밀더군요. 햇볕에 타서 빨간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올랐지만, "고맙습니다"란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나왔습니다.
가끔 식사를 같이하던 후배도 '냄새가 난다'며 요즘은 저를 멀리합니다. 나름 깨끗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말을 듣고 살자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합니다. 씻지 않아서 풍기는 냄새가 아니라 물속을 드나들며 만졌던 펄에서 풍기는 냄새라고요~.
눈물 머금고 또 비행기 띄워... "이러니 미친놈 소리 듣나보다"
"지난번 비행기 요금도 있는데, 또 띄워요?"공주에서 부여 가는 강변길이 훵 합니다. 자전거 도로변은 물론 물가까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깨끗합니다. 사람도 찾지 않는 곳인데, 빡빡 밀듯이 벌초한 강변을 보면서 울컥 또 치밀어 오릅니다. 소 사료로 먹이는 하얀 곤포만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벌건 속살을 드러낸 강변을 고라니 한 마리가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사람들도 찾지 않는 곳까지 싹 밀어버린 이유를 따지기 위해 공주시에 전화를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국토부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발을 뺐습니다. 도긴 개긴이라고 했던가요. 국토부도 공주시가 시키지도 않는 곳까지 한 일이라고 떠넘겼습니다.
강변을 밀어버린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무인기를 띄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필요하면 말해요"라고 했던 사람들이 정작 필요할 땐 없었습니다. 또다시 눈물을 머금고 비행기를 띄웠습니다. (관련 기사:
금강 천변 '20만평 예초작업', 생태계 다 죽는다)
그렇게 얻어낸 사진으로 20만 평 정도의 둔치를 훼손한 사실과 잡풀을 제거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공주시가 강변 둔치의 잡풀을 일부 축산 농가에 베어가도록 허락을 해주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기사를 쓰고 적립된 원고료는 3만 원, 비행기 값으로 지급해야 할 비용이 100여 만 원, 대단한 기사도 아니고 눈 한 번만 감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될 돈인데... 이러니 가족들에게까지도 미친놈 소리를 듣고 사나 봅니다.
국토부(대전지방국토관리청)가 금강변 자치단체에 1년에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유지관리비로 내려보낸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쓰고 버려지는 일회성 예산입니다. 풀 깎고 둔치 훼손하는 데 혈세가 낭비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공산성이 바라다 보이는 강변에 모래섬(하중도)이 있습니다. 금모래가 반짝이며 갈대와 버드나무 등이 잘 어우러진 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입니다. 산책길에 나선 시민들이 낮에도 고라니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정도로 자연학습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주시는 갈대와 버드나무를 베어내고 중장비를 이용하여 평탄작업을 해버렸습니다. 버드나무가 잘린 곳에는 매실나무를 심었습니다. 꽃을 심어 가꾸느라 비닐을 깔고 비료를 뿌리면서 불을 지르는 등 경작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지면서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셈이죠.
"아직도 저에겐 오천 원이 있습니다."
지겹게도 사라지지 않고 여름이면 스멀스멀 녹조가 밀려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제 책상 위엔 천 원짜리 5장, 오천 원이 놓여있습니다. 이 돈으로 이끼벌레를 찾았고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를 파헤쳤습니다. '상유십이'(尙有十二 :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란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아직도 저에게는 오천 원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뭇생명들이 질식해가는 전쟁터 금강에 무기(카메라와 노트북)를 들고 나갑니다. 너덜너덜해진 등산화의 끈을 바짝 조여 맵니다.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들이 꿈틀대는 시궁창, 오늘도 난 뜨겁게 달아오르는 녹색 강에 나갑니다. 강의 죽음을 기록하기 위해... 강의 회생을 희망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