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책임지게 해 주면 안 돼? 내가 해결책을 찾게 해 줘."7살 아이와 엄마의 대화가 왜 이리 무겁냐고요? 먹거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 아이는 아토피가 있습니다. 아이는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으면 가려워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만 그런 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이는 저녁에 기름진 고깃국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야식으로 매콤달콤하게 튀긴 과자를 먹겠다네요.
"해결책이 뭔데?""해결책은 이따 찾을게." 매콤달콤 과자를 먹으려는 아이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여 엄마인 저는 그만 약해지고 맙니다.
"그래, 조금만 먹어."아이는 신나게 과자를 먹습니다.
<빨강이 제일 좋아>에는 빨강을 좋아하는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우리 엄마는 내가 빨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라고 말합니다. 빨강 양말이 좋다는 아이에게 엄마는 "그 옷에는 흰 양말이 더 잘 어울려"라고 말합니다.
흰 양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입니다. 빨강 양말을 양 손에 들고 눈을 반짝이던 때와는 딴판입니다. 아이는 결국 빨강 양말을 선택합니다. 빨강 양말을 신고는 높이 뛰고, 힘차게 발을 구릅니다. "나는 빨강 양말이 좋아요"라고 말하며 빨강 양말을 흐뭇하게 내려다 봅니다. 아이의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아이는 빨강 벙어리장갑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빨강 벙어리장갑은 구멍이 났잖니. 갈색 장갑이 더 따뜻하단다"라며 다른 장갑을 꺼내 놓았습니다. 구멍 난 빨강 장갑을 끼고 두툼한 외투를 입고 빨강 부츠를 신고 모자와 목도리까지 두른 아이는 갈색 장갑을 또 지그시 바라봅니다.
아무리 갈색 장갑이 더 따뜻하다 하더라도 아이는 빨강 장갑을 벗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빨강 벙어리장갑을 끼면, 신이 나서 눈덩이를 더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모르는 아이의 마음은 어느새 장갑을 끼고 눈싸움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 있습니다.
뭐가 다르냐며, 엄마는 초록 컵에 따라 놓은 쥬스를 마시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빨강 컵에 주스를 먹는 게 더 맛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빨강 컵을 진짜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새로운 사물, 동물, 사람들, 공간들을 만나면서 더 좋아하는 물건도 생기고, 싫어하는 물건이 생기기도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아이가 잘 커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고, 흐뭇해집니다.
때로는 아이가 내 품을 벗어나고 있구나 싶어 섭섭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상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불안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믿고 아이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빨강을 좋아하는 아이는 이야기 합니다. 아이의 세계를 존중할 때, 아이는 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고.
잠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달려 옵니다.
"엄마, 간지러워!"둘째 아이가 무릎 뒤를 긁어댈 참입니다.
"아까 네가 해결책을 찾아 놓겠다 했지? 해결책이 뭐야?""엄마! 엄마가 해결책이야!""뭐? 그런 게 어딨어? 그러게 엄마가 간지러우니까 먹지 말라 했잖아!""먹고 싶은 걸 어떡해? 엄마가 안 간지럽게 해줘!"그래도 뭐가 마음에 걸렸는지 아이는 과자를 혼자 다 먹지 않았습니다. 누나에게도 나눠주고 아빠에게도 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고개를 끄떡끄떡 하면서도, 크게 한숨을 한 번 쉬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무릎 뒤를 호호 불어 줍니다. 손가락으로 비벼 주기도 하고, 부채질도 해 줍니다.
아이는 여기가 가렵다, 저기를 불어 달라 하더니, 어느새 드르륵드르륵 잠이 듭니다. 다행입니다. 가려움에 잠 못 들지 않아 다행입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결국 아이가 마련해 둔 해결책이 잘 작동된 셈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빨강이 제일 좋아/캐시 스틴스 글/ 로빈 베이루스 그림/ 박현이 옮김/ 어린이 작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