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스리랑카 남부 함반토타 지방에서 배수구에 빠진 아기코끼리를 구조하는 영상이 방송되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자기 몸도 겨우 들어가는 구멍에 빠져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라는 듯,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발을 허우적대던 아기코끼리.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졸였고, 공무원과 경찰, 동물보호단체가 총출동해 배수구를 부수고 구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기코끼리는 다리를 밧줄로 잡아당기는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곧 보호시설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발이 씻은 듯이 나아서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기를 바랐는데…. 지난 6월 22일, 영국 BBC는 이 아기코끼리가 보호시설에서 죽었다는 비보를 알렸다. 보도에 따르면 보호시설에 단 한 명뿐인 수의사가 17일부터 자리를 비웠고, 건강상태가 갑자기 위중해진 아기코끼리는 결국 20일 세상을 떠났다. 구조 현장에는 어미로 보이는 코끼리가 불안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가슴을 후벼팠다.
스리랑카에서는 도로변에서 여유롭게 큰 귀로 부채질을 하며 풀을 뜯는 코끼리 가족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인구의 70%가 불교 신자인 불교 국가 스리랑카에서 코끼리는 종교적으로 신성시되는 존재다. 스리랑카 코끼리는 5%만이 엄니를 갖고 있어서 상아를 채취하기 위해 밀렵 되는 경우도 적다. 그래서 스리랑카는 코끼리가 서식하는 아시아 국가 중 면적당 코끼리 분포 밀도가 가장 높다.
약 6000마리 중 4000마리는 코끼리보전지역인 국립공원에, 2000마리는 공원 밖 정글에 서식한다. 스리랑카에도 동물원이나 코끼리 트래킹같은 관광산업에 동원되는 코끼리들이 있지만, 그 숫자는 200~250마리가량으로 나라 안의 코끼리 절반 이상이 관광산업에 이용되는 태국에 비하면 그래도 적은 편이다.
듣다 보면 '코끼리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코끼리 천국이구나!'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해마다 2백 마리의 코끼리가 사람 손에 목숨을 잃는다. 삶의 터전을 놓고 벌어지는 코끼리와 사람 사이의 싸움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코끼리 서식지, 먹이 찾아 민가로 농경지 확대와 도시개발로 인해 숲의 면적이 감소하면서 코끼리가 살 곳이 점점 줄어들었다. 남아있는 숲마저도 농장동물의 먹이를 기르는 목초지로 전환하거나 벌목, 화재 등으로 숲의 질이 악화되었다. 또한 도로 개설로 서식지가 조각조각나는 단편화(habitat fragmentation) 현상이 나타나면서 코끼리들은 살 곳과 먹을 것이 줄어들었다. 코끼리가 물을 먹는 곳이나,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경로에 마을이 세워지면서, 코끼리가 사는 곳과 사람이 사는 곳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 졌다.
먹을 것이 없어진 코끼리들은 결국 마을로 내려와 경작지를 찾게 되었다. 하루에 200kg의 먹이를 먹어 치우는 코끼리는 식사 매너가 그리 깔끔한 동물이 아니다. 좋아하는 이파리를 골라 먹느라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 놓기 일쑤다. 코끼리를 쫓아내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해마다 50명가량이 코끼리에게 밟히거나 공격당해 죽는다. 아무리 멸종위기에 종교적으로도 귀하게 여기는 코끼리라지만, 이쯤 되면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농민들에게는 불청객이 아닐 수 없다.
사람과 코끼리 사이에 점점 쌓여 온 앙금은 잔인한 방법으로 코끼리를 살해하는 비극을 가져왔다. 먹이를 찾아 나섰던 코끼리는 총에 맞거나 몰래 설치해 놓은 전깃줄에 감전되어 죽는다. 덩치가 작은 코끼리는 우물이나 구덩이에 빠지거나 철로를 건너다가 기차에 치여 죽는 경우도 있다.
이중 가장 잔혹한 방법은 '호박 폭탄'이다. '하카 파타스(Hakka Patas)'라고 불리는데, 코끼리가 좋아하는 호박에 폭발물을 넣어 경작지 주변에 설치해 높으면 코끼리가 먹이를 무는 순간 폭발물이 터진다. 좋아하는 호박을 먹으려다가 한순간에 턱과 코가 날아가 버린 코끼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며칠을 거쳐 죽음에 이른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코끼리와 사람 사이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 없이 개발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아기코끼리가 배수구에 빠진 함반토타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 밀림을 밀어버리고 대형 크리켓 경기장과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었다. 수도 콜롬보로 모든 산업이 집중되는 과부하현상을 막을 제2의 항구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업적 타당성과 환경적 요건을 고려하지 않은 막개발로 공항은 일 년에 고작 2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유령공항이 되었다.
코끼리 서식지 한가운데 지어진 공항에는 코끼리떼가 시시때때로 출몰한다. 공항 이용객은 하루 열 명에서 스무 명밖에 되지 않는데, 코끼리의 침입을 막기 위해 3백여 명의 군인이 상주한다고 하니, 요즘 말로 하면 참 '웃픈' 일이다.
'야생동물 피해', 동물 입장에서는 '적반하장'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민가에 들어와 농사를 망치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동물이지만, 사실 코끼리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살던 곳에 사람이 침입한 것이니, 코끼리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야생동물들도 스리랑카 코끼리와 비슷한 처지다. 시꺼먼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와 갈팡질팡하다가 사람이 겨눈 총구에 쓰러지는 영상은 잊을 만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언론에서는 멧돼지를 인명사고와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당으로 묘사하고, 정부는 '박멸','퇴치'라는 단어를 써가며 포획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멧돼지도 멧돼지대로 할 말이 있다. 겨울이면 멧돼지의 양식이 되는 도토리 등 나무 열매를 등산객이 채집해 가면서 배가 고픈 멧돼지들이 음식을 찾아 민가로 내려간다. 서울의 경우, 등산 열풍으로 북한산 일대에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멧돼지의 서식지를 침범한 것이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는 원인이 되었다.
멧돼지뿐 아니다. 노루든, 고라니든, 아파트, 도로를 짓는다고 산을 밀어버리고 나서 살 곳이 없어진 것도 억울한데, '유해동물'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개체수 조절'이라는 명목으로 사살 대상이 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이제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는 지리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니, 얼마 남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사람과 코끼리, 서로 안 싸우고 잘 살려면...스리랑카 농민들과 지역사회, 비영리단체, 정부기관 등은 저마다 코끼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끼리와 인간과의 갈등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일어나기 때문에, 오직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코끼리의 경작지 침입을 막는 방법 중 하나는 펜스를 치는 것이다. 코끼리에게 안전한 전기펜스를 치는 방법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 설치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코끼리가 싫어하는 나무로 펜스를 치는 '바이오 펜싱(bio-fencing)'이라는 방법도 있다. 팔미라야자나무, 아가베 나무, 레몬, 라임같은 시트러스 나무 등 코끼리가 피하는 식물을 펜스처럼 심는 것이다.
또, 큰 통나무로 펜스를 만들되, 땅 깊숙하게 나무를 박지 않으면 코끼리는 흔들리는 나무를 몸으로 박거나 움직이려 하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효과를 볼 수 있다. 피해지역에서는 코끼리가 먹이로 선호하지 않고, 농가 수입도 올릴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방법이다. 코끼리를 포획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방법도 시도되었으나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기적인 방법으로는 서식지 풍부화가 있다. 코끼리 서식지에 코끼리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식물들을 심어서 경작지나 민가로 침입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 한다. 국립공원이나 야생동물보전지역의 면적을 넓히고, 서식지 간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생태 통로를 만드는 등 보다 지속가능한 대책이 절실하다. 야생의 코끼리를 관찰하는 에코투어리즘(Eco-tourism)처럼 코끼리 보전이 경제효과까지 가져와, 사람도 코끼리도 서로 싸우지 않고 잘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람의 미래도, 코끼리의 미래도 결국에는 사람 손에 달려 있다.
살아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 아기코끼리의 명복을 빈다. 어미코끼리도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났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