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가스 조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판매가 주춤하고 있는 폭스바겐이 유독 한국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아이러니다.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배출가스 조작 관련,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총 150억 달러(한화 약 17조 1379억 원)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9월에 발생한 디젤게이트 이후 10개월 가까이 해결책은 전무한 상태다. 오히려 한국에서 팔린 폭스바겐 디젤차는 미국의 디젤차와는 차량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보상할 게 없다는 게 폭스바겐그룹의 기본 자세다.
6일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지난 6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총 1834대를 판매했다. 이는 BMW 4820대, 메르세데스-벤츠 4535대, 아우디 2812대에 이어 수입차 26개 브랜드 중 4위를 차지한 수치다.
폭스바겐은 또 올해들어 6월까지 상반기에만 총 1만2463대가 판매됐다. 이 역시 메르세데스-벤츠(2만4488대), BMW(2만3154대), 아우디(1만3058대)에 이어 4위에 속한다. 폭스바겐의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10.68%에 달한다.
폭스바겐은 특히 SUV 모델인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은 올해들어 6월까지 총 4164대가 판매됐다. 국내에서 현재 팔리고 있는 수입차 530여개 전 모델 중 베스트셀링 1위를 기록했다. 해치백의 강자로 불려온 폭스바겐 골프 2.0 TDI도 3061대가 팔려 3위를 차지했다. 이들 모델은 모두 폭스바겐이 배출가스를 임의로 조작한 차량에 속한다.
눈 여겨 볼 대목은 폭스바겐의 글로벌 판매는 줄고 있으나, 우리나라 시장에서만큼은 폭스바겐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사랑(?)이 식을줄을 모른다는 것. 한국을 '물'로 보는 폭스바겐의 자세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대체 뭘까?
먼저 손꼽히는 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변칙적 마케팅을 들 수 있다. 아우디의 주력 모델인 비즈니스 세단 A6는 몇몇 딜러를 통해 대당 1000만 원 이상씩 암암리에 할인해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가격으로 차량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바보 소리를 듣게 된다.
폭스바겐의 경우에는 수시로 파격적인 할인 조건을 내세운다. 배출가스가 조작됐던 해당 차량들의 판매 가격을 인하하거나, 초 저금리 할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사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작년 하반기 디젤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한국시장에서 판매가 크게 줄 것으로 우려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국내의 모 유명 리서치 업체에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리서치 업체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폭스바겐 브랜드가 디젤게이트 사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한국시장에서 판매가 꾸준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차 값을 할인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국내의 한 정통한 수입차 소식통이 기자와의 미팅에서 귀띔한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에 또 하나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법적 제도적 문제점뿐 아니라 정부의 폭스바겐에 대한 대응이 미지근한 것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이다.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의 의식 결여도 빼놓을 수는 없는 이유다.
같은 사안을 놓고 미국 소비자들은 우대받고, 한국 소비자들은 차별을 받고 있으면서도 꾸준히 차를 사주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대기 오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인들의 이기주의가 너무 앞서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다.
불과 한달 전, 환경부에서 닛산의 인기 모델인 캐시카이에 대한 배출가스 임의설정을 확인했다고 발표하자, 당일부터 닛산 전시장에는 소비자들의 전화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캐시카이도 이제 할인하나요? 언제쯤이면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직언이다.
덧붙이는 글 | 하영선 기자는 자동차 전문지 <데일리카>의 국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