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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 성벽(The Derry Wall)에서 내려다 보는 런던데리 전경
데리 성벽(The Derry Wall)에서 내려다 보는 런던데리 전경 ⓒ 김현지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에서 벨파스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아일랜드 전체 도시들 중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하고. 6세기 콜롬바(Colomba) 신부가 수도원을 세우면서 마을이 형성된 이후 생겨 역사가 깊은 도시에 속한다.

과거의 이름은 데리(Derry)였으나 1613년 영국 식민지 시절, 런던 길드 상인들이 데리로 대거 이주를 하게 되고 제임스 1세로부터 칙허장(Royal Charter)을 받는다. 그 이후 지명 앞쪽에 '런던'을 붙이게 되면서 도시 이름을 데리에서 런던데리로 바꾸었다.

현재 공식명칭은 런던데리이지만 도시 안에선 데리와 런던데리를 함께 부르고 있다. 오히려 런던데리보다 데리란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하는 느낌이다. 남쪽 아일랜드 공화국의 경우, 지도나 방송, 일상에서 런던데리보다 데리로 더 많이 통용된다.

 런던데리 도시 곳곳에는 영국 국기와 북아일랜드 국기가 설치되어 있다
런던데리 도시 곳곳에는 영국 국기와 북아일랜드 국기가 설치되어 있다 ⓒ 김현지

 데리 성벽을 둘러싼 곳곳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데리 성벽을 둘러싼 곳곳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 김현지

그럼에도 이방인의 눈에 런던데리란 이름은 정체성이 불안정한 도시로 느껴졌다. 서울의 경우, 과거에 한양, 한성, 경성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을 통치하던 미군정청의 문서에서 서울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서울로 불리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말 자체는 한글이 창제되기 전부터 우리 민족이 사용했던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서울이란 이름은 과거의 이름을 다시 찾은 격이 될 수도 있겠다.

런던데리의 경우는 어떨까? 원래 데리의 이름이 영국 식민지배 이후 런던데리가 되었다. 1916년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 이후 아일랜드에 독립의 바람이 불었고 1922년 아일랜드 독립전쟁에서 승리 후 남쪽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공화국(Republic of Ireland)으로 독립하게 된다.

대신 북아일랜드는 자치권만 인정 받은 채 영국령에 속하게 된다.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에 있지만, 영국령에 속한 도시이기 때문에 데리가 아닌 런던데리로 불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이 독립된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런던데리가 아닌 데리로 공식명칭이 바뀔까?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 속으로

 프리 데리 구역이 시작되는 곳. 왼쪽 너머로 데리 성벽이 보인다.
프리 데리 구역이 시작되는 곳. 왼쪽 너머로 데리 성벽이 보인다. ⓒ 김현지

런던데리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데리 성벽(The Derry Wall)과 프리 데리(Free Derry) 구역이다. 데리 성벽(Derry Wall)은 17세기 영국 제임스 1세 왕 통치 시절에 세워진 성벽이다. 데리 성벽을 두고 아일랜드 최초의 계획도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계획도시의 취지는 참 아이러니하다.

당시 토착 아일랜드 사람들과 영국에서 넘어 온 런던 시민들은 런던데리에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일랜드 시민들로부터 런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데리 성벽을 의도적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높은 구릉 위에 성벽을 만들고 런던에서 건너온 시민들은 그곳에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성곽도시 안 중앙에 있는 4개의 문을 갖춘 다이아몬드 형의 구조물은 방어에 유리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성곽도시 안의 규모도 꽤 크다. 현재는 성곽의 안과 밖을 오고 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과거에는 성벽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 받으며 살아왔으리라. 성벽 둘레에 포진되어 있는 수십 개의 대포들이 그때의 긴장감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 프리데리 구역

 (위) 프리 데리 구역에 그려져 있는 벽화
(아래) BBC 히스토리 방송에서 제공한 1972년 실제 사진.
(위) 프리 데리 구역에 그려져 있는 벽화 (아래) BBC 히스토리 방송에서 제공한 1972년 실제 사진. ⓒ 김현지, BBC

데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는 바로 프리 데리 구역이다. 이곳은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 감독의 영화, <블러디 선데이>로 더 유명해진 곳으로 실제 영국군인과 아일랜드 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났던 곳이다.

1916년 부활절 봉기 이후 남쪽 아일랜드는 독립을 하였고, 북아일랜드 일부 지역은 영국 자치령에 속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북아일랜드는 노골적으로 개신교와 천주교를 차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북아일랜드 안에서 천주교 신자가 높았던 데리는 소외된 도시가 되었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제 상황도 급격히 나빠졌다. 1960년부터 북아일랜드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IRA(The Irish Republican Army)가 결성되었고 프리 데리 구역도 이 무렵 생겨났다.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구교도 차별을 반대하는 평화 시위단에게 영국군은 총을 쏘았고,그 결과 14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13명이 부상을 당한다. 한국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했다. 그때 죽거나 다쳤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10대나 20대였다고 한다.

영국에서 한동안 이 사건은 아일랜드 시위단이 먼저 공격한 것을 영국 군대가 정당방위한 것이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2010년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이 사건이 비무장 시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임을 인정하였고 공식적인 사과를 하기에 이른다.

1998년 이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북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굿 프라이데이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을 맺었고 IRA도 2005년에 완전 무장 해제하였다.

현재 런던데리는 특별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도시이다. 하지만 런던데리의 다른 지역에는 영국 국기와 북아일랜드 국기가 함께 걸려있는데 반해, 프리 데리 구역에는 아일랜드 국기가 걸려 있다. 곳곳의 벽에 그려진 벽화를 통해 그 당시 슬펐던 역사를 기억하게 되는 곳이다.

한국의 경우 약 35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었다. 그나마 우리는 식민지배의 역사가 짧았고 여전히 그때의 생존자들이 살아 있다. 국민의 공통된 정서 속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반감은 있지만 개인이 느끼는 정서 속의 일본은 조금 다르다. 방사능 문제 이전에는 여행하기 좋은 나라, 깨끗한 나라, 친절한 사람들, 좋은 제품들 등 일본 자체에 대한 개인이 느끼는 이미지는 그리 나쁘지 않다.

 프리 데리 구역 곳곳에는 아일랜드 독립 운동 및 시위와 관련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프리 데리 구역 곳곳에는 아일랜드 독립 운동 및 시위와 관련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 김현지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내가 궁금한 것 중 하나가 그 부분이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영국은 어떤 나라로 인식되는가? 대부분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에 특별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 제품을 선호하고, 영국의 좋은 점을 받아들인다. 어떨 땐 800년 가까이 자신들을 식민지화했던 국가를 찬양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존심도 없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부모님 세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일본의 잔인성이 언론에 보도될 때 잠깐 분개하는 것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일본 문제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나의 문제, 가족의 문제에 바쁜 나머지 내 조국, 민족의 문제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아일랜드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할 것이다. 너무 오래된 식민지 통치와 그 문화와 역사에 익숙해 버린 나머지 영국의 역사가 아일랜드의 역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상황. 아일랜드 역사에서 영국 역사를 버리면 건질 게 별로 없는 그들의 역사. 오히려 그 상황을 품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런던데리는 꼭 한 번 가야 하는 도시이다. 다른 아일랜드 도시들과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았던 도시. 이곳 시민들이 누리는 평범한 삶의 터전은 과거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를 통해 얻은 값진 결과임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재편집하였습니다.



#북아일랜드#런던데리#데리#프리데리구역#블러디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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