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자체도 그렇고,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 좋다. 각자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져 조금씩 화음을 맞춰가니까 으쓱도 하고, 혼자 할 때보다 함께 합창하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다." 8일 저녁 전남 나주시 남평읍사무소 2층 대회의실. 50대 한 여성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여기 오면 그냥 좋다. 절로 흥이 난다"고 말했다. 매주 금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하모니합창단의 연습 날이다.
하모니합창단은 지난 4월 창단한 '마을합창단'이다. 남평읍 주민 23명이 참여하고 있다. 합창단을 만들 때, 노래 실력은 따지지 않았다. 일부러 혼성4부합창이나 여성3부합창 등을 의도하지도 않았고 오디션도 없었다.
주민이 만드는 하모니, 마을합창단..."이웃과 노래로 소통하니 흥이 절로"단장을 맡고 있는 김순례(55)씨는 "특별히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누구라도 단원이 될 수 있다"며 "처음에는 단원끼리도 어색하고 생소한 말(음악 용어) 때문에 낯설었는데, 지금은 화기애애하고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휘자가 에너지가 넘친다"라며 "연습에 빠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남성 단원이 한 명도 없어, 소프라노·알토·메조소프라노로 편성된 여성3부합창을 할 참이다. 아직은 화음보다 잘못된 노래 습관을 바로 잡는 데 신경쓰고 있다. 이날 연습 때도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복식호흡, 올바른 발성법, 자세 교정 등 기본기를 닦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도라지 꽃>, <그리운 금강산>, <예쁜 아가씨> 등 노래를 부를 때도 그랬다."'남진 창법'으로 부르면 안 돼요. 트로트 부를 때처럼 소리를 내면 안 돼요"."표정! 표정이 중요해요. 내 얼굴, 몸이 악기예요. 얼굴 들고 허리를 곧게 펴세요"."산 속에 핀 도라지꽃을 상상하면서, 부드럽게 '도라지 꽃'…".중간중간 노래가 멈추는 일이 잦았다. 지휘자 권효진(예술학교 D-ASIAN 예술감독)씨는 발성이 잘못 되거나 음정이 정확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1시간 30분이 넘는 연습 시간이 짜증날 법도 하지만, 얼굴을 찡그리는 단원은 없었다.
지휘자 권씨가 주문하는 대로 얼굴 표정부터 자세를 바꿔가며 제 목소리를 터득했다. "나이 때문에 혼자만 못 따라 갈까봐" 합창단 참여를 고민했다는 박군자(73)씨는 "가르쳐 주는 대로 하니까 다른 소리가 나고 신기하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합창단 맏언니인 박씨는 "시에서 지원해 주니까 이렇게 합창을 배울 수 있게 됐다"며 "할수록 재미지다"고 말했다.
지휘자 권효진씨는 "연습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노래 감성도 잘 표현하시고 곧잘 따라오신다"라며 "벌써 (합창단 활동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권씨는 "합창은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보다 분위기가 가장 중요한데 합창단 분위기 너무 좋다"라며 "농사 아니면 다른 일터에서 일하고 오셔서 피곤할 법도 한데 진지하게 배우시려고 집중하시고, 어르신들 얼굴 표정에서 신바람이 느껴진다"라며 덧붙였다.
"합창 통해 마을문화공동체 활성화 기대"...20개팀 창단 목표
연습이 끝나갈 무렵 권씨는 단원들에게 "감성을 잘 표현하고 화음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라며 "혁신도시 어린이합창단과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 어때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단원들은 "그럼 드레스를 어떻게 할까 생각해 봐야겠네", "다이어트 해야겠다"라며 동의했다. 권씨는 자신이 지휘를 맡고 있는 빛가람혁신도시 어린이합창단과 하모니합창단의 합동 공연이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길 바랐다.
나주에는 5개 마을합창단이 활동 중이다. 남평읍을 비롯해 다도면·성북동·이창동·빛가람동의 마을합창단에 시민 11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매주 1회 이상 연습하는 데 드는 활동비, 기본기부터 화음 연습을 도와 줄 전문가(지휘자와 반주자) 수당을 시비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마을합창단 지원 사업을 시작해 상반기에 5개팀을 창단했다.
나머지 15개 읍·면·동의 합창단 창단도 서두르고 있다. 모든 읍·면·동에 마을합창단 1개팀 이상 창단,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나주시는 올 10∼11월쯤 모든 마을합창단이 참여하는 작은 규모 축제를 열 계획이다.
윤지향 나주시 문화예술팀장은 "합창은 단순히 여럿이 모여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화음을 만드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라며 "음악을 통해 시민들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합창단 활동을 계기로 마을과 지역에서 시민문화공동체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을합창단은 시민문화예술 활동 지원 사업으로 '시민문화 행복도시' 조성을 위한 시책 중 하나다. 지난해부터 시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시민이 참여·주도하는 문화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발굴, 추진하고 있다.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나주시립예술단의 '찾아가는 공연', 시립합창단 연습실로 시민들을 초대해 여는 '딘치(Dinch) 콘서트'는 시민체감 문화 시책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행복도시' 조성...시민 창작·문화공동체 활동 지원
'딘치(Dinch) 콘서트'의 딘치는 Dinner(디너, 저녁)와 Lunch(런치, 점심)의 합성어로 '오후에 한가롭게 즐길 수 있는 음악회'를 의미한다. 대규모 공연장이 아니라 연습실에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 4월부터 '행복한 이야기 콘서트'로 이름을 바꿔,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에 한 차례씩 열린다.
조만간 '문화가 있는 삶' 사업도 펼치기로 했다. 개인이나 동아리, 마을단체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성북동 마을합창단 단장 서명례(51)씨는 "실력을 쌓아서 5월 어버이날 행사, 요양병원이나 경로당, 마을과 지역사 등 지역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무대에 서고 싶다"라며 "문화예술을 통해 이웃과 화합하는 계기를 만드는 일(지원사업)은 좋은 방향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윤지향 팀장은 "올해부터 시민문화 공동체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라며 "시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도울 수 있는 사업을 발굴, 추진해 '시민문화 행복도시' 나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