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 종놈 대하듯 국민을 대상으로 막말을 해대는 치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다. 양반이라고 노비에게 말 함부로 하기만 했겠느냐만 최소한의 예의범절 정도는 갖추어야 양반이고, 요즘말로 배운 사람 되는 거다.
"이놈 냉큼 이것부터 하지 않을까!"라 말하면 할 일도 심통이 나서 더디게 마련이고, "아우님 이걸 좀 도와주면 안 되겠어?"라 하면 하지 않아도 될 일 팔목 걷고 나서게 만드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자란 부분 또 들추어 열불 날 일 없으니 여름 복날 즐기기 좋은 추어탕이나 이야기 한다.
먼저, '맛집'에 대한 이야기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 의해 소개된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제법 오랫동안 '장맛 좋은 집'이란 목록을 만들어 거기에 맞는 음식점과 음식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전과 많은 부분에서 맛이나 재료가 달라졌음을 느끼고 그런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게 됐다.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 더러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대해 소개를 부탁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다른 일로 바쁘기도 하고, 그럴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부탁을 거절한다.
음식 맛이 정직하다면 굳이 소개를 부탁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그 음식이나 식당에 대해 소개할 것이다. 정직함이란 먼저 재료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설악산에서 산채정식과 같은 산나물로 이루어진 식사를 주문하고 "여기서 나는 나물인가요?"라 물어보면 장황하게 "여기가 설악산 아닙니까, 설악산과 점봉산에서 주민들이 채취한 나물만 받아 우리는 사용합니다"라 대답한다. 과연 그 말이 진실이냐는 판단은 개개인의 몫으로 남기겠다.
명이나물이 유명세를 타니 너나없이 명이나물장아찌를 내고, 더덕구이도 "재료가 오늘은 떨어졌다"는 말도 들을 수 없는 풍경이다. 설악산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명이는 한 곳의 음식점에서 사용할 양도 안 된다. 더덕도 종일 산을 휘돌아봐야 몇 뿌리 채취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재배한 것만 선별적으로 사용하느냐는 의문이 든다. 국내산은 4kg 한 관에 4~5만원으로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흙을 씻어내고 껍질을 벗기면 서비스로 내줄 입장이 안 된다. 이런저런 사정을 알게 된 뒤 과연 어떤 식당을 '맛집'이라고 소문을 내겠는가.
오랜 세월 인연이 된 '산따라 맛따라'의 박재곤 선배님께서 요즘도 왕성하게 산자락 주변의 맛 이야기를 쓰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분 나름 "이젠 정말 진실한 맛 찾기 어렵다" 탄식하실 것 같다.
며칠 전 지역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몇 분과 함께였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11시 30분이 되었는데 식사나 하러 가자고 한다. 추어탕을 좋아하냐며 오늘 추어탕이나 먹자고 차를 가지고 오셨다. 추어탕을 먼저 좋아하느냐고 물었으니 당연히 그 분의 단골집이 있어 그곳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 시인 어디 잘 아는 집이 있어요"라고 묻기에 "몇 집 다녀 본 중에 정말 예전에 먹던 그대로인 집이 한 집 있다"고 하자 "그럼 오늘은 그 집으로 가자"며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한다.
낙산사에서 적은리 방향으로 우선 가야 한다고 하니 "혹시 솔거리추어탕집이 아닌가요"라 한다. 맞다고 대답하니 자신도 그 집으로 안내를 하려던 참이란다. 사람은 셋이 탔는데 모두 같은 집을 생각한 것이다.
'솔거리추어탕(강원도 양양군, 033-671-1360)'집은 낙산사 방향에서 신호를 받아 좌회전을 해 들어가는 길이 외지인들에겐 편하다. 우리야 이곳 지리를 잘 아니 농로길 사이로도 잘 찾아다닐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주소찾기나 '적은리'를 네비게이션에서 검색을 하고 가면 된다.
낙산사와 진전사가 있는 둔전리 사이에 위치한 이 집은 근처에서 유일한 식당이다. 양양버스터미널이나 낙산해수욕장에서 길을 모르면 전화를 해도 되고, 인원이 택시를 타기엔 많은 경우라면 식당으로 전화를 하면 픽업도 해 준다. 버스는 몇 대 없다보니 낙산사입구에서 내려 적은리 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메뉴가 있는 집보다 이렇게 주된 메뉴 한 가지와 안주 정도만 내는 집이 음식은 더 확실하다. 메뉴가 간단하다보니 주인 내외가 직접 주방을 보며 예전 어렸을 때 끓여먹던 추어탕을 그대로 살려 낸다고 한다. 주인 고동일(56)씨는 제법 오래 객지생활을 하다 돌아오자 곧장 옛맛을 살린 추어탕집을 외진 이곳에 냈다고 한다.
옛말에 '주향불파항자심(酒香不怕巷子深)'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술 향기가 좋으면 골목이 아무리 깊어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즉 음식 맛이 좋으면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손님은 찾는다는 말이니, 솔거리추어탕이 이렇게 외진 곳에 가게를 열고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고도 남겠다.
음식을 주문하면 먼저 깻잎을 싼 다음 튀긴 미꾸라지튀김이 밑반찬과 인원수대로 나온다. 고소한 맛과 깻잎 향이 어우러진 풍미가 깔끔하다.
곧 추어탕이 나오는데 다른 추어탕집처럼 뻑뻑한 탕이 아닌 비교적 맑은 탕이다. 심지어 정말 미꾸라지를 넣었나 싶을 정도로 맑은데 데친 미꾸라지를 채로 내려 뼛조각을 완전히 제거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부추는 들어가 있지만 여기에 식성대로 부추와 마늘 찧은 것, 청량고추 다진 것을 더 넣고, 들깨가루와 초피가루로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반찬은 무로 만든 깍두기와 김치를 기본으로 산채음식이 몇 종류 더 곁들여진다. 그날은 취나물과 더덕무침이 나왔는데 그 이전에 들렸을 땐 당귀잎으로 만든 장아찌가 입맛을 개운하게 해줬다. 예의는 아닌 줄 알지만 일행에게 양해를 얻고 정말 오랜만에 음식을 촬영했다.
솔거리추어탕은 밥도 특별하다. 감자를 깎아 앉히고 좁쌀을 섞어 지은 밥은 구수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입맛을 돋워준다. 미리 밥을 공기에 퍼 보온을 시켜놓고 주는 것이 아니라, 곧장 큰 대접에 퍼 담아 내오는데 감자밥은 지은 지 1시간만 넘어도 색과 맛이 변한다. 그걸로 미뤄 주문을 하면 밥을 곧장 짓는 듯하다.
부추와 초피, 들깨가루, 마늘 다진 것과 청량고추 다진 걸 넣고 막 먹으려다 촬영한 사진이다. 먼저 맛을 본 뒤 이 재료들을 더 넣고 먹어야 한다. 초피는 일반적인 추어탕을 내는 식당에서 제공하는 산초가루와는 달리 향이 강하고 독하니 아주 조금만 넣어야 한다.
먼저 맑은 국물을 몇 수저 떠먹고는 밥을 말아 먹는데, 사실 이 집의 직접 담근 동동주 한 잔 생각은 간절했지만 일행들이 술과는 거리가 있는지라 참았다. 동해안에 즐비한 생선 횟집들이 보면 욕하겠지만 반드시 생선회를 먹어야 동해안 여행이나 양양 바닷가를 다녀간 건 아니다. 그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얼마든지 건강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이 어찌 즐겁고 행복한 일 아닌가.
사담이지만 자식 둘 중에 첫째인 딸은 아빠를 졸라 밤낚시도 곧잘 나간다. 하지만 어탕을 끓여도 잘 먹지는 않으니 묘한 일이다. 그런데 둘째인 아들 녀석은 낚시는 재미없다고 하면서도 민물고기로 끓인 어탕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운다. 오죽하면 감기가 지독히 걸려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꺽지와 미유기로 어탕을 끓이는 동안 짜증을 부리던 녀석이 어탕 한 뚝배기에 밥까지 말아 깨끗이 비우는 걸 보고 "아빠가 낚시질 열심히 해야되겠어"란 말을 친구 부인이 했을까.
더운 여름 모두 보신탕이나 삼계탕, 백숙 같은 걸 찾는데 난 보신탕을 안 먹는다. 그렇다고 개를 썩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어느 때 부터인가 보신탕과 닭을 즐기지 않게 됐다. 동행이 그걸 먹고자 하면 함께 가기는 하는데 즐기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복달임을 한다며 계곡이나 다리 밑으로 솥을 들고 가며 불러도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곤 한다.
맑은 남대천이나 계곡에서 낚시질 몇 시간이면 시원한 그늘에서 즐거운 시간 충분히 보낼 일을, 99% 동변상련을 이해하는 개를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