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이후, 한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인공지능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이 컴퓨터에 패배한 이후에도 바둑만큼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다들 생각했지만, 전설적인 바둑 기사 이세돌은 알파고에 1:4로 대패했다. 그러나 사뭇 인류의 미래가 달린 듯 엄숙한 대결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다시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밀린 서류를 마감하거나 감자를 튀기거나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열심히 찍고 있을 텐데 말이다.
<제2의 기계시대>는 이 질문에 답한다. 왜 '제2의 기계시대'인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인간을 진보시킨 18세기 산업혁명 시대를 저자는 '제1의 기계시대'라 이야기 한다. 증기기관의 발달로 인류가 맞이한 생물학적 근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생물학적 지능의 한계를 넘어, 기계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는 '제2의 기계시대'에 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전까지의 기계는, 계산에 강한 대신 패턴 인식이나 추론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기계가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물며 바둑과 같이 경우의 수가 많은 게임에서 모든 선택지를 다 계산하는 것은 컴퓨터임에도 힘들기 때문에, 인간처럼 경험에 기반을 두고 최적의 수를 추론하고 결과를 예측해 나가는 전략에 이길 수 없었다.
여기까지가 기계 지능의 한계였으며, 인간은 이 기계지능이 할 수 없는 모든 지적 노동을 해왔다. 그러나 기계학습과 뇌 신경망을 모사한 병렬적 추론 방식을 적용한 알파고는 인간 같은 직관과 컴퓨터 같은 수읽기로 인간에게 참패를 안겨주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진 지적 영역의 한계에 도전했음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이런 시대에는, 기계가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단순 육체/지식 노동자들은 대부분 실직하게 될 것이며, 디지털 시대의 재생산 비용은 제로에 수렴하기 때문에 가장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스타가 모든 것을 독식할 것이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보다 편의성이 떨어지는 SNS 기업 100개의 총 수익을 합쳐도 페이스북 하나의 총수익을 따라가지 못함은 자명하다. 이는 가지지 못한 자와 가진 자의 격차를 크게 벌릴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발생하는 풍요가 이런 격차를 상쇄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 격차가 풍요보다 더욱 거대할 것으로 예측한다.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기술적 실업(기술 혁신에 따라 생기는 실업이 새로운 직업이 생기는 속도보다 빨라서 생기는 실업)을 든다.
이 비극을 막기 위해 저자는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직업'을 찾도록 격려하고, 충분한 교육 기회, 기업가 정신 강화, 기초과학 지원 등을 주장한다. 이를 넘어 기본소득세의 더 진전된 개념인 '역소득세'를 소개한다.
정말로 '제2의 기계시대'는 도래할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제2의 기계시대의 주요 원동력인 무어의 법칙이 과연 미래에도 계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가 남아 있다(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역소득세 도입 등이 과연 양극화 현상을 완화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여러 논쟁이 있을 만한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미 디지털화의 영향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없는 하루를 상상할 수 있는가? 벌써 컴퓨터는 암을 거의 오차 없이 진단하고, 뉴스 기사를 쓰고, 주식 시장을 분석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성숙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가 미래에 대한 주인이어야 한다.
기본소득세 논의와 더불어 교육제도 혁신 등을 단순한 SF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제1의 기계시대 인간만을 만들어왔던 지금까지의 한국의 구조를 넘어서야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재중 기자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생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