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종 갈등은 심각하다. 이 상황이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언론은 현 상황만 보도하기 급급하다. 경찰 총격에 사망한 흑인들과 흑인 손에 죽은 경찰 이야기로 계속 대치하는 모습만 비춘다.
경찰을 죽인 흑인은 '로봇과 폭탄'으로 사살됐다. 마치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기려는 듯 강경한 대응책을 사용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를 잡을 때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흑인들은 계속해서 저항하고 행동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한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를 멈추는 데 필요한 움직임을 취해야 할 때라고 외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러했듯 함께 행진하며, 평등하게 생존할 권리,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백인으로 대표되는 주류 사회가 만든, '문제 집단'이라는 틀에서 흑인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흑백 인종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아시아인, 특히 한인들은 어떠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까. 뉴욕에서 발행하는 한인 언론 보도만 보자면 관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나서 이야기 나눈 몇 한인은 딱히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가난한 흑인들이 노력하지 않아 열등하다는 이미지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한인은 "90년대 벌어진 'LA 흑인 폭동'을 생각하라"고 충고하듯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 한인들에게 흑인들이 당하는 인종차별과 이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려고 한인 젊은이들이 나섰다. 1세대 한인들에게 흑백 갈등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리고, 차별이 여전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동참해 주기를 호소하는 영문 편지를 우리 말로 번역했다. 최근 <뉴스 M>은 이들이 번역한 편지 전문을 보도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6275).
어떤 이들이 이러한 일을 벌이는지 궁금했다. 다양한 한인 젊은이들이 모였다는 소식에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한인들에게 소개하고 동참을 호소하는 주승섭씨를 소개한다. 심리치료 전공으로 석사 과정에 있는 밝고 긍정적인 유학생인 그를 지난 주말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나봤다. 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다음은 주승섭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서 심리치료를 공부하는 주승섭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지낸 지 6년 정도 되었다. 시카고에서 심리 치료를 공부했고, 1년 정도 일하며 지냈다. 심리치료를 더 공부하기 위해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해 1년을 마쳤다. 성소수자를 위한 상담 치료 분야로 나가고 싶다. 성소수자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성소수자 상담사로 한국에서 활동하며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참여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도 차별에 계속 노출된다. 나는 한국인으로 살지만, 한국인인지 한국계 미국인인지 많은 사람이 정체성 어려움을 겪는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이런 질문 자체가 실례인데, '아시아에서 왔냐'고 물어보면 더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이렇게 묻는다. 아시아에서 왔느냐는 편견을 담아 물어보는데, 여기서 나고 자란 아시아 사람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차별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성별과 인종을 가장 먼저 본다. 인종을 따지면 사회적 지위까지 보게 된다. 계층과 계급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지위 문제가 사회 문제에서 중요한 요소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지위가 인종과 쉽게 연결되는 문제가 있다.
대학에서 여러 문제로 학생들끼리 '다이어로그'라는 모임을 했다. 여기서는 인종, 종교, 성별 등 다양한 문제로 차별받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다 보니, 인종과 성별을 주로 다루었다. 이 모임을 2013년에 진행했다.
졸업 후인 2014년에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됐다. 이 운동을 지지했지만,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이러한 운동이 일어났는데, 졸업하고 일하다 보니 참여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 모이는 시간에 일터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SNS로 알리며 동참하는 정도에 그쳐야 했다.
많은 유색 인종 친구가 차별을 경험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유학생으로서 인종이라는 정체성을 고민한 지 5년 정도밖에 안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던 유색 인종 친구들은 나보다 십수 년을 더 고민했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내 목소리를 내는 건 이후의 문제라고 여겼다.
한국 학생들은 주변에 이 일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최근 경찰 총격에 의한 흑인 살해가 연속해서 일어났다. 이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편지 번역과 알리는 일에 동참하게 됐다. 이 상황에 대해서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한국도 인종 차별이 심한 상황인데, 미국에 오기 전에는 인종 차별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가?"하나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별적 시각이 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베트남 주재원으로 나가면서 청소년 시기를 베트남에서 지냈다. 당시 국제학교에 다녔는데, 전교생이 800명이었고 56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여서 위화감은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 와서 '흑인 편견'이 생겼다. 사람들이 '저 길은 가면 안 된다', '저 골목은 위험하다'는 등 흑인 동네를 피하라고 먼저 일러줬다. 물론 지금은 그런 말들에 신경 쓰지 않는다."
- 한인들은 이 사안을 두고 LA 흑인 폭동을 이야기하며 동참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당시 일어났던 사태도 시대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흑인 인권 운동 시기,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유색 인종을 위했다. 1970년대에는 아시아인들도 이에 동참하고 연대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깨려는 기득권의 프레임이 들어왔다. 아시아인들과 흑인, 히스패닉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인들은 이민을 와서 점점 부유해지는데 너희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비교했다. 거기에 아시아인들의 순종적인 성품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유색인종 간에 대립이 시작됐다. 백인이 만든 사회에서 백인이 만든 프레임에 갇힌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프레임 자체가 문제인데,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실제 LA에서 일어난 흑인과 한인의 갈등도 이러한 프레임이 문제였다. 백인 경찰이 과속으로 단속된 흑인을 무차별로 구타하는 폭행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청각 장애인이 될 정도로 구타한 경찰관은 가벼운 처벌로 석방됐다.
이 시기 한인이 흑인 여자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게에서 음료수를 훔치려 한다고 오해한 상점 주인이 말다툼과 몸싸움 끝에 아이를 총으로 쏜 것이다. 언론은 경찰의 살해와 석방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해 한인과 흑인 사이에 갈등을 심화했다(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들이 한인 타운을 공격했다). 백인우월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유색인종 간에 벌어진 투쟁으로 비쳤다.
당시 상황에서 어떠한 한인도 흑인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막심한 피해를 보았고, 사망자도 많았다. 민족주의가 강한 한인 사회에서 흑인들을 두둔하거나 이해한다고 하면 바로 소외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백인들이 비춘 유색인종간에 벌어진 싸움으로만 사람들 기억에 남았다. 이러한 결과로 백인우월주의만 남았다.
그래도 계속 싸워야 하고, 유색인종을 계속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이 모여도 우리가 흑인 인권운동에 동참하는 것이지, 우리가 운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 1.5세대와 2세대들도 인종을 바라볼 때 편견이 있다고 보는가?"차별적 시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미국 사회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미국에서 아시아 남성들이 남성성의 위축을 경험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백인들이 설정한 순종적 이미지를 다른 인종이 편견으로 바라보는 것과 연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흑인 문화를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랩, 힙합 문화 등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경험한다.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는 현상이지만, 이를 마치 자기 것처럼 사용하면서 문제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자기 내면에 있는 흑인 비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한다.
가령 N**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흑인들 스스로 부르는 건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사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그게 단순한 노래 가사라도 말이다. 문화와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많은 한인 친구들은 그냥 랩 가사인데 어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무의식적으로 흑인들의 남성성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백인들이 만든 프레임 안에서 생겨난 남성성 이미지를 꿈꾼다. 무의식적으로 흑인의 과장된 남성성을 우상화하게 된다. 우상화한 이미지를 수용하는 일은 잘못된 생각과 프레임을 받아들이고, 따라감을 의미한다. 우리는 실제로 흑인 문화는 좋다고 하지만, 그들이 지내는 동네에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단정한다. 만들어진 이미지는 따라가지만, 실제 흑인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큰 괴리가 있다.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일이다.
결국 미국에서 함께 지내고 자란 인종이지만, 편견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흑인의 남성성을 폭력성과 연결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과장되는 문제도 있다."
- 1세대와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흑인차별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부모 세대에 영향을 받은 한인 우월주의도 일정 부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최고라는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다른 민족과 인종을 비하하기 마련이다. 중국인을 ㅉ*라고 부르는 것에서 쉽게 드러난다. 실제로 한인들이 백인 우월주의에 젖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겠다. 백인을 우위에 두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한인 우월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한인 사회에서는 동등한 인식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월주의는 권력관계를 나타낸다. 백인이든 우리 민족이든 한 대상을 가장 우위에 놓는다. 이러한 한인들의 인식은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미국을 백인의 나라라고 인정하며, 내가 너희 방식에 맞춰주어야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차피 여기는 너희(백인)들의 나라인데, 우리가 왜 신경을 써야 하니'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 아시아인들이 주류로 들어가려고 노력만 할 게 아니라 차별받는 인종을 포용해 연대해야 하는 상황은 아닐까? 1세대와 2세대 갈등도 첨예한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지금 진행하는 'Black Lives Matter'(BLM)를 우리말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라고 번역해서 사용한다. '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함께 전달하기 위해서다. 공생하고, 같이 살아보자고 하는 것이다.
1세대 중에서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의 비중이 높다. 과한 노동이 수반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쉽지 않다. 생계가 걸린 가게를 두고 나올 수 없다. 이러한 이야기조차 나눌 기회와 시간이 부족하다. 한인 2세 친구들도 부모님께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우리는 번역한 편지를 이런 의미로 보내고 있다.
'바쁘고 힘든 상황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아요. 이야기할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 볼게요. 편지를 써서 보내니 읽어보고 답변만 해주세요.'
사실 이러한 문제를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말하는 데까지 2년이 걸린 것이다. BLM이 시작하고 2년이 지나고 우리 말 편지가 나왔고, 이제야 부모 세대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1세대-2세대 사이에 나이 차를 넘어서는 문제도 있다. 1세대는 한국에서 자랐고, 2세대는 미국에서 자랐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이러한 세대 갈등도 심각하다. 2세대들은 내가 한국인지, 미국인인지 정체성을 정확하게 모르고 자라는 경우도 많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도 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너는 한국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다 세대가 경험하는 갈등이 드러나면 네가 미국화 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문제도 제대로 이야기하고 설명하고 풀어가지 못하는데, BLM 문제를 설득하기란 더 쉽지 않다. 지극히 미국적인 문제인데, 한국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더불어 '내가 더 한국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그런 자녀 세대 한인들에게 보듬어 주는 마음으로 편지를 손에 쥐어주고 싶다. "말하지 못하는 그 마음 알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도 이해해. 그러니까 이 편지를 한 번 같이 읽어 봐." 그래서 부모님과 친척 여러분께라고 제목을 번역했다. 영어 제목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가족 호칭이 친근하게 모두 사용됐다. 한인 1세대와 2세대 모두가 읽어보며,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2부 : '대통령이 흑인인데 웬 인종차별이냐고?'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주 한인 언론 <뉴스 M>에도 송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