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는 2002년 건강보험 재정위기로 만들어진 사회적합의기구입니다. 이 기구에서 우리 국민들이 한해 내는 보험료, 병의원이 받는 수가, 건강보험에 들어가는 급여내용과 범위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구조에는 국민들의 의견보다는 정부의 정치적 고려, 여러 이익집단의 요구가 더 많이 고려됩니다. 이는 해외의 경우와 비교해도 많이 잘못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국민들에게 건정심과 건강보험정책결정구조의 문제점을 알리고, 대안을 마련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했습니다. - 기자 말건강보험제도는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로서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와 국고보조금 등이 주수입원이다. 제도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의 주요한 정책 결정 사항에 대하여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누가 매월 부담하는 보험료의 수준을 결정하는지,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수가 수준을 결정하는지, 건강보험으로 커버되는 영역을 나타내는 보장성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그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의 성격 때문에 가입이 강제되어 있으며, 부담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보험의 성격 때문에 민간보험과는 달리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이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헌법 정신과도 부합된다할 것이다.
가입자들이 부담하는 보험료와 국고의 비율을 살펴보면 약84%를 가입자들이 부담하고 있으며, 국고부담률은 약16%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부담 비율은 정당한 것일까? 국가가 부담하는 국고보조금을 좀 더 투입한다면 가입자들이 부담하는 몫이 줄어들지 않을까? 아니, 보험료가 줄어들지 않더라도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부담하게 되는 본인부담금이 줄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또는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수가를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면 우리들이 매월 부담하는 몫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국가가 나서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국민적 정서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건강보험을 둘러싼 정책 결정 과정들이 언제나 정당했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의문들의 해결방안에 대한 향후 전망 또한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정심, 정부 제안 그대로 통과시켜주는 '거수기'
건강보험 제도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다수결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건정심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가입자 대표들(8명)과 공급자인 의료계(8명),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들(8명)로 구성되어 있다. 매우 민주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정심 위원들의 구성에서부터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 운영 또한 파행적으로 정부가 편의적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즉, 건강보험재정에서 급여비를 받아가는 공급자가 건강보험의 중요 정책을 담당하는 건정심 위원으로 참가하는 것은 의료 정보의 전문성을 고려한 것이기는 하지만, 매년 의료수가를 공급자와의 계약을 통해 정하도록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건정심에의 의료계의 참여는 의료계의 입장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건정심에 참여하고 있는 각계의 대표자들이 각각의 입장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있느냐는 대표성의 문제이다. 누가 가입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자인지, 가입자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보험료를 부담하는 대다수의 가입자들이 모른다는 점이다. 각계의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상, 운영상의 문제들로 인하여 건정심은 그 기능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다. 즉 정부가 제안한 안건들에 대하여 사회적 조정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정부가 제안한 안건들을 여과없이 그대로 통과시켜주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
그 단편적인 예가 2010년도부터 2014년까지의 건정심 회의 개최건수(본회의 기준)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출석회의는 40여회에 불과한 반면, 서면회의가 80여회를 넘는다.
이쯤되면 이해관계인들의 치열한 의견 조정 기능과 제대로 된 심의 기능이 작동될 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강보험의 정책심의의결기구인 건정심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니, 건강보험제도는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가는 데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건강보험 국고지원 문제, 전국민 관심사19대 국회에서는 건강보험의 국고지원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야당을 중심으로 국회에서의 법안 개정안 제출로 구체화되었다. 물론 20대 국회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건강보험의 국고지원 문제는 전국민의 관심사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국고에서의 지원은 건강보험 총수입의 37%, 대만은 26% 등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리나라보다는 국고지원금이 확대되어 있으며, 노인인구의 증가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고지원을 늘리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연도말의 보험료 수입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상수입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 연도말의 확정된 보험료 수입 대비 20%를 부담할 수 없다고 한다. 확정된 보험료 대비 지원하지 않은 금액이 2007년 이후 무려 12조원을 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야당에서는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에 대하여 사후 정산하는 개정 법률안을 제출해 놓고 있다. 가입자들이 부담하는 보험료도 매년 4월에 전년도의 보수 금액을 확인하여 사후정산하고 있으니 정부도 사후 정산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건강보험에의 국고지원 자체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나라가 한때 모델로 삼았던 일본의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정부가 부담하며,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보험료 인상 등을 통한 가입자의 부담이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국가의 책임을 가입자들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가마다 제도의 운영 기본방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건강보험에의 국고지원은 당연시되고 있으며,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국가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려는 의도는 대부분 OECD국가에서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만큼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충분한 자료가 제공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집단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사회는 성숙되고 발전한다.
우리나라처럼 건정심이 사회적 합의기구가 되지 못하고 정부의 거수기 역할만 할 바에야 새판을 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건정심은 전세계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비정상적인 기구로 지적을 받아왔다. 권한은 있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기구를 존속시킬 이유가 없으며,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새판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백영환 기자는 (전)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