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건물주와 임차상인이 공평하게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우장창창'이 건물주-임차상인 상생 밀알이 될 수 있을까? 사흘 전 강제집행 생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우장창창 앞으로 상인 수십 명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들 곁에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도 함께 섰다.
더불어민주당 '맘상모법' 발의 "건물주-임차인 상생해야"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는 21일 오전 우장창창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맘상모법(상가건물임대차법 개정안)' 발의 소식을 알렸다. 리쌍-우장창창 분쟁 원인이 된 상가법 환산 보증금 제한 규정을 없애고 임차인들의 권리금 회수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서울의 경우 임대보증금에 월 임대료 100배를 더한 '환산 보증금'이 4억 원 이상인 임차인은 상가법 보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강남을 비롯한 서울 상위 5대 상권의 평균 환산보증금은 약 8억 원에 달해 대부분 임차인들이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도 마찬가지다.
가로수길에서 6년째 장사해온 베러댄호프 유성호 사장은 이날 "가로수길 임대료가 크게 올라 나뿐 아니라 이곳 상인들은 대부분 상가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법대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기 힙합 그룹 리쌍과 오랜 임대차 갈등 끝에 지난 18일 강제집행 당한 우장창창 서윤수 사장의 지하 매장의 환산보증금은 3억 4000만 원이었지만 계약 당시 기준이 3억 원이어서 상가법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서씨는 지난 2013년 맘상모를 만든 뒤 환산보증금에 관계없이 모든 임차인들이 5년 동안 계약 갱신 요구권을 보장받도록 상가법을 바꾸는 데 일조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서윤수 사장은 "장사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복잡한 법까지 챙겨가며 장사하는 상인들이 얼마나 되겠나"라면서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불합리한 적용 기준이 당장 없어져야 하고 환산 보증금도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원도 "서울에서 잘 나가는 5대 상권의 환산 보증금이 평균 8억 원인 현실에서 4억 원으로는 임차상인들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없다"면서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 임차상인들을 쫓아내는 수단으로 쓰지 않도록 환산 보증금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로수길처럼 상권이 발달해 임대료가 급등하면, 환산보증금도 같이 올라 임차상인들이 상가법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모든 상인들은 5년짜리 비정규직"... "임차인 안 들어오면 건물주도 망해" 법을 앞세운 건물주와 갈등을 겪는 건 우장창창만이 아니었다. 서울 종로구 북촌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김유하씨는 장사를 하는 동안 건물주가 4차례나 바뀌면서 5년 만에 쫓겨날 처지다.
김씨는 이날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려니까 상가법이 보장하는 계약갱신요구기간 5년이 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퇴거 위기에 있다"면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모두 5년짜리 비정규직"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임차인이 의무를 위반하지 않는 등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다면 기한에 상관없이 장사를 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에도 50년, 100년 된 가게들이 생겨나지 않겠나"고 밝혔다.
제윤경 의원은 "얼마 전 신촌과 이대 상권 건물주들을 만났는데 임대료 급등으로 상가 공실률이 높아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면서 "지금 가로수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임대료가 올라 임차인들만 안 들어오면 건물주도 함께 망하게 된다"며 상생을 강조했다.
'맘상모법'은 우선 기존 환산보증금 규정을 삭제하고 임차인에게 결격사유가 없는 한 임대차 도중 언제든 권리금 회수를 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건물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할 때 기존 임차인이 우선입주권이나 퇴거보상료를 건물주에게 요구할 수 있게 했다. 또 임대차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져 많은 시간과 비용을 초래하는 걸 감안해 광역자치단체마다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중재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박주민 의원을 비롯해 송옥주 박광온 이정미 이재정 윤관석 박용진 우원식 박재호 김경협 이원욱 김현권 김민기 최인호 김현미 강병원 정동영 제윤경 등 18명이 발의했다.
앞서 홍의락 무소속 의원도 지난 10일 지자체별로 임차상인 70% 이상이 상가법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상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홍 의원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냈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임차인 권리 못지않게 건물주 재산권을 중시하는 여론의 저항도 거세다.
박주민 의원은 "모든 임차상인들은 5년짜리 임시직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 아팠다"면서 "이 법안도 특정인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건물주-임차인 모두 안전하게 자신의 꿈을 이루길 바라는 뜻에서 발의한 것"이라면서 이른바 '리쌍 팬덤'과의 충돌을 경계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7일 우장창창 1차 강제집행 현장을 찾았던 제윤경 의원은 강제집행의 폭력성을 꼬집었다. 제 의원은 "1차 강제집행 당시 법원 집행관이나 경찰이 현장에 없는데도 민간 보안업체 직원들이 연장과 소화기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현행 법에는 집행관 입회하에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있는데 관련 법을 바꿔 강제집행 현장에서 폭력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