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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7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잡년행진'에 참가한 한 시민이 자신의 등에 '내가 조선의 잡년이다'라고 적었다.
지난 2012년 7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잡년행진'에 참가한 한 시민이 자신의 등에 '내가 조선의 잡년이다'라고 적었다. ⓒ 이주영

지난 9일, 윔블던 대회에서 세레나 윌리엄스가 우승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승과는 별개로 누리꾼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다름 아닌 그녀의 젖꼭지 때문이었다. 대회 규정에 따라 세레나 윌리엄스 선수는 흰색 경기복을 착용했는데 스포츠 브라를 착용했음에도 그녀의 젖꼭지가 도드라져 보였다.

이에 경기를 관람한 일부 누리꾼이 그녀의 젖꼭지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표현했다. 트위터 등의 SNS에서 "돈도 많이 벌면서 제대로 된 스포츠 브라도 없다", "젖꼭지 좀 가려라", "거슬린다" 등 부정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윌리엄스의 팬을 비롯한 누리꾼들이 경기력이 아닌 젖꼭지를 운운한 것을 비판하면서 논쟁이 거세졌다.

왜 세레나의 젖꼭지만 문제가 될까?

이 상황을 지켜본 일부 매체에서 왜 세레나의 젖꼭지만 문제 삼느냐며 남자 선수들의 젖꼭지가 도드라진 사진들을 올리기도 하였다. 정말 왜 세레나의 젖꼭지만 문제가 되었을까? 비단 이번 윔블던 대회 경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상의가 몸과 밀착되면서 젖꼭지가 도드라져 보이는 남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예 웃통을 벗고 있는 남성들도 만날 수 있다. 남성에게 젖꼭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여성의 젖꼭지는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일까?

여성은 약 10세부터 브래지어를 입는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가슴이 발달하기 시작하면 피부에 자극을 덜 주는 면소재의 주니어브라부터 입기 시작한다. 자라면서 컵 사이즈가 중요하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한국여성 평균치에 안주하지 않고 일명 '뽕브라'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물론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잘 모아주고 잘 받쳐주는' 기능은 브래지어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갈비뼈를 압박하고 어깨끈이 살을 파고들어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도,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는 외출할 수 없으며 심지어 집에서, 잠을 잘 때조차 브래지어를 벗지 않는 여성들도 많다. 여성이 브래지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때는 대략 약 50년의 세월이 흐른 뒤다. 소위 '할매'들은 굳이 '브라자'를 차지 않아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인정된다. 즉 여성은 자신의 몸을 무려 50년 동안 통제(당)하다가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검열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꼭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도 된다. 브래지어를 입든 입지 않든 중력에 영향을 받는 지구인의 가슴은 모두 아래로 처진다. 노화도 가슴의 탄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것이 소화나 혈액 순환에 훨씬 도움이 된다. 오히려 가슴의 탄력을 유지하는데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브래지어로 잘 받쳐진 가슴이 몸매나 옷맵시를 살리지 않느냐고도 하는데 사실 '옷발'이 가장 잘 받는 몸은 런웨이를 워킹하는 모델을 보면 알 수 있듯 걸리는 것 없이 흘러내리는 몸매다. 굳이 브래지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격렬한 운동을 할 때 정도일 것이다.

여성이 브래지어를 입는 이유는 앞서 윔블던에서 벌어진 상황에서 알 수 있다. 바로 젖꼭지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젖꼭지는 가려져야 하나?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가려져야 한다. 왜? 도드라진 젖꼭지는 남성에게 성적 자극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유아나 할머니가 브래지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유아나 할머니의 젖꼭지는-일부 남성을 제외하고-대부분의 남성에게 의미가 없다.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 다리처럼 즉각적으로 성적인 자극을 일으키는 부위 외에도 목덜미나 심지어 '겨털'과 마찬가지로 젖꼭지는 여성에게 속해 있으되 온전히 여성의 것이 아니라 남성의 시선에 의해 보여지는 대상이 된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사회적으로 검열 받는다. 따라서 남성이 젖꼭지를 드러내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여성이 젖꼭지를 드러내는 것은 큰 문제이자 잘못이 되는 것이다.   

함께 외치자, 노브라 노프라블럼

브래지어가 너무 답답했던 필자는 최근 과감히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출근했다. 어찌나 몸이 가볍고 편하던지 여성 단체에서 여성 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여성 해방이란 이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로에 나서고 버스를 타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점점 주위와 시선을 살피고 등이 굽어 갔다. 누가 나의 가슴을 보지 않을까, 그리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 등등의 걱정이 커져 갔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이 글을 읽은 나의 지인이라면 다음에 만날 때 오늘은 내가 브래지어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내 가슴부터 확인하지 않을까?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고 그럼으로써 젖꼭지를 감추는 것이 마땅히 지켜야할 사회적 약속이자 도덕이나 예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자유권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신체의 자유에서 여성의 가슴은 제외되고 수많은 세월동안 구속 받았다.

성기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여성이 가슴을 '단도리'하는 것이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한다면 여성에게 불편하지 않은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성의 젖꼭지에게 '너도 여성의 것과 같은 젖꼭지로서 부끄러움을 알아라, 그러니 함부로 보이지 말고 가려라.' 같은 류의 허접한 방식을 말함이 아니다. 브래지어로 젖꼭지를 감추고 누군가에게 보기 좋은 가슴의 모양을 유지하게 하는 것, 또한 브래지어를 하든 하지 않든 여성의 가슴이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은 편견이 만들어낸 억압이자 바꿔야 할 악습이다.

함께 외칠 수 있길 바란다. No Bra, No Problem!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예민 시민기자는 대구여성회 위기청소년교육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여성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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