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파르나스역은 그 가을, 파리의 어느 곳보다 내게 특별한 곳이었다. 언제라도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라도 어디에서든 돌아와야만 하는 곳. 아침이면 몽파르나스역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하며 색색깔의 메트로를 골라 타고 어디론가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밤이면 파리 시내 어디에서건 몽파르나스역에 도달할 방법을 고심한다. 지하철 노선표의 선과 점을 잇는 줄긋기 끝에 다시 또 색색깔의 메트로를 갈아타고 이곳에 도착하는 식이다. 매일 매일 똑같다.
아침의 설렘과 흥분이 늦은 밤의 불안과 피로로 변할 때쯤이면 여지없이 나는 몽파르나스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달한 역에서 계단을 한 칸 한 칸 딛고 올라 지상으로 나올 때면,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몽파르나스 타워가 눈앞에 턱하니 서 있는 것이다. 전혀 파리답지 않은 거대하기만 한 이 59층짜리 타워가 시야에 들어오면 이내 긴장감이 풀리면서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곤 했다.
파리의 '흔하디흔한' 아름답고 정교한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서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혀 '흔하지 않은' 이 네모나고 높다란 검은색 빌딩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비아냥거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몽파르나스 타워를 20세기 가장 흉한 건축물이라고 비판한다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가 관광의 정수라 믿는 현대의 여행객들은 줄을 지어 타워 꼭대기 전망대로 오른다.
조용한 주택가였던 몽파르나스 지역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들어서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터전이었던 몽마르트르가 환락과 퇴폐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이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하나 둘 이주해 오면서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새롭게 변모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외국에서 몰려든 소설가, 시인, 화가, 정치적 망명가들까지 합류하면서 활기를 더하게 된다.
헤밍웨이, 만 레이, 모딜리아니, 피카소, 아폴리네르 등의 아지트로 유명해진 카페 르 돔, 라 쿠폴, 라 로통드, 르 셀렉트 등도 이곳 몽파르나스 지역에 모여 있다.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이곳에 있는 카페 '라 클로제리 데 릴라'를 '파리에서 가장 좋은 카페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도 그곳에서 탈고했다 한다. 나혜석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몽파르나스의 랑송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그렸다.
역 앞 광장에는 생뚱맞은 회전목마가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알록달록 작은 전구에 불을 밝히며 돌고 있었다. 실제로 타는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목마는 매일 매일 그렇게 꿈처럼 돌고 있었다. 목마에 올라타면 몇 바퀴쯤 천천히 돌다가 다들 자신이 원하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닐까, 올라타기만 하면 모두 그렇게 사라지기 때문에 늘 목마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닐까, 홀로 돌고 있는 아담한 회전목마를 보고 있자면 그런 공상이 스치곤 했다.
역사와 광장 사이에는 꽃집이 여럿 있었다. 빛깔도 모양도 향기도 모두 다른 꽃들이 끼리끼리 다발로 묶여 있는 모양이 풍성하고 아름답다. 예쁜 포장지 속에 고개 내민 꽃송이들의 말간 얼굴이 사랑스럽다. 누군가의 고백을 담아 오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게 될 꽃다발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손짓한다.
광장에는 작은 노점상들이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로 니트류로 이루어진 카디건과 얄프레한 스웨터가 진열되어 있었다. 쌀쌀한 가을 공기 탓인지 살 생각도 없으면서 망토처럼 생긴 베이지색 카디건을 들척여 보곤 했다. 머플러와 모자, 부츠와 구두 따위를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구두나 부츠는 하나같이 크고 투박스러웠다. 예술의 도시 파리가 아니라 서부개척시대 북미의 사막 어디쯤에서나 어울릴 법한 모양새다.
여느 기차역이 다 그러하듯 먹거리 가게들도 많았다. 샌드위치나 바게트, 크레페 따위를 팔고 있었고, 노점마다 누텔라 잼들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우리 가게 샌드위치는 아주 달아요~ 크레페를 먹으면 정신이 혼미해질 거예요. 달아도 달아도 너무 달거든요!' 하는 것 같았다. 매대 위에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초콜릿 색 잼들이 보기만 해도 아찔한 단맛이 느껴져 발길을 돌리곤 했다. 같은 단맛도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다니. 짙은 갈색 꿀이 흘러나오는 호떡이라면 냉큼 집어 들었을 텐데...
광장엔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디론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하릴없이 서성이는 사람들, 주저앉아 궁싯거리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누군가를 만난 사람들, 이제 곧 헤어질 사람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 나처럼 잠시 머무는 사람들...
사람과 물건과 음식과 꽃과 알록달록 회전목마까지, 몽파르나스역 광장은 늘 작은 축제 같았다. 마침 역 이름도 '몽파르나스-비앙브뉴(Montparnasse–Bienvenüe)'다. 파리의 지하철 공사를 지휘한 건축가 풀장스 비앙브뉴의 이름과 몽파르나스 지명을 합한 역 이름이다. 하지만 'bienvenüe'는 '환영'이라는 뜻의 불어이기도 해서 지하철 안내 방송은 "몽파르나스역에 오셨군요? 환영합니다!"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늘 그렇게 축제 같았을 리 없다. 낯선 도시 한복판 어수선한 기차역에서 매일 밤 안도감을 느낀 것도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실제로 늦은 밤 출출한 배를 달래려 간식거리라도 찾아 역 근처를 헤매다 보면 식료품점이나 가게들은 문 닫은 지 오래고, 어쩌다 만나는 주유소에 딸린 작은 편의점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편의점은 유리벽 너머로 아직 환하게 불 밝히고 있지만 출입문은 꽁꽁 닫혀 있다.
철창으로 가려진 작은 창구 너머에는 경계심 가득한 주인이 앉아 있고, 철창 이쪽의 또 다른 경계심 가득한 나는 어설프게 쭈그리고 서서 그 작은 구멍에 최대한 가까이 대고 주문을 한다. 제대로 소통이 될 리 만무하다. 철창 너머 주인도 그닥 팔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실망하는 쪽은 늘 이쪽이다. 투덜거리며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다시는 여길 오나 봐라 다짐하기 일쑤다.
끔찍한 사건과 사고가 예기치 못한 일상적 공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요즘은 아마도 분위기가 더 험악할 것이다. 이제 와 바다 건너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고 보면 그때 짧지 않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온 것이 다행이다 싶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파르나스역은 그 가을 파리의 내겐, 설렘과 긴장, 불안과 안도감이 묘하게 어우러진, 낯설고도 익숙한 곳이었다. 지금 이곳의 내게 저 지구 반대편 그곳은 아스라한 기억 속 공간일 뿐이다. 그것들이 거기 있었나 싶은, 내가 거기 있었나 싶은, 비현실적인 아득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