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혼'이라는 불리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변호사였다. 간디는 남아프리카의 인도인에게 선거권을 박탈하고 이민을 제한하며 세금을 과도하게 물리는 악법에 항의하기 위해 '사띠야그라하(Satyagraha,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힘)'라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간디는 인도에서도 영국이 전매하고 있는 소금법에 반대하여 직접 소금을 얻으러 바닷가로 걸어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러한 간디의 행동은 실정법에 위반되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간디를 범죄자가 아닌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위대한 영혼으로 기억한다.
'특조위 활동 보장하라' 세월호 특조위 위원장의 단식
세월호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은 지난 27일부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석태 위원장의 주장은 단순 명료하다. '법대로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특별법 제7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부터 법에서 정한 1년 6개월의 활동기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특별법 제7조가 특조위 활동기간의 기산점을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부터 시작한다고 명백하게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특조위 활동 기간의 개시 시점을 결코 특별법 시행일로부터 기산할 수 없다. 오히려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이라 함은 인적·물적 구성을 마친 2015년 8월 4일로 보는 게 맞다. 특별법 시행일인 2015년 1월 1일부터 기산하여 2016년 6월 30일까지로 하여 1년 6개월의 특조위 활동기간이 종료되었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법위반에 가깝다.
과거 특별법에 의해 활동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등은 모두 그 위원회의 활동 기산점을 특별법 시행일이 아닌 조사활동 개시 시점으로 보았다. 심지어 통일부는 2014년 10월 31일 6·25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의 활동기간을 "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을 개시한 날"로 기산한다는 유권해석을 한 바 있다. (통일부법령해석례, 14-0551)
세월호 특별법 제7조 규정,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활동기간이 보장된 사례, 통일부의 유권해석 등을 확인하면 정부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7월 28일자 <동아일보> 칼럼(기자의 눈/김단비, 법 대신 농성을 택한 세월호 특조위장)은 정부의 주장과 이석태 위원장의 주장을 열거하는데 그쳤다.
<동아일보> 칼럼은 정부가 백서작성에 필요한 예산을 제안하였음에도 이석태 위원장이 억지 주장을 하면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처럼 호도하는 듯하다. 이러한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 정부의 예산 제안은 특조위에 두는 직원의 정원감축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문제는 특조위에 두는 직원의 정원은 대통령 시행령(제2조 제2항 별표)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행령 개정 없이는 특조위 정원을 줄일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새누리당, 특조위 활동 종료 사실상 '강요'
특조위 정원감축이 정당해지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 시행령을 개정하면 된다. 해수부로 하여금 특조위에 정원감축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전가할 필요가 없다. 시행령 개정 없는 정원감축 통보는 당연히 무효가 되어야 마땅하다. 법률가 출신인 이석태 위원장이 무효인 정원감축을 전제로 한 정부의 예산편성 제안을 거부하는 것도 법치주의에 따른 요청이자 합당한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은 이념과 정치논리가 아니다. 진실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5월 19일 눈물을 흘리며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특별법 시행을 위한 대통령 시행령을 5개월 뒤에야 제정·시행하였고,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예비비로 예산을 배정했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 11월 청와대와 교감 하에 특조위의 청와대 조사가 개시되면 여당 추천위원들이 전원 사퇴하고 항의 기자회견을 하도록 내부지침을 마련하여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 새누리당은 특조위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것에 끝까지 반대했고, '세금도둑'이라는 프레임 감옥에 가두었다. 보수언론은 '세금도둑'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하였다.
2015년 2월 특조위가 진실규명을 위하여 특검발의를 요청하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를 외면하였다. 이념과 정치논리는 진실규명을 감추려는 자들이 내세우는 교묘한 힘의 논리에 불과하다.
특조위는 그간 온갖 방해활동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2차 청문회에서 "가만히 있으라"라는 선내 방송이 청해진해운 본사 지시에 의한 것임을 밝혔다. 또한 진도·제주 VTS 녹음 파일이 여러 차례 편집된 의혹도 밝혀냈다.
최근에는 해수부와 검·경 합동수사단이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쓰일 철근 410톤의 적재 사실을 숨기려 한 정황도 밝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 정황을 담고 있는 녹취록을 바탕으로 고발까지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특조위 활동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동아일보> 칼럼은 마치 '특조위 활동에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처럼 폄하하고 있다.
이석태 위원장은 '2016년도' 특조위 활동예산과 관련하여 농해수산위에 출석하여 2016년 12월 연말까지 예산을 편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정부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6년 들어서 특조위 활동기간 연장과 관련하여 이석태 위원장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수차례 협조를 요청했다.
최근 6월에는 활동기간 연장과 관련하여 청와대 조사를 배제조건으로 2016년 9월 종료 여부가 협상안으로 논의되기도 하였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은 지난 6월 30일로 종료되었지만, 선체조사 활동은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7월 중순 들어서 새누리당은 청와대 조사를 배제하는 조건으로 활동기간 연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두어들였다. 해양수산부도 선체조사 활동보장을 철회하였다. 정부에서 파견했던 특조위 파견 공무원들 중 일부도 복귀하였다. 특조위는 8월 말경 제3차 청문회를 계획하였으나, 출석대상 공무원들은 조사활동 종료를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사실상 특조위 활동 종료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멈출 수 없다
대화와 협상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대화의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일방의 굴복만을 요구한다면 더 이상 대화와 협상은 무의미하다. 간디의 '불복종 비폭력' 운동은 영국의 인도 식민지 통치를 극복하고자 인도 국민과 함께하는 '위대한 영혼'의 선택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민주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선택들은 많은 국민의 지지와 동참으로 각각 인도의 독립과 한국의 민주화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이석태 위원장은 최근 "나는 특조위의 선장, 이 배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 100번 좌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규명, 선체 인양, 안전사회의 건설을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로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가진 세월호 특조위 선장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정하고, 특별법 위에 군림하며 기만을 저지르는 국가폭력 앞에서 단식농성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을 보수언론의 왜곡된 '피로도' 프레임에 결코 가둘 수 없다. 특조위 활동기간 강제 종료를 통해 일시적으로 진실규명을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희망하는 세월호 특조위 선장이 있고, 이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이 있는 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정일 시민기자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