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 넷째 날,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주변 사람들과 언제 비가 쏟아져도 결국은 비가 쏟아지겠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침 8시 30분 공주 한옥마을을 출발하여 낮 12시쯤 세종시 소정면 사무소 앞에 도착할 때까지는 용캐도 비를 잘 피해 다녔습니다.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는 오전 10시쯤 첫 번째 휴식장소였던 정안초등학교에 도착하였을 때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이 먹구름으로 뒤덮였습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들은 모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실무자들에게 맡기고, 무전기는 비닐로 꽁꽁싸맸습니다. 비가 쏟아져도 라이딩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다음 구간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휴식지인 소정면 사무소까지 갈 때도 다행히 비가 쏟아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였다가도 잠시 후엔 또 환하게 하늘이 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더군요. 그러다가 소정면 사무소 앞 길가에 자전거를 주차시키고 간식을 나눠주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워낙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기도 하였고, 급하게 주변을 둘러봐도 어디 마땅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간식으로 받은 사과 주스와 에너지바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데, 온몸으로 흠뻑 비를 맞으며 간식을 먹고 있는 자신이 약간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더군요. 하지만 더위에 지쳐있던 아이들은 비가 쏟아지자 강아지처럼 소리를 지르고 들떠서 즐거워하였습니다.
쉽게 잦아들지 않을 굵은 빗줄기를 계속 맞고 있을 수 없어 길 건너 식당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다행히 식당 처마가 길게 나와 있어 50여 명이 비를 피하기에 좁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처마 밑에 처량하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방송차에서 매일매일 아이들과 연습하던 플래시몹 음악을 틀어주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니 어슬어슬 한기가 들기 시작할 때였지요. 실무자들이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들에게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플래시몹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평소엔 그렇게 플래시몹 연습을 싫어하던 아이들이 모두 벌떡 일어나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율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비를 맞고 축구를 하거나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을 텐데요. 처음에 비를 맞을 때는 몸이 움츠러들지만 온몸이 젖을 만큼 비를 맞고 나면 빗속으로 뛰어들어 미친 듯이 뛰어다니게 되지요. 자전거 라이딩을 하다가 비를 맞은 아이들이 딱 그랬습니다.
오르막보다 힘든 폭우...우린 춤추고 즐겼다
어차피 속옷까지 모두 비에 젖고 나니 더 이상 비를 피할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모두 처마 밑에서 벌떡 일어나 음악에 맞춰 플래시몹 율동을 따라했습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두 번을 반복해서 춤을 추고 나니 한기가 가시기 시작하였고, 굵었던 빗줄기도 조금씩 가늘어졌습니다.
넷째 날은 라이딩 구간이 길지 않았습니다만, 오후 내내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았고 중간중간 공사 구간이 많아서도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종시를 지나 천안시로 진입할 무렵부터는 도로에 차량이 많아져서 라이딩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습니다. 셋째 날보다 라이딩 거리가 17km나 짧았는데도 총 주행 시간은 오히려 1시간 정도 늘어난 것입니다.
공주 - 세종 - 천안 - 평택까지 달리는 동안 차령고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오르막 구간이 있었지만, 그리 힘든 구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수도권으로 갈수록 도로가 복잡하고 차량 정체가 심하여 가다서다 하면서 흐름이 자주 끊겨서 힘들었습니다.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다행히 점심 식사 예약은 천안 축구센터 구내식당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오전 라이딩을 하면서 흠뻑 젖은 몸으로 비를 맞으며 노천에서 식사를 하였다면 정말 서글펐을텐데, 준비팀에서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예약을 해두었더군요.
폭우를 뚫고 자전거 라이딩...잊을 수 없는 추억 될 것
천안 축구센터에서 따뜻한 미역국과 돼지 두루치기 등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축구센터에서 비를 피하며 1시간 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대략 24km를 달려 평택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았던 오전에 비하여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비 때문에 노면이 미끄러워 다른 날보다 훨씬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고, 천안 이북으로 올라갈수록 도로가 복잡해진 탓도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힘든 대신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새긴 날이기도 합니다. 언제 또 이렇게 폭우를 뚫고 자전거 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언제 또 비가 쏟아지는 날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춤을 추고 뛰어 볼 날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흠뻑 비를 맞으며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물도 불처럼 주술적인 효과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를 흠뻑 맞은 아이들이 마치 무당처럼 신명나게 몸을 흔들고 춤을 추었기 때문입니다. 폭우를 맞아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마치 춤으로 비를 물리칠 것처럼 주술적인 몸짓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평택 숙소까지 사고 없이 무사히 라이딩을 마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택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넷째 날 저녁 시간은 내일 세월호 친구들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보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 나누기, 노란색 바람개비 만들기를 하면서 먼저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섯째 날은 평택에서 안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세월호 친구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안산 단원고 교실과 합동 분향소 방문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