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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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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잠화 곱게 피던 날.

20층 빌딩 그늘 아래 옥잠화가 웃음을 머금던 날, 사연 많은 동갑내기가 새로 입사했습니다. 선배가 불러서 갔더니 "데리고 다니며 잘 가르치라"고 합니다. "예"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지요. 선배님의 고명하신 말씀을 어기기 어려워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열과 성을 다해서 가르쳐줍니다. 제일 먼저 빌딩 뒤편 야생화가 피어있는 작은 동산에 갔습니다.

우리는 찌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옥잠화 앞에 섰습니다. 저는 신입 경비원에게 우선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향기가 달달하니 참 좋다"고 합니다. 꽃이름이 뭔지 아냐고 물어보니 모른답니다. 옥잠화라는 꽃이라고 가르쳐줬습니다. 산도라지는 알 터이니 설명이 필요 없고, 산책로 따라서 피어 있는 꽃은 비비추이며, 삐죽삐죽 난처럼 올라온 풀은 붓꽃이라고 자상하게 가르쳐줬습니다. 그리고 삐죽하게 올라온 보라색 꽃은 맥문동이라고도 알려준 다음 "오늘 교육 끝!"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위대하고 훌륭하신 선배 하나가 저를 불러 세웁니다. "일 하면서 주의사항 일러주랬더니 기껏 데리고 다니면서 꽃구경 시켜줬냐"면서 "내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리냐"고 합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위아래로 훑어봅니다.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나 잡아 잡수"라고 답했습니다.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뭘 잘못했는지 아니까요.

경비원 조상연씨, 옥잠화 곱게 피던 날, 크게 경 칠뻔 했습니다.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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