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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어스름이 깔려오던 시간,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든 할아버지 한 분이 가게로 들어오셨다.

"여기 차 파는 곳이요? 커피 파는 곳이요?"

퉁명스러운 말투로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지신다. 커피를 파는 곳이라 알려드리고 멋쩍게 웃으니 커피 한 잔에 얼마인지 또 물으신다.

"2500원짜리부터 있어요."
"커피 맛이 그게 그거지. 제일 싼 걸로 주시오!"

 커피엔 정답이 없다.
커피엔 정답이 없다. ⓒ pexels

잠시 후 아메리카노 한 잔과 시럽을 들고 조심스레 할아버지의 테이블 앞에 놓았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몇 모금 들이키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한 말씀 하신다.

"커피 맛이 안 나네. 입에 딱 대면 커피 맛이 나야지. 이건 뭐…."

나름대로 정성들여 만든 커피가 할아버지 앞에서 별 볼 일 없는 커피가 돼 버렸다. 옆집 칼국수 가게로 달려가 잽싸게 커피믹스 하나를 빌려왔다. 커피믹스를 잔에 붓고 일명 '다방커피'를 만들어 다시 할아버지 앞에 놓았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그제야 밝아진다.

"이거네. 이제 커피 맛이 나네. 고맙소."

5년 전 주택가 안쪽에 자그마한 커피 가게를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있었던 일이다. 원두가 가진 맛을 제대로 살려 최상의 맛을 표현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생두를 볶고 정성껏 커피를 추출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의 입맛엔 '커피 맛도 안 나는 음료' 정도에 불과했다. 믹스커피가 최고라 믿는 사람에게 더 향긋하고 맛있는 커피를 맛보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가게를 열었다. 초보 로스터(Roaster, 커피를 볶는 사람)에게 할아버지의 방문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졌다.

'커피엔 정답이 없다'는 말이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그후 주문을 받을 때에는 늘 가장 먼저 손님의 커피 취향을 확인한다. 손님의 취향에 꼭 맞는 특별한 커피를 만들고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좋은 커피, 맛있는 커피는 손님의 마음을 읽는 눈과 정성을 다하는 손에 있다고 믿어서다.

가끔 커피를 만드는 일이 귀찮게 느껴질 때, 난 그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손님의 커피 한 잔에 내 마음을 모두 담았나?'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선종님은 '푸드라이터 1기'로 '커피볶는집올레'를 운영합니다. 이 기사는 '데일리 푸드앤메드'(www.foodnmed.com)에도 실렸습니다.



#푸드앤메드#박선종#커피#로스터#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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