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들어오자마자 피곤하다며 더위 속에 떨어져 잔다. 쯧쯧쯧, 혀를 차다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허, 자그맣게 코까지 골고 있다. 입 안에서 단내가 굴러다니는 듯하다. 이런 모습은 오랜만에 본다.
좋은 꼴은 보여주지 않고 코까지 고는 게 그리 예쁘지 않다. 휴일임에도 집안에 쳐 박혀 종일토록 기다리고 있었건만 무얼 했는지는 몰라도 나갔다 들어오더니 오자마자 자는 꼬락서니가 마땅치 않고 밉다.
TV를 쳐다보다가 그것도 무료해 다시 아내의 자는 얼굴을 쳐다본다. 얼굴이…… 세상에 쭈글쭈글하다. 완전히 할머니다. 가로 주름과 세로 주름이 만나는 볼은 사뭇 거칠다. 거참, 볼 끝에다 칼도 갈게 생겼네. 거칠게 밀어보지만 반응이 없다. 늙었다.
어차피 쳐다보는 나도 늙은 몸이니 피장파장이다. 그래. 어디서 무얼 하다 온 것일까. 정말 몸이 힘들 정도로 거친 일을 하고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미안한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 고생하고 온 사람에게 이러구러 언짢음이라니. 쯧쯧쯧, 마음으로 내게 한 마디 건넨다.
사실 아내는 그동안 많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에 착하고 공부 잘하고 잘생기고 말 잘 듣고 하는 아이들이 어디 있으랴만, 그 중 우리 아이들은 조금 뒤쳐진 게 사실이었다. 그 책임의 반은 분명 내게 있을 것이다.
그러니 코 좀 곤다고 타박해서는 아니 된다.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어도 다시 취직이라는 어마어마한 괴물을 만나 시련을 겪었으니 그 또한 아내 가슴을 훑었음이 분명하다. 그것도 반은 내 책임이다.
본인은 또 어떤가. 직장에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늘 한 데로만 돌았고 승진도 늦었다. 그러니 마음고생도 있었을 것이고, 더러 부끄러운 경우도 당했을 것이다. 거기서도 내가 자유로울 수 없다.
저 얼마간의 주름살은 나도 함께 그린 셈이다. 또 있다. 20년을 고부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좋은 분이었다고 해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것이 분명하다. 돌아가시기까지 어머니의 병수발도 아내가 책임졌으니 그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젊어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가. 늦게까지 퍼 마시고 한밤중에 귀가해서도 남자라는 이유로 큰 소리를 많이도 쳤다. 특히 12시가 넘어서도 꼭 밥을 챙겨 먹는다고 소란을 피웠다. 아내가 다 큰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할 때면 나는 슬쩍 돌아앉는다.
그런 사연이 있는지라 얼굴이 쪼그라지고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큰 소리까지 칠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의 보증을 서 큰돈을 날렸을 뿐 아니라, 주식을 사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를 만들었으니 그 또한 죄가 아닐 수 없다.
삶의 긴 터널을 그렇게 지나 왔음에도 온 몸이 동글둥글해졌다. 살을 빼지 못한 아내에게 예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남긴 밥이 아깝다고 꾸역꾸역 먹어 치운다. 그 모양이 낯설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밥 한 톨이라도 흘리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던 말씀을 떠올리니 김치냄새가 몸에 밴 것쯤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아내가 그토록 술을 좋아할 줄이야. 그럼에도 아내는 이제껏 술을 마시지 않고 내 술국만 끓여왔다니. 아내의 늙은 모습을 들여다보며 이제 내가 술국을 끓이기로 마음먹는다.
늙은 아내들에게는 만월(滿月)이 담겨 있다. 늙은 여자들에게는 세상의 온갖 풍상이 담겨 있다. 희로애락이 녹아 있고 인내와 헌신이 바위처럼 단단하다. 물처럼 흐르는 사랑은 끊임없이 아래로 흘러 그들의 자식 사랑은 쇠막대처럼 튼튼하다.
그들의 가슴에는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태워 만든 삶의 분투(奮鬪)가 넘친다. 그러니 어찌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으리오. 문득 늙은 여자들의 정념이 궁금하다. 언젠가의 그리움이나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의 사랑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어디에 정념을 숨기고 살까? 그들의 은신처가 참으로 궁금하다. 그들이 밝히는 삶의 등불과 거기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