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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의 FPS(1인칭 시점 슈팅) 게임 '서든어택'은 잘 알려졌듯 단순한 시스템이다. 군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팀을 나누고 서로를 '쏴 죽이는' 것이다. 고스란히 공개되는 '킬'(상대팀 처치)보다 '데스'(본인 캐릭터 사망) 수치가 높으면 채팅창에서 상대에 조롱당하고 같은 팀에게도 욕을 먹기에 십상이다. 게임이란 잘하지 못하면 재밌을 수가 없다. 반면 PC방 점유율에서 부동의 절대 강자였던 롤(LOL)의 아성을 무너뜨린 '블리자드'의 '오버워치'(지난 5월 발매) 성공에 대한 게임 업계의 진단은 다른 게임에 비해 더 다양하다.

거점 수비/점령 장르와 FPS 장르의 결합, 스피디한 게임 진행, 선택의 폭이 넓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 세련된 그래픽, 낮은 진입 장벽 등. 그러나 <아이즈> 위근우 기자는 "모든 훌륭한 콘텐츠가 그러하듯, 오버워치는 단순히 장점들의 총합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장점들이 정확히 무엇으로 구체화되었느냐다"라고 지적하며(☞관련 기사),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FPS 게임이 하수의 공을 평균치와 비교해 마이너스로 집계한다면, 오버워치는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한 사람 몫이라는 것을 인정해준다. 이 성취는 게임 세계에 대한 소속감과 일체감을 높여준다. 나도 'WE ARE THE OVERWATCH'라는 구호의 일원이라는 감정. 이것이야말로 그 옛날 전자오락실에서부터 이어져 온 게임의 가장 중요한 판타지다."

 오버워치의 개성 있는 특수 능력을 가진 영웅들. 2016년 8월 12일 현재 22명이다.
오버워치의 개성 있는 특수 능력을 가진 영웅들. 2016년 8월 12일 현재 22명이다. ⓒ 블리자드

내가 위 기자의 비평에서 주목한 키워드는 바로 '인정'이다. 꼭 적을 많이 처치하지 않아도, 캐릭터 '라인하르트'를 선택해 방패로 팀원들의 피해를 많이 막아준다든가. '루시우'를 선택해 팀원들의 체력을 높여준다든가. 하다 못해 화물을 목표 장소까지 열심히 운송한다든가. 자신이 공동체에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자기효능감을 경험할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곳이 가상의 게임 세계이지만, 노곤한 현실을 잠시 잊고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 한 판 즐겁게 놀아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오락 본연의 임무"라고 위 기자는 옳게 지적한다. 실제로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 악셀 호네트 소장의 <인정투쟁>에 따르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 권리 부여, 연대 등의 인정을 주고받으며 자신감, 자존심, 자부심 등을 경험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기 캐릭터 메르시가 "인정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라는 대사를 한다든가, 수도사 젠야타가 "진정한 자아란 형체가 없는 법"이라고 한다든가. 깊이와 철학이 느껴지는 요소들은 게임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한 시나리오, 트레일러 영상, 단편 애니메이션, 웹툰에 공을 들이는 등 '덕질'을 하게 만드는 확장성까지 갖고 있다. 한국 게임 업계도 "오락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문화를 완성하는 건 게임을 소비하는 게이머들의 몫이다. 그리고 게임 세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직 불완전한 해방의 공간일 수도 있다.

게임하는데 왜 자꾸 '여자냐'고 물어볼까요

 오버워치 트레일러 영상 중, 캐릭터 트레이서의 모습.
오버워치 트레일러 영상 중, 캐릭터 트레이서의 모습. ⓒ 블리자드

아무리 게임 자체가 잘 만들어졌어도 게이머들 선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게임 문화를 사회적 맥락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오버워치 게이머 중 여성 게이머, 혹은 여성 게이머와 자주 그룹 플레이를 해온 남성 게이머들을 수소문해 SNS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영씨는 오버워치를 '오픈베타'(시험운영) 때부터 플레이해온 레벨 193의 게이머다.

하영씨는 캐릭터 중 루시우를 자주 픽(선택)한다. 그런데 하영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꾸 '너 여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피로감을 느낀다. 가령 어느 날 팀원 중 누군가가 대뜸 "너 여자지? 루시우 칼선픽(빠르게 선택)하는 애들 다 여자임"이라고 묻는 식이다.

하영씨는 "남자들은 '너 남자지? ~하는 애들 다 남자임'이라는 말을 듣지 않죠? 게이머 중 남성이 많은가와 상관없이 '얘도 당연히 남자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상대가 여자라고 생각되면 밑도 끝도 없이 무례해지니 게임 세계조차 남성 중심적이라고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은 하영씨만 겪는 건 아니다. 지현(가명)씨는 남성 게이머다. 지현씨는 그룹 게임 중 자신의 지인에게 꼭 여자인지 아닌지 확인하거나, 팀이 불리하면 책임을 "여자"에게 몰아가는 사람들을 매일 한 명씩은 만난다. 그는 "일상에 여성혐오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직빵'으로 알려면 여성 게이머와 그룹으로 게임 해보면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주연(가명)씨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주연씨는 "이기면 아무 말 안 하는데 조금이라도 판세가 기울면 대뜸 저보고 "야, 거기 여자!"부터 시작해서 무례하게 굴어요"라고 말했다. 보이스 채팅을 꺼도 집요하게 닉네임을 보고 "여자인데 어떻게 65점이냐, 여왕벌 노릇해 올라왔느냐"고 욕하는 경우도 겪었다. 주연씨는 "게임을 좋아해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여지없이 겪는, 하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호네트는 <인정투쟁>에서 사람들이 인정을 주고받는 방식을 여러 유형으로 나눴는데, 그중 하나가 '동등성 인정'이다. 동등성 인정이란 서로가 동등한 인격체임을 존중하는 것이다. 여자라 인정받지 못 하고 차별받는 일이 게임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심지어 현실의 나와 다른 나로 태어나고 "오락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게임 세계조차 "피로하다"고 느끼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한다. 이들은 그냥 게임을 하고 싶을 뿐이다.


#오버워치#블리자드#라인하르트#루시우#트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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