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성교육에 소극적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인성교육'을 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됩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공부벌레'같이 키우라고 선동합니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중.고까지 13~15년을 공부벌레로 살아온 아이들이 결국 '버러지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중략)'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요즘은 '개처럼 공부해야 정승 된다'는 말로 바뀌었다고 하지요. 아무리 우스갯소리라지만 사람이 개처럼 행동해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개처럼 공부하면 정승이 아니라 짐승이 된다.' (본문 23)<인성이 실력이다> 저자 조벽 교수가 말한 이 이야기는 조금의 과장도 들어가 있지 않다. 뉴스를 통해 이미 우리는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차별을 어른들이 만들고, 아이들도 똑같이 그런 차별을 배우면서 차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사례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흔한 사례' 중 하나다.
인성 교육의 책임은 학교와 아이 당사자에 있는 게 아니다. 아이 주변에서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는 모든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다. 아이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 책임지겠다는 성숙한 자세야말로 바른 인성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출발이다.
평소 우리 학교 교육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조벽 교수의 <인성이 실력이다>를 굉장히 집중하면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조벽 교수가 말하는 문제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했고, 그가 제시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면서 아이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인성 교육은 국영수사과 과목처럼 학원과 외부에 의존하는 또 다른 사교육이 되어버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성 평가가 들어간다는 말에 인성평가를 대비하기 위한 학원이 생겼고, 많은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지금 한국은 '모든 게 시험'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청소년 세대를 곱지 않게 보는 이유는 아이들이 공부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세대 때는 먹고 살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했지만, 지금 청소년 세대는 그때와 달리하고 싶은 일을 찾아 꿈을 찾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래 책의 한 부분을 읽어보자.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 1만 5천 불에 도달한 때가 2004년입니다. 이를 전후해 태어난 아이들이 요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입니다. 여기에 상당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른들은 인격 형성기를 전부 1만 5천 불 이하에서 보냈기 때문에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1만 5천 불 이상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줄수록 또 학습의 목마름을 채워줄수록 아이들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온종일 공부를 시키면서 여전히 "먹고는 살아야지"라고 말합니다. 예전에 먹지 못하고 굶어 죽어가던 사람을 본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나 봅니다.꿈에 도전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기를 강요하면서 "꿈 깨. 현실을 직시해"라고 야단칩니다. 어른들은 아직도 좋으나 궂으나 은퇴할 때까지 찍소리 말고 붙어 있어야 했던 평생직장 시대라고 착각하고 있나 봅니다. 대졸 신입사원 10명 가운데 3명이나 1년 이내에 스스로 퇴사하는 현상이 이미 오늘날의 현실인줄 모르고 있나 봅니다.(본문 37)이 부분을 읽어보면 어른과 아이들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이렇게 큰 괴리가 있으니 소통이 잘 안 되고,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문제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상황이 달라진 것을 이해하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버럭 고함만 지르며 통제만 한다는 점이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사자가 20대라면, 분명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경험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 우리 사회가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누어지면서 먹고 살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라고 해도, 거리에 쫓겨나서 금방 굶어 죽는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다르다는 걸 모르면, 절대 좁혀질 수가 없다.
더욱이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어른과 갈등을 겪는 일이 너무 많다. 최근 이혼율은 급격히 치솟고 있고, 가정 파괴와 대화가 단절된 가정이 늘어나면서 집이 애정과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만 자는 '하숙집'에 불과한 장소가 되어버리고 있다. 과연 이게 정상일까?
가정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안전하고 편안하고 푸근한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가정이 아이에게 하숙집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정이 삭막한 사막과 같습니다. 삭막한 사막에서 행복꽃이 필 리 만무하지요. 그리고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성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성공하고 행복을 얻을 희망이 없다면 무엇을 위해 참되게 살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남을 배려해야 하나요. 그래서 세상에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했습니다. 막 살아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본문 169)아이들과 어른이 잦은 충돌은 아이들의 행동을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것에 이유가 있다. 나는 이번에 <인성이 실력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벽 교수가 말하는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라'라는 14장을 읽으면서 굉장히 놀랐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딴짓하고, 소란 피우고, 장난치고, 말대꾸하고, 심지어는 교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학생들을 보면 화가 절로 납니다. 그들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미래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야단치고 싶어집니다. 동시에 우리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지겨움, 불안감, 우울한, 분노와 절망감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어쩐지 학생들이 불쌍하고, 안쓰러워 보여 야단보다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같은 아이를 보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는지 감정을 보는지에 따라 우리의 반응은 완전히 반대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반응은 우리의 시각에 따라 이토록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본문 172)지금 우리 교육 현장에서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감정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선생님은 행정 업무가 많아서 일일이 한 아이마다 관심을 기울여서 볼 시간이 없고, 아이의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빠서 학원에 보내면서 '해야 할 일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를 괴롭힐 뿐이다.
"게임 하지 마! 내가 누구 때문에 돈 벌면서 이 고생을 하는데!? 이게 다 너 잘 먹고 잘살게 하려고 하기 위해서야!" 같은 말을 하면서 온종일 아이에게 지적하고, 조언하고, 경고만 한다. 아직도 우리 한국은 아이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소유물로 다루면서 아이들의 감정을 무시해버리는 거다. 조벽 교수는 책에서 이런 모습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아이들을 마치 감정이 없는 기계, 또는 감정을 무시해도 되는 동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왕따 당하는 친구의 괴로움을 공감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는 후배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흉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훗날 관심 병사나 사회부적응자가 큰 사고를 치면 "세상이 어쩌다 이토록 흉측해졌나?"라고 어리둥절해합니다. 군에서는 사고 지역에서 허둥지둥 해결책을 강구합니다. 가히 각주구검이라 할 만합니다. (본문 172)아이의 감정을 보는 일은 올바른 인성 교육만 아니라 아이와 공감하는 데에 무척 중요하다. 감정을 보기 위해서는 아이를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여기는 게 아니라 존중해줘야 하는 같은 사람으로서 보아야 한다. 인성 교육을 한다면서 계속 감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강요하는 건 절대 옳은 행동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성 교육을 해야 할까? <인성이 실력이다>를 통해 조벽 교수는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동시에 실수와 실패를 통해 스스로 배워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처럼 부모님이 앞장서서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며 스스로 경험해야 하는 일을 앗아가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인성교육은 아이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시답지 않은 규칙 몇 개를 추가해서 대책이라고 말하는 정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 교육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 함께 실천해야 하는 공동체 교육이다. 오늘 우리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 섞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조벽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외면한 불편한 진실, 아이의 어떤 모습을 우리가 보아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낱 대학생에 불과하지만, 사교육과 공교육을 지나쳐오며 많은 사건 사고를 직접 겪기도 한 나는 이 책이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 도서가 되리라 믿는다.
부디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인간성이 뒤로 밀리는 교육이 이제는 제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실력이 없으면 인성이라도 좋아야지.' 같은 끔찍한 말이 통용되지 않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노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