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사물도, 현상도, 언어도, 번들거리는 앞모습보다 낡고 지친 뒷모습에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간다. 그래서 늘 멈칫거리기 일쑤다. 인간사 그 무엇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생각에 늘 주저한다.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에 대한 갈망이 늘 나를 허기지게 하고 주눅들게 한다.
정신이 어질할 정도로 화려한 베르사유에서 하필 궁전 뒤쪽의 낡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페인트가 벗겨진 외벽, 녹슨 창틀과 색 바랜 벽돌... 화려하고 거대한 궁전의 낡고 지친 뒷모습. 자그마치 2300개나 되는 방과 홀에서 호화로운 연회와 영욕의 역사가 펼쳐지는 동안에도 저 뒤 구석에선 조금씩 지치고 낡아가는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2층 레스토랑의 아늑한 창가에 앉아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차분하고 우아한 실내 장식, 감미로운 음악, 창문으로 스며드는 아직은 따뜻한 저녁 햇살, 간간이 들려오는 다른 테이블의 웃음소리, 그리고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궁전 뒷마당의 낡은 벽면.
실은 간단한 샌드위치로 요기만 할 생각이었다. 밖에 서 있는 메뉴판에는 분명 7~8유로 선에서 먹을 만한 메뉴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샌드위치가 동이 나서 클럽샌드위치만 가능하단다. '클럽샌드위치라면 20유로는 족히 넘어갈 텐데' 하며 일단 들어갔다. 아담한 분위기의 방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창가의 한 자리를 안내받아 앉았다.
테이블 사이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웨이터들은 하얀 악보 위에 까만 음표들처럼 경쾌하다. 마치 스타카토 하나씩은 머리에 단 것마냥 통통거린다.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모습은 아무리 지켜봐도 좀처럼 지루해지지 않는다. 하얀 셔츠에 까만 조끼, 반짝반짝 빗어 넘긴 말쑥한 헤어스타일, 입꼬리에 걸려 있는 한결같은 미소, 노련하고 세련된 몸동작, 손바닥 끝에서 춤을 추는 반짝이는 은쟁반.
클럽샌드위치와 연어 요리를 주문했다. 와인도 메독으로 하나 골랐다.
"그래요, 메독은 언제나 옳아요. 잘 골랐어요!" 웨이터 칭찬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정답을 맞춘 아이가 선생님 칭찬에 즐거워하듯. 베르사유까지 왔으면 이 정도 만찬은 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덥석 들었다. 나중에 보니 '언제나 옳은 메독' 반 병이 26유로나 했다. 그 덕에 79유로라는 거금으로 한 끼 식사를 하는, 계획에 없던 사치를 누려 버렸다. 기차역 앞 가게 가판에서 주문과 결제가 3분 만에 끝난 도시락을 호텔에 가져와 먹을 때랑은 분명 다른 맛이었으니 어쩌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밤늦도록 이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궁전은 이미 관람 시간이 끝나가고 이제 정원도 둘러봐야 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니 그새 황금빛 분가루라도 뿌려 놓은 것 마냥 오후의 햇살 아래 궁전이 빛나고 있었다.
베르사유는 궁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궁전보다도 정원에 더 감탄하게 된다. 마치 커다란 초록색 종이를 반을 접고 또 반을 접어 가위로 중간 중간 오려낸 후 조심스레 펼쳐 다양한 모양을 먼저 만들고, 그것들을 다시 수십 장 이어 붙여 끝도 없이 널어놓은 것 마냥, 정원의 기하학적 문양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자로 잰 듯 재단해 놓은 프랑스식 정원을 인위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완벽한 대칭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하지 않는가.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정원을 이렇게 반듯하게 관리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야 하는 걸까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이제는 귀족이나 이웃나라 귀빈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나라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이 들이닥치니, 이들을 위해 매일 꽃단장하고 서 있어야 하는 이 정원수들도 어지간히 피곤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남의 나라 옛날 왕이 썼던 궁전 앞뜰에서 참 별 걱정을 다한다.
사실 베르사유 정원은 '정원'이라 부르기엔 영 불편하다. 지평선 끝까지 아득히 펼쳐진 들판, 거대한 미로 같은 작은 숲들, 도열한 장병들처럼 서 있는 키 큰 나무들, 잘 다듬어진 화단과 정원수들, 중간 중간 자리한 크고 작은 연못과 분수들, 웬만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능가하는 수백 개의 조각상들, 심지어 배가 떠다니는 운하까지 있으니, 이건 도무지 '정원'이 아니다.
루이 14세뿐 아니라 나폴레옹 1세와 샤를 드골 대통령도 좋아해 머물렀다는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 루이 15세가 자신의 애첩을 위해 지었으나 이후 루이 16세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사했다는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 왕비의 촌락 등까지 모두 둘러보려면 시간을 꽤 잡아야 한다. 정원을 둘러보는 방법으로 꼬마기차(petit train)와 자전거 외에도 직접 운전하며 돌 수 있는 전동차와 보트까지 있으니 짐작할 만하다.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은 그가 살아온 환경과 시간과 사람들로 결정된다. 그것은 너무나 단단해서 심지어 자기 스스로도 무너뜨리거나 새롭게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정원 가운데 서 있자니 지평선 끝까지 풀과 물과 꽃과 나무들뿐이고, 뒤로는 거대한 궁전이 서 있는 것이, 마치 이곳이 세상의 중심인 것 같다. 여기서 태어났거나, 혹은 이리로 시집을 와 평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이라면, 이곳이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그리 살다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한 세기가 넘도록 절대 군주와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곳, 수십 년간 지속된 공사에 수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었고, 수천 명의 목숨이 고된 노동과 착취 속에 사라져야 했던 곳, 베르사유.
어둑해진 들판에 쓸쓸한 찬바람이 차곡차곡 차오른다. 정원 마당을 심란하게 서성인다. 시간이 한참 늦었는데 좀처럼 발길이 떼어지질 않는다. 모든 저물어가는 것들은 가련하다.
나오는 길에는 아침에 지나온 그 길을 고스란히 다시 밟았다. 정원을 나와 멀리서 돌아보니, 밤이 되어 불 밝힌 궁전이 낮보다 신비롭다. 아침보다 발걸음이 무겁다.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걸 어쩔 도리가 없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아침에는 없었던 할아버지 화가를 만났다. 파리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35유로란다. 에펠탑과 센 강이 그려진 유화를 한 점 샀다. 내일 몽마르트르를 갈 텐데 굳이 여기서 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선한 눈빛의 할아버지가 오래된 파레트와 낡은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서 있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베르사이유-샹띠에(Versailles-Chantiers) 역에서 올 때 탔던 기차를 다시 탔다. 한 손엔 아침에 궁전 가는 길에 앤티크 숍에서 산 팔십 년 전 밀레 화집이, 다른 한 손엔 방금 할아버지 화가가 그려 준 유화 한 점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