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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봉산 곰배령은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850여종의 야생화들이 자생하고 있다. 마치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곰배령은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않고 하늘이 키워준 들꽃들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점봉산 곰배령은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850여종의 야생화들이 자생하고 있다. 마치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곰배령은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않고 하늘이 키워준 들꽃들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 최오균


최후의 원시림 점봉산 녹색터널

 

별빛 쏟아지는 하늘아래 첫동네 설피마을에서 단잠을 잤다. 맑은 공기,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천연에어컨 속에서 한 번도 깨지 않고 그야말로 꿀잠을 잤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필요 없고 전기료 폭탄도 걱정이 없는 곳. 그래서인지 꿈도 꾸지 않았다. 으아~ 한껏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니 컨디션이 그만이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설피마을의 공기처럼 머리가 맑아진다.


창밖을 내다보니 범의꼬리가 부스스 눈을 부비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밖으로 나갔다. 서늘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와 닿는다. 서울은 찜통더위 속인데, 이곳은 한기마저 느끼게 한다! 산기슭에는 안개가 무대를 장식하는 드라이아이스처럼 환상적으로 걸려있다. 안개 속에 나무들이 갖가지 실루엣을 연출하며 제각기 모노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계곡에서는 졸졸졸 맑은 물이 흘러내리며 연주를 한다. 


 안개낀 설피마을
안개낀 설피마을 ⓒ 최오균


안개 속을 무작정 걸었다. 마치 구름을 타고 하늘 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나무들이 온 몸으로 안개를 들여 마신다. 나도 한그루 나무가 되어 안개를 마신다. 물봉선도 동자꽃도 둥근이질풀도 안개를 마신다. 모두가 안개에 취하고 만다. 안개가 사라지면 땡볕이 뜨겠지. 그래, 안개가 사라지기 전에 곰배령으로 가자.


그러나 곰배령은 9시가 되어야만 인간의 입산을 허락한다. 점봉산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다. 우리나라 최후의 원시림을 보호하기 위해 곰배령은 1일 탐방인원을 30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입장시간도 오전 9시, 10시, 11시로 국한하고 있다. 정오 12시까지 강선마을 중간초소에 도착해야 곰배령 입산이 가능하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는 곰배령 정상을 시작으로 모두 하산조치를 한다.


산에 오르자고 하면 질색을 하는 경이를 닦달하여 곰배령으로 향했다. "아빠, 여기도 시원하고 좋은데 그 높은 데를 왜 올라가?" "글쎄, 안 가면 두고두고 후회 할 걸." 8시 반에 곰배령 생태관리센터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당연히 곰배령은 미리 예약을 한 사람만 입산이 가능하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입산허가증을 받았다. 어렵게 입산증을 받고 나니 마치 천국으로 가는 허가증을 받은 느낌이 든다. 노란 입산허가증을 가슴에 달고 탐방로로 향했다.


초입부터 녹색터널이 이어진다. 길은 완만하다. 녹색터널 옆에는 맑은 계곡물이 졸졸졸 속삭이며 흘러내린다. 나무가 많은 숲은 스펀지와 같다. 나무들은 빗물을 머금었다가 사계절 맑은 물을 천천히 보내준다. 그래서 아무리 가물어도 점봉산 계곡은 마르는 법이 없다. 서늘한 기운이 계곡에서 솟구친다.


 활엽수가 녹색터널을 이루고 있는 곰배령 가는 길은 강선마을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활엽수가 녹색터널을 이루고 있는 곰배령 가는 길은 강선마을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 최오균


어찌 그뿐인가? 숲은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공급해준다. 숲은 공해에 찌든 인간들을 산소로 목욕을 시켜준다. 피톤치드로 자연소독을 시켜준다. 무더위에 삼림욕만큼 좋은 목욕이 어디에 있으랴. 치유의 숲이다! 숲을 걷는 순간 인간은 숲으로부터 심신의 치유를 받는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펀펀한 숲길이다. 한적하고 호젓하다. 작은 폭포들이 조근조근 흘러내린다. 탐방로 입구에서 강선마을까지는 1.7km. 싱그러운 녹색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금방 강선마을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길을 꼽고 싶다.


 강선마을 가는 길에 세줄기 폭포가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강선마을 가는 길에 세줄기 폭포가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 최오균


"아빠, 이 숲길은 딱 내 스타일이네! 이런 길인 줄 미처 몰랐어요."  

"오길 참 잘했지?"

"나중에 꼭 다시 오고 싶어요!"

"그래, 또 오자구나."


하늘이 내려준 들꽃세상, 길이 보전되어야

강선마을은 예전에는 화전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강선(降仙)'이란 이름은 곰배령 풍광에 반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화전민은 자취를 감추고 강선마을 끝 곰배령 초소가 있는 곳까지 띄엄띄엄 펜션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최후의 원시림을 고이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 안에 음식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생태탐방로 입구로 물러서야 한다.


곰배령끝집이란 간판을 지나니 숲길은 다소 경사가 진 오솔길로 변한다. 무릎이 좋지 않은 아내와 아이들은 곰배령끝집에 남고 나 홀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작교처럼 생긴 나무다리를 건너니 초소에서 입산증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초소를 지나면 오솔길 양 옆에 굵은 동아줄로 경계선을 쳐 놓았다. 


 곰배령 끝집을 지나가면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 곰배령으로 올라간다.
곰배령 끝집을 지나가면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 곰배령으로 올라간다. ⓒ 최오균


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 세상이다. 길옆으로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 여전히 동행을 한다. 계곡은 곰배령 정상 밑자락까지 이어진다. 고요한 숲길에 가끔 바람이 우우우 소리를 지르면 푸른 나뭇잎이 수많은 부채가 되어 시원한 바람을 선물한다. 자연풍이다! 가느다란 폭포가 푸른 이끼를 타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신선이 따로 없다. 이 길을 걷는 자 모두 신선이 되고 만다.


 중간중간에 통나무를 잘라 만든 쉼터가 있다.
중간중간에 통나무를 잘라 만든 쉼터가 있다. ⓒ 최오균
 폭포
폭포 ⓒ 최오균


길섶에는 가끔씩 동자꽃, 짚신나물, 참취, 노루오줌, 까치수영 등이 고개를 내민다. 포자로 번식을 하는 속새, 관중 등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양치식물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커다란 부채꼴을 그리며 무성하게 늘어선 관중군락은 마치 쥐라기 공원을 연상케 한다.


 곰배령 가는 길에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양치식물 관중은 2억년 전 고생대부터 살았던 식물이다.
곰배령 가는 길에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양치식물 관중은 2억년 전 고생대부터 살았던 식물이다. ⓒ 최오균

양치류는 공룡이 번성했던 중생대 이전 약 2억 년 이전부터 살았던 고생대 식물이다. 한겨울 눈 속에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속새는 4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던 식물이다. 점봉산 원시림에서 볼 수 있는 귀한 식물이다. 무수히 돋아난 속새를 바라보며 속세를 잊는다.

     

'속새에 물방울에/숨은 눈빛 황홀히 받아/풀숲 반짝이며 흐르는 꽃/…/그대 한눈팔다 들어간 길/…/마타리, 어수리, 궁궁이/ 그 뒤쪽 어딘가/ 자취 없이 흔들리던 꽃/그 꽃에 홀려 나는/곰배령 넘어 그대에게 간다.'(신대철 '곰배령 넘어-무슨 꽃'에서)


 곰배령 계곡에 자생하고 있는 속새는 4억년 전부터 살았던 양치식물으 ㅣ하나다.
곰배령 계곡에 자생하고 있는 속새는 4억년 전부터 살았던 양치식물으 ㅣ하나다. ⓒ 최오균


나는 꿈꾸는 시인처럼 곰배령을 오른다. 과연 '천상의 화원'으로 오르는 길답다. 갈수록 숲은 점점 깊어진다. 참나무와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당단풍 등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리고 하늘과 땅은 온통 초록바다. 탐방객들은 통나무를 잘라 만든 쉼터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한다. 간혹 멧돼지들이 땅을 후벼 파 놓은 곳도 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키 큰 활엽수들이 점점 줄어들고 야생화들이 점점 더 많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마지막 깔딱 고개를 넘어서자 이윽고 하늘이 열리고 야생화 천국이 펼쳐진다. 드디어 '천상의 화원'에 다다른 것이다. 


 아빠 곰이 벌렁 누워 배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곰배령
아빠 곰이 벌렁 누워 배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곰배령 ⓒ 최오균

  

퉁퉁한 아빠 곰이 벌렁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곰배령'이란 이름이 붙은 곰배령은 아빠 곰의 배처럼 펀펀하고 완만하다. 이 아빠 곰의 둔덕에 봄여름 가을 850여 종의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났다가 지곤 한다.


그런데 곰배령은 지금 의외로 둥근이질풀 천지다. 아빠 곰이 뭔가를 잘 못 먹어 이질에 걸렸을까? 이질에 걸렸을 때 이 풀을 달여 먹으면 낫는다고 해서 이질풀이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이질풀은 다섯 장의 연분홍 꽃잎이 유달리 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부챗살처럼 퍼져 있는 붉은 잎맥이 애틋하게만 보인다. 이질풀 사이사이에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동자꽃이 귀엽게만 보인다.


 곰배령에는 850여종의 야생화들이 봄여름 가을 야생화 천국을 이루고 있다. 위에서부터 둥근이질풀, 동자꽃, 여뀌, 참취, 짚신나물, 동자꽃군락
곰배령에는 850여종의 야생화들이 봄여름 가을 야생화 천국을 이루고 있다. 위에서부터 둥근이질풀, 동자꽃, 여뀌, 참취, 짚신나물, 동자꽃군락 ⓒ 최오균

노란 곰취가 시들어가고 있고, 흰색 참취는 아직 생생하게 피어 있다. 마타리가 거칠게 뻗어 있고, 수변에서 많이 자라는 여뀌도 눈에 띈다. 우거진 수풀 속에 엉클어진 짚신나물이 곡선을 그으며 피어있다. 짚신나물의 생명력은 질기다. 열매가 약초꾼의 짚신에 묻어 산지사방에 번식을 하는 끈질긴 식물이다.


곰배령은 하늘로 열린 '비밀의 화원'을 연상케 한다. 산꿩의 다리, 눈빛승마, 톱풀, 금마타리, 진범, 노루오줌.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풀숲에 숨어 있는 꽃들까지 보기 위해서는 아주 찬찬히 눈빛을 주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비밀의 화원을 연상케하는 곰배령 들꽃
비밀의 화원을 연상케하는 곰배령 들꽃 ⓒ 최오균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그래서 들꽃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유안진 '들꽃 언덕에서')


곰배령은 하늘이 내려준 들꽃세상이다. 하늘이 비를 내려주고, 햇빛을 비추어 주고,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어 천상의 화원을 만들어준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정상에 나무로 데크를 만들어 놓고 있다. 하늘의 뜻과 자연의 생리에 거슬리는 일이다. 데크가 바람의 통로를 방해하여 들꽃들이 자생하는데 방해를 하고 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천상의 화원인 곰배령을 보호해야 한다.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자 곰배령 정상에는 나무로 만든 데크를 설치해 놓고 있다. 이 데크가 바람의 통로를 방해하여 들꽃들이 자생하는데 방해를 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자 곰배령 정상에는 나무로 만든 데크를 설치해 놓고 있다. 이 데크가 바람의 통로를 방해하여 들꽃들이 자생하는데 방해를 하고 있다. ⓒ 최오균
 곰배령에 흉물스럽게 설치된 데크
곰배령에 흉물스럽게 설치된 데크 ⓒ 최오균


#천상의 화원 곰배령#곰배령#점봉산#강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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