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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생활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가공식품들은 육류를 비롯해 우유, 계란 등의 동물성 부산물들을 소량이라도 포함하는 게 거의 기본값처럼 굳어진지 오래다.
식생활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가공식품들은 육류를 비롯해 우유, 계란 등의 동물성 부산물들을 소량이라도 포함하는 게 거의 기본값처럼 굳어진지 오래다. ⓒ 하지율

지난 몇 년간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라면'입니다. 값이 싸고 열량이 높아 한 끼 때우기 좋아 자주 먹습니다. 그러나 여유만 있다면 이제는 그만 좀 나트륨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고기를 안 먹는 게 아니라 먹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서 자주 먹지는 못 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죠.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이런 저도 음식은 마음껏 못 먹어도 음식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평균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배울 때, 채식주의로 대표되는 음식 문화에 관한 논쟁은 응용윤리학의 고전적인 주제 중 하나였거든요. 논문을 쓸 때 채식주의 논쟁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후회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논쟁이 제대로 된 고생을 별로 안 해본 소시민, 엘리트들의 속 편하고 사치스럽고 초현실적인 고준담론처럼 느껴져 '나'의 문제, '지금 여기'의 문제로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육식이 나쁘다면 컵라면조차 먹어서는 안 되니까요. 물론 가끔 '채식 라면'을 들여놓는 슈퍼도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컵라면을 4개 합쳐 2990원에 파는 행사가 언제인지 고민할 만큼 절박한 이들에게 과연 선택권이 있느냐였지요. 도덕은 현실에서 출발해야 하고 사람들을 구속하는 경제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원이 재분배되고 사람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 후에, 육식 문화가 정말 나쁘다는 공감대가 모아지면 자연히 도태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식탁을 낯설게 하다

 사랑할까, 먹을까.
사랑할까, 먹을까. ⓒ pixabay

하지만 저는 그 당시 사실 외면의 오류라는 걸 범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외면의 오류란,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실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생존이 다급한 것보다 훨씬 동물들의 생존도 다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심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도축 실적'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도축된 닭은 1억 749만 2518마리, 돼지는 121만 9703마리에 이릅니다. 1년도 아닌 한 달 동안요.

이들이 치킨, 햄, 삼겹살, 그 밖에 음식들로 사람들의 밥상에 매일 오릅니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학살을 하고 또 방조하면서도 사람들이 놀라우리만치 무신경하다는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음식 문화에 속해 있다가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우연히 본 후 식탁이 낯설어졌고, 집 근처 치킨집을 지나며 새어 나오는 냄새를 맡을 때 먹고픈 욕구와 구역질이 동시에 생기며, 두 반응이 마치 힘겨루기를 하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잡식 동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어쩌면 길들여지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제가 구역질을 느낀 이유는 영화에서 고발하는 비위생적이고 잔혹한 공장식 대량 축산 현장을 봤기 때문이니까요. 평생에 걸쳐 돼지를 먹어왔지만 도시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들은, '돼지'에 대해 삽겹살이나 돼지 저금통 정도의 단편적인 이미지밖에 없을 겁니다.

'맥락'을 안 다음에도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조금은 궁금합니다. 이 영화의 '잡식 가족'들도 원래 돈가스와 치킨을 좋아했던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아빠입니다. 아빠는 평소에 야생 동물을 돌보는 수의사로 일합니다. 아빠는 가축화된 동물을 먹는 문제는 잡식 동물로 태어난 인간에게는 선택의 영역이지 옳고 그름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가 구제역으로 돼지들을 산 채로 묻는 살처분 현장과 비위생적이고 잔혹한 공장식 대량 축산 현장을 목격하고 서로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면서 가족의 식생활에 변화가 찾아오지요. 축산 현장의 참상은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의 김고운 편집위원이 잘 정리해놓은 글이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관련 기사: 인간만 평등하면 되나요?).

채식인과 채식주의자의 차이

물론 어떤 분들에게는 사람만큼 동물도 중요할 수 있다는 게 상식과 잘 맞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육식을 옹호하는 전통적 주장들은 대체로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동물은 이성적 능력이 없다, 도덕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자연의 섭리다 등의 이유들을 대 왔으니까요. 오해는 마세요. 저도 아직 어떤 확정적 진리를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동물을 구분 짓고 인간이 동물보다 중요하다는 논리가 정말 타당하고 건전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것이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과 다를 바 없는 '종차별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쨌든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들을 잠정적 진리로 받아들인 채 고민과 대화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을 뿐입니다.

동물해방론자, 동물권리론자, 동물복지론자 등이나 채식인들에게 종종 덧씌워지는 잘못된 편견과 불신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순전히 동물을 좋아하고 감정적인 동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주장할 것이라는 편견. 둘째, 채식인들은 주장과 실천이 자주 모순되므로 진정성이 없는 게 아니냐는 불신. 과연 정당한 것들일까요.

채식인 분류표(통념)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로부터 얻는 모든 것을 다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분류법은 참조만 하기를 바란다(이 분류법 말고도 더 많은 분류도 있다). 한편 국물 요리가 많은 한국의 경우  이런 분류법이 실정에 맞지 않아 비덩주의자(덩어리 고기는 거부하고 국물은 허용하는 사람)부터 준 채식인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채식인 분류표(통념)세상에 존재하는 동물로부터 얻는 모든 것을 다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분류법은 참조만 하기를 바란다(이 분류법 말고도 더 많은 분류도 있다). 한편 국물 요리가 많은 한국의 경우 이런 분류법이 실정에 맞지 않아 비덩주의자(덩어리 고기는 거부하고 국물은 허용하는 사람)부터 준 채식인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 하지율

우선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들은 나름 오랜 지적 전통을 갖습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약 2세기 반 전 영국 경험론과 공리주의로 이어지는 근대 철학 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1970년대에 출판된 선호공리주의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역시 감성에 호소하지 않아도 충분히 동물 해방을 주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지금은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로 불리고 있죠. 한편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채식하기 힘들고 회식 문화가 발달한 환경에서 신념을 지키는 건 쉽지 않죠. 불신은 채식이라는 '행위'와 채식주의라는 '신념'의 관계를 현재의 사회 구조라는 맥락 속에서 인식하지 못할 경우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변화든 첫걸음을 내딛는 게 중요하고 한 걸음씩 쌓여 변화가 오는 건데 말입니다. 우선 채식인과 채식주의자는 모두 영어로 '베지테리언(vegetarian)'이지만 엄밀하게는 구분해야 할 개념입니다. 채식은 행위고 채식인은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들 중 어떤 '신념'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건강이나 취향 때문에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채식주의(vegetarianism)라는 것은 일종의 신념입니다. 채식만이 '도덕적인' 식생활이라는 체계적인 신념이죠. 이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채식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어떤 채식주의자가 채식이 옳다고 평소에 사람들을 설득하면서도 해산물까지는 먹는 페스코-베지테리언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는 진정성이 없고 그의 채식이 옳다는 주장도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렸듯 채식주의자들이 처한 현재의 사회 구조에 주목해보면, 왜 당장은 신념과 실천이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모순(contradiction)이 아니라 괴리(gap)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비건까지 도달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들이 채식주의 신념까지 갖췄다면 완전한 실천적 채식주의자로 볼 수 있겠죠.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종종 이들만을 채식주의자의 이미지로 상정하고, 그 기준을 대입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위 그림 같은 다양한 단계별 실천들을 무시하고) 진정성이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때도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지금 채식주의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동물 해방>(피터 싱어 지음 /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 / 2만원)
<동물 해방>(피터 싱어 지음 /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 / 2만원) ⓒ 연암서가
정리를 해보면, 채식주의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일단 그 존재 의의를 인정한다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첫째,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둘째, 많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나의 작은 행동의 변화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셋째, 먹고 마신다는 원초적인 행위로부터 출발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

이 정도면, 채식주의에 관한 연재를 시작할 만한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이 연재는 총 3부에 걸쳐 진행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부터 <철학탐구>라는 국내 학술지에서는 두 명의 윤리학자가 채식주의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이 논쟁은 앞서 잠깐 소개해 드린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에 드러난 채식주의를 놓고 벌어진 논쟁인데요. 저는 여기에 채식주의 논쟁의 웬만한 핵심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1부에서는 이 논쟁을 체계적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편, 2부에서는 피터 싱어 말고도 동물에 관한 인식 변화를 주장하는 다양한 주장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가령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주장하는 톰 레간과 같은 사람들의 주장이나, 동물의 인지구조 등 인지과학 분야와 연관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몇 가지 책들도 소개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대량 축산 체계가 종말을 고해야만 인류가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등을 다시 읽어보고, 한국에서 채식인으로 살아가는데 어떤 한계가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있는지, 대안은 무엇인지 찾아볼 예정입니다. 제 나름의 결론이 무엇으로 날지는 아직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일단은 고기는 좀 덜먹어보려고 노력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육류를 먹는 사람)으로 살아볼까 합니다.


#채식#비건#피터 싱어#잡식가족의 딜레마#톰 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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