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탈모 한약 영향' 모발학회 의견 엇갈려SBS의 '한약 탈모' 보도 이후 강동경희대병원 심우영 교수가 "아이의 탈모 원인이 한약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인터뷰에서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기사: 한약 탈모 아이' 진료의사 "한약 원인 아닌 듯"). 대한모발학회는 지난달 30일 "한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올해 초까지 이 학회에서 회장을 역임했던 심 교수와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이처럼 양방 내에서도 의견이 정반대로 갈리는 이유는 탈모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원인 가운데 이번 '한약 탈모' 논란에서는 약인성(藥因性, 약으로 인한) 탈모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원형 탈모가 거론된다.
약인성 탈모는 며칠 사이에 급속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심 교수는 "두 아이 사례처럼 단기간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원인으로는 유전적 탈모 외엔 거론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대한모발학회도 약인성 탈모가 아니라는 것에는 공감한다. 보도된 세 아이의 탈모는 모두 면역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모근세포를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한모발학회의 의견이 심 교수와 갈리는 부분은 한약 성분이 '유전적인 감수성을 지닌 환자'에게서 자가면역질환을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본래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탈모를 일으키는 유전적 기질'이 한약의 영향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즉 심 교수와 대한모발학회는 아이들의 탈모가 유전적 소인 때문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만, 한약이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한약의 영향 여부는 완벽히 밝혀낼 수 없는 부분이기에 추정이 가능할 뿐, 원인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심 교수가 EBS <명의> 탈모 편에 출연해 설명한 바에 따르면, 급속하게 원형 탈모가 오며 전두탈모, 전신탈모로 이어질 수도 있는 급성탈모는 발생하는 기전을 아무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문제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아이의 탈모를 한방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나선 점이다. 이들은 현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어 해묵은 양∙한방 갈등이 재점화할 조짐도 보인다. 소청과의사회는 심 교수가 한약을 원인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을 두고 "문제를 일으킨 한의원 네트워크 대표원장과 동문"이라는 개인 이력도 문제 삼으며 "교수직은 물론 의사직 박탈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소청과의사회는 '한약 탈모' 사건을 '제2의 옥시사태'로 규정했다. 지난달 22일 성명서를 통해 "보건당국의 수수방관으로 이 땅에서 더 이상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귀중한 생명을 잃거나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심각한 폐질환에 걸리면 안 된다"며 "한약 복용 후 전신탈모가 발생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서명에 동참해달라"고 했다.
뿌리 깊은 양·한방갈등…핵심은 밥그릇 싸움
양·한방 의료계가 갈등해 온 역사는 뿌리 깊다. 원인은 진료 영역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 핵심으로 지목되어 왔다. 2005년 2월에는 보험급여 항목 1위를 차지하는 감기 진료를 놓고 '감기 싸움'을, 그 직전에는 'CT 싸움'을 벌였다.
서울행정법원은 2004년 12월 21일 한의사의 CT 사용이 위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현행 의료법상 의사나 한의사의 면허 범위와 관련한 의료행위 또는 한방 의료행위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며 "CT를 사용한 방사선 진단 행위에 대해 따로 면허 제도가 없고, CT를 사용한 한의사의 진단 행위를 금지한 규정도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양방과 한방으로 나뉜 우리 의료계의 패러다임을 깨는 것"이라며 "전국 의대, 전공의 등 모든 인력을 총동원해 강력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협회는 또 "방사선전문의가 아닌 한의사의 방사선 사진 판독은 무자격자에게 국민건강을 맡기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2005년 1월 31일 대한개원한의사협회가 '감기 워크숍'을 열면서 '우리 가족 감기는 한방으로',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는 내용의 포스터 400여 장을 돌리는 등 홍보에 나서자, 대한내과의사회는 '처방전 없이 한약을 복용하면 간염‧심장병‧위장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포스터 5000장을 전국 의원의 환자 대기실에 붙이는 등 한약 복용의 위험을 알리는 캠페인에 들어갔다.
내과의사회는 또 한약의 부작용 사례를 책자로 만들어 '한방의 비과학성'을 알릴 계획을 세웠고, 이런 캠페인에는 이비인후과와 소아과 의사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한의사협의회는 "한의사측 포스터는 한방 치료의 효과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지 양방을 비난하는 어떤 문구도 들어 있지 않은 반면 의사회 포스터는 한방을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며 한의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갈등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싸고 갈수록 격화했다. 임수흠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지난해 제39대 의협회장 출마 기자회견 당시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어떤 경우에도 허용할 수 없다"며 "항구적으로 한방 퇴출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올해 1월 12일 김필건 한의협 회장이 초음파골밀도측정기로 20대 남성의 발목 부위 골밀도를 측정하는 시연을 한 것에 대해 의협은 '오진'이라며 잇달아 반박에 나섰다.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이용한 오진으로 인해 잘못된 한약을 권할 수 있습니다. 거절할 자신 있으십니까?'라는 제목으로 '해석오류, 엉터리 진단, 잘못된 처방 등 한의사들의 치명적인 오진으로 건강도 해치고 큰 돈도 버릴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반복해 게시했다.
추무진 의협회장은 1월 20일 "한의협의 불법 공개시연은 진단 방법부터 결과 분석, 처치 내용 등 모든 과정이 잘못"이고 "과학적 근거에 따른 의학적 소견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한의사를 없애는 데 있다"며 "불법 한방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는 각각 '명예훼손'과 '의료법 위반'으로 상대방을 고소·고발했다.
언론의 단정적 보도가 불씨 키워'한약 탈모' 논란은 SBS가 8월에 아이 탈모의 원인이 한약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보도하면서 격렬해졌다.
한약 먹은 후 탈모된 아기…배상금은 300만원(8일) → '한약 먹은 후 탈모된 3살 아이' 보도 후 어떤 일이?(<취재파일> 9일) → 한약 먹고 탈모된 아이…병원은 거짓 공문(<한수진의 시사 전망대> 10일) → '소아 탈모' 더 있다…"모두 같은 한의원 다녀"'(21일)
위 기사 제목들은 모두 한약이 탈모의 원인인 것처럼 단정짓고 있다. 보도 내용을 봐도 마찬가지다. 심우영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처음 보도한 <푸드앤메드> 이문예 기자에게 "SBS 기자가 자신을 직접 인터뷰하고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SBS 측은 이에 대해 심 교수로부터 "한약 때문인지 아닌지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으며, 심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SBS 기자가 보도를) 일부러 뺀 것은 아니고 그에 대해 (SBS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 교수가 이 기자에게 "한약이 원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예닐곱 회 가량 강조한 정황과 비교하면 해명이 다소 어색하게 들린다.
만일 심 교수를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 판단해 취재원으로 삼아 자문을 구했고 기사에 반영할 만한 답변을 받았으면서 정작 보도에서는 생략해버렸다면 사실 누락에 속한다.
이 같은 사실 누락은 편향 보도의 일종으로 공정성 시비가 발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언론보도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상반되는 의견을 기사에 반영해줄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