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는 추석상에서는 빠질 수 없는 메뉴다. 특히 내년 대선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시점과 맞아 떨어지면서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차려질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 제3지대 정치세력까지, 차기 대선 주자들의 현재와 미래를 기사로 지어 밥상 위에 올려 놓는다. [편집자말] |
4.13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은 추석을 앞두고 여러 대권잠룡들이 꿈틀대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지금은 야권 후보가 훨씬 풍부하고 대선을 이끌어가는 상황이다. 사상 처음인 일"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현재까지 더민주 대선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김부겸·문재인·박원순·손학규·안희정·이재명(가나다 순) 이렇게 6명이다. 지난 대선에 도전했던 문재인 전 대표와 대선 경선에만 두 번 출전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재수생이다. 여기에 김부겸 의원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신진세력으로 등장했다.
[문재인] 성적 좋은 재수생에게 필요한 것은?
문재인의 이 한 마디 "야권이 저들(여당)과 대적할 수 있으려면 지지자들의 SNS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 3일, 문재인공식팬카페 창립총회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역대 진보진영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51.6%의 표를 얻은 박근혜 후보에게 졌다. 최고 성적을 받았으나, 상대평가에 밀려 1등을 내준 셈이다. 대선은 51.6%가 100을 먹고, 48.02%는 1도 못 먹는 구조다. 문 전 대표가 얻은 1469만2632표는 잊혔고, 48.02%라는 낙선 성적표만 남았다.
때문에 '확장성'이라는 꼬리표가 지난 대선 이후 문 전 대표를 꾸준히 따라다닌다. 당내 비주류, 무당층이나 무관심층, 그리고 호남지역 표심이 문 전 대표가 앞으로 확장해나가야 할 영토다. 문 전 대표 자신도 "(지난 대선에서) 저도 동원하는 역량이 부족했다"라고 말한다(관련기사 :
문재인 "누가 후보 되든 총동원 체제, 대선 이긴다").
확장성의 반대말은 폐쇄성이다. 앞서 8.27전당대회 기간에도, 당 안팎에서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몇몇 의원들은 이른바 친문으로 분류됨에도, 지지자들이 선정한 이른바 '친문 후보'와 다른 목소리를 내 악플에 시달렸다.
문 전 대표가 자신의 팬카페 창립총회에 가서 "요즘 SNS를 보면 살벌하고 무서울 때가 있다. SNS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라며 "선플 운동"을 요청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선 경선은 문 전 대표의 확장성을 키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절차다. 대선 경선 방식이 유력한 대권주자이자, 대세라는 말이 따라다니는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논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찌감치 대세를 굳혀 대선 모드로 가자',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경선이 필요하다'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명확한 것은 대세 그 자체가 아니라 대세를 어떻게 굳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제2야당인 국민의당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는 반드시 '더민주 총동원'에 성공해야 앞길이 보인다.
문 전 대표는 재수생이다. 재수생은 자신이 잘했던 과목보다, 못했던 과목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4.13총선 직후, 문 전 대표와 식사 자리를 가진 한 더민주 관계자는 "문 전 대표 스스로도 자신의 확장성과 관련해 고민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단 문 전 대표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이다.
야권 지지자들에게 필요한 건 뱀의 머리도, 용의 꼬리도 아닌 용의 머리다.
[손학규] 계속되는 고민, 물러설 데 없는 그의 선택은?
손학규의 이 한 마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 8월 29일, 전남 해남 지지자 모임손학규 전 상임고문 역시 재수생이다. 지난 대선, 그는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강력한 콘텐츠를 생산해냈다. 손 전 고문은 2014년 7·30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상당 기간 전남 강진 토굴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주요한 시기마다 여의도로 소환되고 있다.
손 전 고문의 말처럼, 그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지난 4.13총선 전, 자신을 향해 러브콜이 쇄도했지만 손 전 고문은 끝내 토굴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야권은 의외의 승리를 거뒀고, 지지자들의 논공행상에서 손 전 고문의 이름은 빠졌다. 정치인에게 최악은 선거에서 지는 것보다 잊히는 것이다.
어쨌든 손 전 고문은 최근 광주에서 "나라를 구하는 데 죽음의 각오로 저를 던지겠다"라며 대권도전을 선언했다(관련기사 :
손학규 "나라 구하겠다는 마음" 대선 도전 선언).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줄기차게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러브콜을 받아 온 손 전 고문의 고민에는 어느 당에 가든 문재인과 안철수를 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손 전 고문의 현실이자 야권의 현실이기도 하다.
최근 손 전 고문을 둘러싼 보도가 그의 고민을 대변하는 듯하다. 5일에는 '친문도 친안도 아닌 제3지대서 손학규 브랜드 만든다'라는 기사(문화일보)나 나온 반면, 8일에는 '손학규 더민주 당적 유지한 채 정계복귀하기로'라는 기사(노컷뉴스)가 나왔다. 11일에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손 전 고문이 9일 만났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손 전 고문의 아킬레스건은 문 전 대표처럼 압도적이지도, 나머지 대선주자들처럼 새롭지도 않다는 점이다. 손 전 고문이 이번에 대권도전을 선언한 광주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를 두고 "안정적 고착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지지세가 감소할 가능성은 적지만, 증가할 가능성도 적다는 의미다. '저녁이 있는 삶'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이 말한 대로, 손 전 고문은 "물러설 데가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박원순] 현재에 충실한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의 이 한 마디 "왜 고민이 없겠나. 그러나..." - 5일, 미국 뉴욕 동포간담회박원순 서울시장은 말과 행동을 아끼고 있다. 대선과 관련해 박 시장의 가장 진일보한 말은 "왜 고민이 없겠나" 정도다. 이를 두고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서울시장으로서 잘 하는 것이 곧 대선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현역 자치단체장, 그것도 대한민국 수도의 수장인 박 시장 입장에서 대선과 관련해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현재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박 시장은 "국민의 시간표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내용도 없이 스스로 자가발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어쨌든 서울시청 안팎으로 이미 박 시장이 대선모드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 시장의 외곽 조직도 생겼다.
시민사회단체 '희망새물결'은 10일 창립행사를 갖고 "대한민국은 불평등, 불공정, 불안전으로 위기상태다. 새물결을 일으켜 정권과 시대, 미래를 바꾸자"라고 밝혔다. 이는 전날 "한국사회는 불이 났다. 불평등, 불공정, 불의, 불안, 불통, 불신 등 우리 사회의 큰 불을 꺼야 한다"라는 박 시장의 메시지와 매우 유사하다(관련기사 :
박원순 "문제는 경제?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야").
이날 창립행사에는 진선미·남인순·권미혁 의원, 지난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에 영입된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총장 등 정치권 인물들도 참석했다.
[김부겸] 문재인 대세론 직접 겨냥
김부겸의 이 한 마디 "대세론은 무난한 패배의 다른 이름이다." - 8월 30일, 페이스북김부겸 의원은 현재 거론되는 대선주자 중 유일한 현역 국회의원이다. 그는 지난 4.13총선을 통해 황무지(대구)에서 첫 꽃을 피워냈다. 그 힘을 바탕으로 김 의원은 단숨에 당권·대권주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지난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나서지 않으며 대권을 택했다.
편했던 기존 지역구(군포)를 버리고 대구에서 수차례 깨졌던 김 의원은 '대구 사람'이라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장점을 갖고 있다. 더구나 상대는 새누리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였다. 문제는 다른 지역의 지지세다. 김 의원은 먼저 광주를 공략했다. 추석을 앞두고 '달빛 투어'를 기획한 김 의원은 13일에 '달'구벌(대구), 12일에 '빛'고을(광주)을 잇따라 방문해 정권교체 의지를 드러냈다.
김 의원이 비판하고 있는 "대세론"은 문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관련기사 :
김부겸 "대세론은 무난한 패배의 다른 이름", 문재인 견제). 김 의원은 5일에도 충남 보령에서 열린 자신의 지지 조직 '새희망포럼' 정기총회에 참석해 "대세론이란 야당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죽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경쟁력을 비주류 세력으로 잡고 있는 셈이다.
정기총회에는 설훈·조정식 의원과 유인태 전 의원,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 등 당내 비주류 세력 인물들이 참석했다. 김 의원은 계파색이 옅은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현재까지 문 전 대표를 제외하고 다른 후보군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대선 행보에 나선 모습이다. 특히 사드 배치, 북핵 실험과 같은 민감한 안보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 대안을 내놓으라'고 한 말에 "경제협력으로 북한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답했고, 북핵 문제에는 "이란 모델처럼 핵을 포기하고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역인 김 의원은 원외에 있는 두 사람(문재인, 손학규)이나 다른 지자체장들보다 국가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보수의 텃밭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김 의원이 북한과 안보 문제에 주도권을 갖기 위해 나선 모습이다.
[안희정] 재선 충남지사가 뛰어넘고 싶은 것은?
안희정의 이 한 마디
"나는 동교동도 친노도, 친문도 비문도 뛰어넘을 것이다." - 1일, 페이스북안희정 충남지사는 국회의원을 한 적도, 총선에 나선 적도 없다. 현재 재선 충남지사로, 각각 5, 6회 지방선거에서 지지율 42.2%, 52.21%를 기록하며 충청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그 동안 여러 선거를 통해 야권이 충청지역에서 고전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자체로 궁금증이 생기는 인물이다.
안 지사의 고민은 "뛰어넘겠다"는 한 마디에 담겨 있다(관련기사 :
안희정 "김대중·노무현 못다 이룬 역사 완성하겠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친노라는 이미지가 그와 문 전 대표의 공통분모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문 전 대표가 이번에 더민주 대선 후보로 결정되면, 그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안희정에게 차기는 없다"라고 말했다. "친노에게 세 번 연속 대선주자를 맡기겠냐"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4·13총선 직후 만난 안 지사 측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 관계자는 "(문 전 대표와 친노 이미지가 겹치는) 안 지사가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힐 타이밍이 마땅치 않다"라며 "그렇다고 문 전 대표가 실수하기를 기다려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교동도 친노도, 친문도 비문도 뛰어 넘겠다"라는 안 지사의 말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친노라는 프레임 자체를 깨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안 지사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일이 타인을 미워하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그분들을 사랑하는 존경하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친문·비문 구도를 공격하기도 했다. 해석에 따라서는 당내 주류인 친문 혹은 그 지지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안 지사는 대세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김부겸 의원과 비슷한 듯하지만, 주류·비주류 구도 자체를 깨길 원한다는 점에서 김 의원과 차이를 보인다.
[이재명] 그 자체로 궁금한 사람
이재명의 이 한 마디 "당신 같은 사람이 나라 망치는 거예요." - 8일, 헌법재판소 앞 기자회견이재명 성남시장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인물이다. 이 시장은 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한 행인이 자신의 가슴에 달린 노란리본을 보며 "그만 좀 차라. 지겨워서 그런다"라고 말하자 "당신 자식이 죽어도 그럴 건가. 같은 사람이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소리를 하나"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이 시장은 "당신 같은 사람이 나라 망치는 거다. 본인의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할 날이 있을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관련기사 :
이재명, "노란리본 지겹다" 말에 기자회견 중 버럭).
이 시장의 이러한 언행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지지자들에게 확실한 '사이다'를 제공한다. 이번 사례뿐만 아니라, 이 시장은 청와대·정부·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에 서슴없이 돌직구를 날려왔다. 기존 정치인에게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라, 자연스레 궁금증을 유발한다. 대중이 정치인에게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원심력, 즉 폭발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이 시장이 마냥 괴짜는 아니다.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 무상교복, 공공산후조리)로 대표되는 이 시장의 시정 철학은 성남시를 건강한 지자체로 만들었고, 자신을 전국구 인물로 만들었다. 정부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3대 무상복지에 제동이 걸리자,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만큼 자신의 철학에 확고한 신념도 갖고 있다.
독특한 것은 이 시장에게 손을 내민 인물이 더민주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지난달 15일 광복절을 맞아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는 자리에 갑자기 이 시장을 불러냈다. 총선을 앞두고 김 전 대표가 거론한 대선주자 명단에도 이 시장의 이름이 있었다. 이 시장이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할 때도 김 전 대표가 직접 찾아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풍문으로 떠돌던 이 시장의 대선도전 가능성은 이제 사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