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이 혁신의 현장으로 단 하루, 출근합니다. 두 번째로 청년공동체 카페오공(아래 오공)이 달콤한 작당을 벌이고 있는 서울혁신파크 허니루트하우스를 지난 8월 24일 찾아가봤습니다. 하루 동안 직접 체험하며 느낀 혁신가의 일상과 생각을 전합니다. - 기자 말[11:00 AM] 폭탄이 터지면 꽃이 핀다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컵 안에 동그랗게 뭉친 흙이 들어있다. 흙 안에는 씨앗이 들어있지만 어떤 씨앗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컵을 봤을 때 해야 할 일은 밖으로 들고 나가 흙이 있는 곳에 던지는 것. 투하한 곳은 사진을 찍어두고, 지도에 표시한다.
이 프로젝트는 정리되지 않은 땅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 활동인 '게릴라 가드닝'의 일환으로 협동조합 '오공'이 진행하는 '꽃길로 들어서자' 프로젝트다.
몇 주 전, 혁신파크의 작은 카페 앞에 이 '씨앗 폭탄'이 놓였다. 처음엔 스무 개 정도 놓여있던 것이 그새 몇 개 남지 않았다. 하나를 집어 들고 호기롭게 밖으로 나섰다. 매일 출근하는 이곳이지만 씨앗을 뿌린다고 생각하며 돌아보니 또 다르게 보인다.
결국 다다른 곳은 아침 출근길마다 지나는 길의 화단. 흙 위에 '폭탄'을 던지고 발로 꾹꾹 밟아뒀다. 이전까지는 흔한 흙바닥이었던 이곳은 이제 혹시 싹이 나지는 않았는지, 잘 자라는지, 무슨 꽃이 피는지 한 번씩은 돌아보게 되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됐다. 겨울이 오기 전에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오공'은 혁신파크를 무대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주로 함께 모여 라면을 끓여먹거나, 김장을 하고 수육을 나눠먹는 모임을 여는 식이다. '씨앗폭탄'도 이 실험의 일환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직접 흙을 뭉쳐 만들었다.
먹거리가 빠지지 않는 '오공'의 모임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맛있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함께 식사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자연스레 관계를 만드는 촉매가 된다. 저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해 있는 일터이자 삶터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작은 관계와 의미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삭막한 이 세상에서 좀처럼 불가능 할 것만 같은 이 마음이 '오공'이 계속해서 밥을 짓고 나누는 이유다.
[2:00 PM] 누구나 손님이자 주인인 공간커피 머신과 개수대, 제빙기, 냉장고, 카운터가 놓인 직사각의 공간이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지만, 이 카페는 종일 주방에 사람들이 드나든다. 심지어 음식도 해 먹고, 설거지도 한다. 모두가 주인이자 모두가 손님인 이 카페의 이름은 '오공'이 운영하는 '창문카페'다.
사실 '오공'이 운영하는 공간은 여기가 처음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공의 '카페'는 2012년, 서초에서부터 시작됐다. 귀촌을 고민하던 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우리동네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관련 주제의 책을 함께 읽은 게 오공의 처음. 기존 멤버들 외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자 모임을 위해 상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졌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50명이 100만 원씩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전세 5000만 원의 한 지하 카페 공간을 빌려 '카페 오공(cafe50)'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2014년, 은평구에 오공의 또 다른 공간인 '창문카페'가 생겼다. 청년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청년허브 공간의 '창문카페'를 위탁 운영하게 된 것이다. 2015년에는 잠시 동료 청년그룹에 자리를 내줬다가 올해, 1년 만에 다시 컴백했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카페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손님들과 구면이다. 손님의 새로 바뀐 머리를 알아봐주고, 공유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는 사람의 건강을 염려한다. 커피를 주문하러 온 손님들과 연신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묻는다. 아니, 손님이라기보다는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다.
[3:00 PM]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안전망혹여 남아있을 물기를 날려 보내기 위해 유리병들을 소쿠리에 뒤집어 놓고 나니 커피를 직접 내려 볼 기회가 주어졌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커피를 마실 줄만 알았던 손으로 직접 원두를 갈았다. 카페에서 어깨너머로 본 손동작을 따라해 본답시고 원두 분쇄기의 레버를 요란스레 당겼다가 놓아보았지만 역시 뭔가 어설프다.
홀더를 가득 채운 원두 가루를 도장같이 생긴 기구로 적절한 힘을 실어 누른다. 머신에 홀더를 끼워 넣고 버튼을 누르면 샷이 추출된다. 이 샷을 물이 담긴 컵에 부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우유가 채워진 컵에 부으면 카페라떼가 되는 셈이다. 주문을 받는 기계 앞에 커피 두 잔을 놓고 자리를 잡았다.
카페 매니저 근희님의 이전 직업은 사회복지사였다. 업무는 과중했고 매일이 스트레스였다. 자연히 건강도 나빠졌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것저것 필요 없는 물건들을 사들였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평소에 자주 드나들던 '오공'에 합류했다. 지하 공간의 카페를 운영하며 동시에 경험과 재능 그리고 음식을 나누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비슷한 고민으로 '오공'에 합류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자연히 '오공'의 돌봄이들에게는 삶터이자 일터인 공간이 되었다. 정해진 루트를 밟으며 아등바등 사는 삶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의 일과 삶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다.
'오공'의 멤버는 3일 정도는 오공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2일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풀타임 근무를 하는 것만큼이나 바쁘지만 수입은 많지 않다. 생활이 가능하냐고 물으면 풍족하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비는 자연스럽게 수입에 맞춰진다. 3일 정도를 일하고 받는 월급이면 한 달을 살기에 적당한 고정비용이 메워진다. 사회생활에 지쳐 소비로 채우던 결핍은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채운다. 최근에는 인천 검암에서 '오공하우스'라는 이름의 쉐어하우스를 열어 몇몇의 돌봄이들이 함께살이를 체험하고 있다.
'오공'의 멤버들은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안전망이 되고 있다. '오공'이 혁신파크를 무대로 벌이는 작당들은 이런 공동체의 이로움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셈이다. 일에만 몰두해 관계를 잃어버리는 시대,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격려하는 동료들을 하나, 둘 늘려가기를 바라면서 근희님은 오늘도 혁신파크 안에서 모임을 기획하고 홍보 전단을 붙이고 식사를 준비한다.
[5:00 PM] 함께여서 더 달콤한 저녁올해 '오공'에게는 또 다른 공간이 생겼다. 바로 카페가 위치한 혁신파크 미래청 건물 뒤편의 구조물인 '허니루트하우스'다. 허니루트하우스의 옥상에는 벌 2만 마리가 산다. 꿀을 따는 것을 '채밀(採蜜)'이라고 하는데, 오늘이 바로 채밀하는 날이다.
벌 2만 마리의 엄마 근희님을 따라 건물 뒤편으로 나선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허니루트하우스 안에 작은 카페를 차려 꿀을 활용한 카페 메뉴 개발 대회를 열 계획인데, 이를 위한 재료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양봉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과 도와 주기위해 모인 몇몇을 포함해 5명이 모였다. 여름내 한껏 영근 벌집에서 꿀을 따 깨끗이 세척한 유리병을 모두 채워볼 작정이다. 갑자기 벌통을 열면 공격모드로 변하는 벌들을 교란시키기 위해 쑥이 들어간 훈연기를 들고 사다리를 오른다. 소비라고 하는 벌이 붙은 판 하나씩을 들고 훈연기로 연기를 내어 벌들을 떼어낸다.
소비 몇 장이 양동이에 담겨 내려오면 벌판위로 얇게 포를 떠 꿀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든다. 탈수기 원리의 채밀기 안에 포를 뜬 벌판을 넣고 장정 둘이서 채밀기를 잡고 돌린다. 채밀기의 밸브를 열면 진한 색깔의 꿀이 흘러나온다.
"오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꿀과 함께 흘러나오는 밀랍 조각을 걸러낼 체를 유리병과 함께 밸브 밑에 받쳐두고, 체의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살살 저어주었다. 꿀이 넘쳐버릴 수 있으니 잘 보고 있다가 밸브를 잠가 주는 것이 포인트다.
벌통만 갖다 놓으면 일은 벌들이 다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막상 채밀하려면 많은 품이 들고, 평상시에는 혹시 여왕벌이 나가지는 않았는지 말벌이 꼬이지는 않는지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에 여왕벌이 죽어서 걱정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여왕벌이 돌아와서 알까지 낳았더라고요!" 옥상에서 작업을 마치고 내려온 근희님이 방충복 사이로 밝게 웃는다.
오후 5시에 시작한 작업은 벌써 저녁 7시를 넘겼다. 산등성이에서부터 어둠이 몰려온다. 꿀 냄새를 맡고 빠져나온 벌들이 달려들지 않도록 실내에서 작업하다보니 모두가 땀범벅이다. 풀밭 사이에 있다 보니 여기저기 모기에 물린 데다 더위에 지쳐버린 사람들과 병에 담고 남은 꿀을 집어먹으며 오늘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함께 먹는 꿀의 맛은 씁쓸했지만 충분히 달콤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허니루트하우스에도 꿀만큼 달콤한 이야기가 도란도란 흐를 것이다.
▲ 카페오공 : 서울혁신파크 미래청(1동) 1층 청년허브 내 창문카페= 인천 검암의 청년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우동사)과 2013년부터 시작된 강화도 논농사 프로젝트 '논데이'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적게 소비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나눔과 공유, 신뢰와 같은 마을공동체 정신에 기반해 실현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울혁신파크 공식 뉴스레터 <채널서울혁신파크>에 게재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