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김상원(38)씨는 12일 저녁 집에서 느긋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 갑작스러운 진동에 깜짝 놀랐다. 전에 없이 흔들리는 집에 김씨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당혹스러웠다. 떨림이 지나간 뒤 김씨는 TV를 틀었다. 여느 때와 똑같은 TV에는 자막 한 줄 없었다. 휴대전화도 조용했다. 부랴부랴 인터넷에 접속해 기상청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고 나서야 경북 경주 일대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뒤에야 휴대전화로 요란스럽게 지진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가 도착했다. 그로부터 30여 분 뒤에 찾아온 더 큰 2차 지진 후에는 아예 이런 문자 한 통도 없었다. 대한민국 지진 재난문자의 현주소는 경주 지진에서도 확인됐다. 이날 오후 7시 44분 첫 번째 지진이 감지됐지만, 긴급재난문자가 전송된 건 10분이 지나서였다. 정부가 공언한 지진 경보 시간은 50초이다.
지난 5월 27일 국민안전처와 교육부, 행정자치부 등은 이른바 범정부 차원의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지진발생 시 긴급대응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분석기술 개발, 관측망 확대 등을 통하여 지진 조기 경보시간을 현재 50초에서 2020년까지 10초 이내 단축을 목표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지진이 발생한 지 한참 뒤에야 지진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를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7월 5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5.0 지진에 국민안전처는 지진 발생 17분이 지나서야 긴급재난문자를 보냈고, 이마저도 날짜가 틀려 6분 후 수정해서 다시 발생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일본은 진동 느껴지기 전에 먼저 문자가 도착한다는데...
12일 밤 지진에서도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는 지진 발생 후 10분이 지나서야 전달이 됐다. 이는 긴급재난문자 발송 과정의 복잡함에서 기인한다. 지금의 긴급재난문자 발송 체계는 기상청이 지진을 감지하면 이를 국민안전처에 넘겨 진도와 지역을 분석하고 긴급재난문자 문구를 쓴 다음 송출하는 단계를 거친다. 한시가 급한 긴급재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이다.
반면 일본의 지진 재난 문자는 훌쩍 앞서가 있다. 지진 발생 지점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서는 지진동이 느껴지기 이전에 재난문자가 먼저 도착해 대피할 시간을 벌기까지 한다. 이는 지진파의 특성을 이용하기에 가능하다.
지진은 크게 P파와 S파로 나뉜다. P파는 지진이 났을 때 발생하는 초기 파동으로 초속 7km로 비교적 빠르고 흔들림이 적다. P파에 이어 전달되는 S파는 초속 4km가량으로 속도는 느리지만 진동을 동반하고 있어 직접 시설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바로 이 S파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일본은 바로 이 두 지진파의 시차를 이용해 먼저 도착하는 P파를 재빨리 감지하는 방식으로 조기 경보를 하고 있다. 지진파가 감지됐을 때 전달하는 긴급 지진속보는 곧장 일본의 주요 기관은 물론 시민들에게 전달된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급히 몸을 피하거나 지진에 대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한 바 있는 최성원(33)씨는 "한국에서 지진을 경험하며 많이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면서 "일본은 체계화된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국은 여전히 일단 닥치면 해결하고 보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