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교회 집사인 A씨는 애초 언론에 김해성 목사의 성추행을 폭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김 목사의 성추행은 명백히 잘못된 행위이지만, 외부가 아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처리(징계 등)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목사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최부옥 목사, 총무 배태진 목사, 아래 '기장')는 김 목사의 성추행을 지난 5월 초 인지했다. A씨가 기장 총무를 만나 녹음파일까지 들려주며 김 목사의 성추행을 알린 것이다. 하지만 기장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지난 8월 성추행 혐의로 김 목사를 기장 서울남노회(노회장 김창환 목사)에 고소했고, <오마이뉴스>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 목사 성추행 사건을 공론화했다.
노회에 김해성 목사 고소... "노회가 제대로 징계할지 의문"
교회도 사회를 닮아서 각 교단마다 '헌법'을 가지고 있다. 보통 헌법에는 교리와 정치,권징, 예배·예식이 담겨 있다. 기장의 교회 헌법은 신조, 신앙고백서, 신앙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으로 구성돼 있다. 교회 헌법 아래에는 규정, 정관, 세칙 등을 두고 있다.
교단은 이러한 헌법에 따라 당회-노회-총회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다. 당회와 노회, 총회는 장로교회의 정치 조직인 '치리회'이기도 하다. 교단은 이러한 각급 치리회를 통해 행정을 총괄하고, 교회 재산을 관리하고, 논쟁을 해결하고, 범죄를 저지른 목사나 신도를 권고·징계한다. 특히 목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직은 '노회'다.
목사가 범죄 등을 저지른 경우 노회에서 목사 4명과 장로 3명이 재판국을 구성해 재판을 진행한다. 기장 소속의 한 목사는 "목사는 노회 소속이기 때문에 목사 안수도, 징계도 노회에서 한다"라고 말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책벌을 정하는데 목사에게는 시무 정지, 시무 해임, 정직, 면직 등이 내려진다.
A씨는 5월 중순께 서울남노회 소속 원로목사와 접촉했다. 김해성 목사가 서울남노회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서울남노회 소속 원로목사에게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통해 '중요한 일로 상담하고 싶다'고 연락했다"라며 "그 원로목사는 기장에서 영향력이 큰 분이었고 연락이 오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결국 A씨는 지난 8월 19일 김 목사를 성추행 혐의로 서울남노회에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남노회가 김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기장 안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기장 소속의 B목사는 "오는 10월 18일 노회가 열리는데 거기에서 재판국을 구성할지도 의문이고, 재판국을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서 제대로 징계를 내릴지도 의문"이라며 "이렇게 몇 개월을 질질 끌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B목사는 "노회에서 김 목사 성추행 사건을 크게 다룰 수 있을까 의심이 간다"라며 "김 목사가 (사회에서나 교단에서) 영향력 있는 목사라서가 아니라 보통 목사들은 이런 사건을 모르고도 덮고, 알고도 덮기 때문에 크게 기대 안 한다"라고 꼬집었다.
교단 총무가 5월에 '성추행' 인지했지만...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배태진 기장 총무가 A씨를 통해 김해성 목사 성추행 사건을 진작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A씨는 지난 5월 세 차례에 걸쳐 배 총무를 만나 두 차례 성추행을 인정하는 김 목사의 음성파일을 들려줬다.
음성파일을 듣고 당황한 배 총무는 "목사로서 죄송하고 용서를 빈다"라고 말한 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라고 물었다. 이에 A씨는 김 목사의 사임과 3년간의 자숙 등을 제안했다. A씨는 "배 총무가 '6개월간 기도원에 갔다가 복귀하면 안되겠나?'라고 했다"라며 "이에 제가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하기다, 최소한 3년의 자숙기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배 총무가 '집사님이 하나님이냐, 심판자냐'고 화를 냈다"라고 주장했다.
배 총무가 김 목사의 성추행 사건 처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배 총무는 기장에서 영향력이 센 강남교회에 있다가 올해 초 전병금 담임목사가 은퇴하자 김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중국동포교회로 옮겼다.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김 목사가 이끄는 지구촌사랑나눔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3월 전병금(이사장).김해성(사무총장) 목사와 함께 '지구촌구호개발연대'를 출범시키고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배 총무는 현재 기장 총무직을 연임(총 8년째)하고 있을 정도로 교단의 실력자로 알려졌다. 그의 부친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제79회 총회장과 광주노회 초대 노회장, 한국장로교협의회 회장, 한신대 이사장 등을 지낸 배야섭 목사다. 배 목사는 광주·전남지역에서 신망이 두터운 원로목사다.
특히 배 총무는 지난 8월 25일 <뉴스앤조이> 기자에게 A씨를 두 차례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눴고, 김 목사에게도 관련 내용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9일과 14일 김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되기 전에 배 총무가 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배 총무는 <뉴스앤조이> 기자에게 "김 목사가 태워줘서 감사하다는 표시로 가볍게 (A집사를) 허그하려고 했던 것뿐"이라며 "'키스하고 가슴을 만졌다'는 주장은 A집사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김 목사를 적극 옹호했다.
하지만 A씨는 지난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 목사가 지난해 3월 차안에서 가슴을 만지고 딥키스(혀로 하는 진한 키스)를 하려고 시도했으며, 같은 해 7월에는 목사실에서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라고 주장했다. 김 목사도 지난 13일 작성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빕니다'라는 사죄문에서 "교회 성도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한 사실이 있다"라고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B목사는 "배 총무가 사건을 인지한 뒤 노회에 신속한 처리를 요청했을 수 있는데 그것을 안했다"라며 "배 총무가 지혜롭게 처리했더라면 이 사건이 이렇게 일파만파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B목사는 "고신 교단은 (4년여 간 10대 여고생에게 수차례 성관계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동현 목사의 목사직을 신속하게 박탈했다"라며 "기장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기장 측 "김 목사의 추가 사죄는 없을 것"
기장의 한 고위관계자는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김 목사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했기 때문에 교단(노회, 총회 등)도 그것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사죄문이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나갔기 때문에 김 목사가 추가로 사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김 목사가 각 기관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안다"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했으니까 그것을 지켜봤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25일 열리는 기장 총회에서도 김 목사 성추행 사건은 다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인 A씨도 "기장 소속 목사들도 김 목사의 잘못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기장에서 내세우는 목사인데 징계하면 기장 체면이 어떻게 되겠나?'며 잘못을 따지기보다 체면만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A씨는 "결국 문제를 제기한 사람(피해자)을 교단 체면이나 깎는 불순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교단이 유지될 수 있다"라며 "기장뿐만 아니라 모든 교단이 이렇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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