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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1화 연말 위문대 이야기] 위문편지

학교 다닐 때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일선에 계시는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를 숱하게 썼다. 또 내가 교사가 된 이후에는 위문편지 쓰기 지도를 많이 했다. 그리고 위문대도 만들어 보냈다. 그런 과정을 겪어야 겨울방학이 오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았다.

그런데, 내가 군인이 된 이후에는 연말이면 위문편지와 위문대를 받았다. 삭막하고 고달픈 전방생활 중, 반가운 마음으로 위문편지와 위문대를 받지만, 차라리 받지 않은 것만 못할 때도 있었다.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의 강요로 억제로 써 보낸 티가 나는 편지가 그렇다.

그 무렵에는 월남에 파병 중이었는데 '일선에 계시는 아저씨'와 '월남에 계시는 아저씨'가 뒤바꿔 보내지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에서나 이를 수합한 기관에서 좀 더 세심히 분류하여 보낸다면 그런 불쾌한 일은 사전에 예방했으리라. 우리 사회는 이런 기본이 그제나 이제나 부족하다.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위문대를 받을 때다. 위문대 내용품 가운데 값이 비싼 고품질은 상급부대에서 거의 빼낸 뒤 하급부대는 라면이나 값싼 문구류들뿐만 담겨 있기에 이를 받으면 무척 화가 났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부산항에 정박 중인 미 해군 Wisconsin 호에서 미 해군 장병들에게 위문공연을 하고 있다(1952. 2. 25.).
 한국의 어린이들이 부산항에 정박 중인 미 해군 Wisconsin 호에서 미 해군 장병들에게 위문공연을 하고 있다(1952. 2. 25.).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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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부대의 '갑질'

우리 사회, 특히 우리 군의 고질은 상급부대에 근무하는 자들의 특권 의식이다. 예를 들면 군 보안대(현 기무사) 하사관들은 전방의 초급장교는 아예 밥으로 생각했다. 그밖에도 상급부대 근무자들의 갑질은 이만저만 꼴불견이 아니었다.

한번은 대대에서 각 중대 소대장 집체교육이 있었다. 그 무렵은 진관사 어귀 부대에 근무할 때로 대대본부는 교외선 송추역 부근에 있었다. 교육을 마친 다음 몇몇 소대장들이 어울려 송추역으로 가자 마침 주말 나들이 나온 소풍객들이 열차에서 쏟아졌다.

송추역 앞에서 동료 소대장들과 함께(1969. 10.) 왼쪽 동아대 출신의 최호정 소위로 이 기사 제1회에 나오는 친구, 중간 안 소위, 그리고 오른쪽은 기자다.
 송추역 앞에서 동료 소대장들과 함께(1969. 10.) 왼쪽 동아대 출신의 최호정 소위로 이 기사 제1회에 나오는 친구, 중간 안 소위, 그리고 오른쪽은 기자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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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기타를 가지고 소풍 온 여대생 그룹에 접근해 사진 한 장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찍어줬다. 그런 뒤 그 사진을 부대로 부쳐 달라고 주소를 가르쳐 줬다.

그런 뒤 같이 사진을 찍은 한 동료가 대대 정보참모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수개월이 흐른 뒤에야 사진 한 장만 내게 전했다.

나중에 그 연유를 알아보니까 그 여대생이 나에게 사진과 함께 위문편지(?)를 써서 보낸 것을 그 무렵 대대 정보참모실에 있는 그 친구가 가로챈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나 대신 답장도 하고, 서울로 외출 나간 뒤 발신지로 찾아가기도 한 모양이었다. 일종의 상급부대에 있는 자의 횡포요, 갑질이었다.

사실 최일선에서 전투하거나 근무하는 병사들은 가장 대접받아야 한다. 군대뿐 아니라 산업현장에서도 마찬가지요, 교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최일선의 역군보다 뒤에서 일하는 참모 역이나 오너들이 더 열매를 많이 따먹거나, 가진 자로서의 횡포를 누리기에 전반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이 많은 것이다.

지도자의 솔선수범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참모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중국 본토에 안장하려 하자 모택동이 이를 저지했다. 그는 자기 아들을 그렇게 하면 한국 땅에 묻혀 있는 다른 중국군 시신도 모두 본국으로 수습해야 된다고 이를 허락지 않아 그대로 북한 땅에 묻었다고 한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은 뤼순에 있는 203 러시아의 난공불락의 요새를 그들 손아귀에 넣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군신(軍神)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가 이끄는 일본해군이 하루에 8000명의 사상자를 내며 일본군 13만 명 가운데 총 6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문자 그대로 시산시해(屍山屍海, 시체로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룸)를 이룬 혈전을 치른 뒤 마침내 그 203고지 전투에서 승리해 러시아의 요새를 차지했다.

노기 사령관은 203고지 전투에서 두 아들을 잃었다. 그때 그 전투에서 아들을 잃은 많은 유가족이 몰려와 노기 사령관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곧 유가족들은 노기 사령관의 두 아들을 잃은 것을 확인하고는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러일전쟁 당시 난공불락 요새였던 뤼순 203고지 어귀
 러일전쟁 당시 난공불락 요새였던 뤼순 203고지 어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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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솔선수범하며 항상 현장을 확인하고, 일선에서 가장 수고하는 이에게 공이 돌아가게 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정의 사회다.

씨도 뿌리지 않는 자가 그 식물의 열매를 독차지하거나, 아예 씨를 뿌리는데 방해한 자나 그 후손들이 엉뚱하게도 그 열매를 독차지할 때 백성들은 허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제2화 어느 사기 전과자 이야기] 어느 변호사

이영기 변호사
 이영기 변호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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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나는 한 고마운 애독자를 만났다. 그분은 이영기 변호사로 그 무렵 내가 펴낸 <아버지는 너희들 편이다>라는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보시고 300권을 사주셨을 뿐 아니라, 중국대륙 항일전적지 답사 비용까지 전담해 주셨다(관련 기사 : 인생 역전, 순경에서 검사장이 되다).

그런 연유로 서초동 변호사사무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그분은 변호사로 사기사건은 거의 수임을 맡지 않는다고 했다. 그 까닭을 여쭙자 사기를 한 사람도 고약하지만,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었다.

이 변호사는 사기사건을 수임하면 그 사건에 연루된 피고소인을 잡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잡을지라도 그에게 변상금을 받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했다. 대체로 사기꾼들은 말재주가 대단히 현란하고,  특히 잔머리 굴리는 데 여간 비상치 않다. 자칫 하면 예사사람들은 사기꾼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내가 서울 구기동 산동네에서 살 때였다. 그 동네는 거의 단독주택으로 여느 시골과 비슷했는데 동네 어귀에 한 여인이 살았다.

그는 토지세나 주택세를 낼 무렵에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친정동생이 은행원인데 실적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서 대신 세금을 내는 수고를 해주겠다고 돈과 고지서를 거둬갔다. 그런 뒤 은행에 있는 동생이 준다고 하면서 비누나 휴지같은 사례품을 돌렸다.

다음에는 가을 추수 때 자기 친정은 일산으로 논 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하면서, 동네 주민들에게  1등품 경기미 햅쌀을 시중보다 한 가마니에 1만 원 정도 싸게 팔았다. 그는 그렇게 동네사람들에게 자기 친정이 상당히 부유한 줄 믿게 했다.

그런 뒤 동네사람들과 돈거래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적은 돈을 빌린 뒤 매달 정확히 이자를 갚으면서 거기다 생필품 같은 것으로 사례까지 했다. 그렇게 여러 달 신용거래를 하여 자기를 믿게 한 다음 수십억 원을 왕창 빌린 뒤 잠적해 동네에 큰 피해를 남긴 적이 있었다. 사실 이런 사기꾼에게 당하게 되면 가정불화에 심지어 가정 파탄이 나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다.

사기 전과자

전곡 하사관학교에서 2주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자 소대 내무반에서 한 낯선 녀석이 난로당번을 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그런데 그 폼이 나치군과 비슷했고, 복장도 단정치 못한데다가 나이도 상당히 들어보였다.

"공격! 이번에 전입해 온 김두례(가명) 이병입니다."

내가 BOQ로 돌아가 짐을 푸는데 안 하사가 따라와 김 이병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는 1주일 전에 소대로 전입했는데 사기 전과자로 육가(육군교도소의 별칭)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소대원이라고 했다. 내가 교육 중에 우리 소대로 그를 배치한 모양으로 기분이 몹시 상했다. 지난번 이두식 이병을 내가 맡았으면 이번에는 다른 소대로 배정해야 할 게 아닌가.

상급부대에서는 육가 출신들은 취사병이나 전령 또는 내무반 페치카나 난로 당번으로 근무케 권장했다. 그래서 내가 없는 사이 내무반장은 그를 내무반 난로당번을 시킨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당직근무로 일석점호를 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 그가 항고에 라면을 끓여 김치와 함께 줬다. 한밤 중 출출할 때에 먹는 라면 맛이란. 다음 당직날 저녁에는 항고에 밤을 가득 삶아 들여보냈다. 그래서 그 참에 그를 BOQ로 불러 신상을 면담했다. 그의 주소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이라고 했다. 가족관계에 이어 출신학교를 물었다.

"OO법대를 나왔습니다."
"뭐? 몇 학번이야?"
"62학번입니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면서 단과대는 달랐지만 3년 선배에게 그동안 무례하게 대한 게 미안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그래서 몇 가지를 더 묻자 금세 거짓말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대학총장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당시 졸업생이라면 그 유명한 유진오 총장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 보여준 사진으로, 4학년 때 중앙도서관을 배경으로 본관 앞에서 찍었다.
 내가 그에게 보여준 사진으로, 4학년 때 중앙도서관을 배경으로 본관 앞에서 찍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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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때 내가 재학 중 대학 중앙도서관 앞에서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보이며 어디냐고 묻자 음악대학 건물이라고 했다. 나의 모교는 그제도 이제도 음악대학은 없었다.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라고 크게 야단치자 그는 그제야 그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는 입만 뻥긋하면 거짓말로, 그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는 그 이후로도 계속 거짓말을 일삼아 나를 그의 올가미에 엮으려 했다. 그뿐 아니라, 아주 미인계까지 썼다.

"소대장님, 제 모찌방('볼'의 일본말로 여기선 '얼굴'을 뜻함)은 볼품없지만, 제 여동생은 OO여대에 다니는데 그런대로 잘 빠졌습니다. 외출 나가시면 꼭 한 번 만나 보십시오."

나는 그가 달콤한 말로 숱하게 꼬여도 그의 혓바닥에 놀아나지 않았다. 그가 전입 한 달 만에 휴가를 간다고 내게 신고했다. 강철 중대장이 지휘관용으로 준 보름짜리 휴가라고 했다.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부대를 떠났다. 정말 귀신 곡할 재주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원성이 터져 나왔다. 소대원 가운데서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은 이가 거의 없었을뿐더러, 부대 앞 민간인 가게주인도 그에게 상당한 돈을 빌려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때까지도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심지어 중대의 공금인 행정근무비까지 떼먹는 수전노 강철 중대장도 그에게 상당한 돈을 빌려주고 휴가증까지 챙겨준 모양이었다. 나는 중대장에게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김 이병의 미인계에 꼼짝없이 걸려든 걸로 보였다.

나는 지금도 아리송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처럼 중대장은 자기 돈과 휴가증으로 중대 내의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고도의 술책이었는지도…. 

과잉 충성, 과잉 친절, 과잉 접대, 상납, 불로소득…, 평소에 이런 것을 즐기거나 이런 것들에 놀아나면 사기꾼에게 걸려들기 마련이다.

사기꾼이 판치는 세상은 부정부패가 만연한 저질 사회다. 사기꾼에게 놀아난 자는 불로소득이나 상납에, 맹목적인 충성에 현혹되거나 세상 물정에 매우 어두운 자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권력의 핵심에 있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조차도 사기꾼에게 마냥 놀아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가 요지경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사실 사기꾼이나 가짜도 문제지만, 그런 이들에게 놀아나는 이도, 또 그런 자를 바로 보지 못하는 우매한 백성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사기꾼과 가짜가 설치는 세상에서는 정의로운 이나 진짜 애국자가 숨쉴 수가 없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나라가 산다"고 역설했다. 생각하는 백성, 불로소득을 배격하는 백성, 공짜를 바라지 않는 백성이어야 지도자를 바로 뽑을 수 있고, 그래야 이 혼탁해진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다음 글에 계속)


태그:#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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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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